말넋 51. 생각을 그려서 보이는 말

― ‘내가 쓸’ 말과 ‘떠도는’ 말



  국립국어원에서는 ‘감사(感謝)합니다’라는 낱말도 ‘고맙습니다’라는 낱말과 함께 쓸 만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럴 수도 있으리라 느끼지만, 굳이 두 가지 말을 한국사람이 써야 할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사람은 한국말 ‘고맙습니다’와 한자말 ‘感謝’에다가 영어 ‘thank you’까지 쓰니까요.


  지구별이 서로 한식구라는 생각이라면, 일본말 ‘ありがとう’나 네덜란드말 ‘Dank je’를 쓰자고 할 수 있어요. 인도말과 베트남말과 터키말과 핀란드말도 함께 쓰자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한국사람이 한국에서 함께 사는 이웃과 주고받을 한국말을 알려주거나 가르치는 자리라 한다면, 한국말을 슬기로우면서 곱고 참답게 쓰는 길을 밝혀야지 싶습니다.


  한자말 ‘感謝’는 ‘고마움’을 뜻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말 ‘고마움’을 한자로 옮기면 ‘感謝’가 되는 셈입니다. ‘고맙습니다’를 영어로 옮기면 ‘땡큐’가 되는 얼거리와 같습니다. 그러면 ‘고맙다(고마-)’는 무엇을 뜻할까요? 이 낱말은 “이녁(그대)이 나한테 넓거나 너그럽게 베푼 마음을 흐뭇하게 여긴다”를 뜻합니다. 이리하여, ‘고맙다’나 ‘고맙네’나 ‘고마워요’처럼 말할 적에는 으레 목을 가볍게 숙이거나 허리까지 깊이 숙입니다. 나한테 마음을 넉넉하게 쓴 그대(이녁) 마음이 몹시 반가우면서 흐뭇하니까요. ‘이녁(그대, 너, 자네)’ 자리에 있는 사람이 손아랫사람이거나 아이라 하더라도 으레 절을 하지요. ‘고맙다’라는 낱말은 이처럼 내 맞은편에 있는 사람을 높이거나 섬기거나 모시려는 기운을 담습니다. 그래서 예부터 ‘고맙다’라는 낱말은 무척 거룩한 느낌을 나타냈어요.


  ‘절’을 어느 자리에서 하는지 돌아봅니다. 차례나 제사를 지낼 적에 절을 합니다. 웃어른한테 절을 합니다. 설날에 절을 합니다. 절은 누구한테 하는가 하면 ‘어른(철이 든 사람)’한테 하고, ‘님(하느님, 신)’한테 합니다. 그러니까, ‘고맙다’라는 낱말 한 마디에는, 나보다 나이가 아무리 어려도 나한테 넓게 마음을 쓴 이웃사람과 생각이 트인 철이 든 어른을 마주하면서 ‘그대는 나한테 고운 님입니다’ 하고 밝히는 뜻을 담습니다.


  한자말 ‘감사’나 영어 ‘땡큐’나 일본말 ‘아리가또’에도 저마다 다른 뜻과 기운과 이야기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 다른 나라에서 다 다른 뜻과 기운과 이야기가 쌓였을 테지요. 그래서, 우리는 나라와 겨레마다 다른 뜻과 기운과 이야기를 서로 아낄 수 있으면 됩니다. 이러면서 우리가 스스로 오랜 나날에 걸쳐 손수 짓고 갈고닦은 삶을 돌아볼 수 있으면 돼요.


  내가 쓸 말은 언제나 내 삶과 넋을 곱고 참다우면서 슬기롭게 북돋울 수 있는 말이어야 합니다.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할 적에는 내 삶과 넋을 아무렇게나 팽개치거나 함부로 다루는 셈입니다. 말 한 마디를 찬찬히 가누고, 글 한 줄을 옳게 다스릴 때에, 삶과 넋도 찬찬히 가누면서 옳게 다스릴 줄 압니다. 그래서 유행처럼 퍼져서 한때 쓰이는 ‘안습·레알·멘붕’ 같은 말마디에는 어떤 새로움이나 놀라움이나 기쁨도 깃들지 않습니다. 그저 유행처럼 퍼져서 한때 쓰일 뿐입니다. 이런 말마디에는 어떠한 숨결이나 빛이나 넋도 스미지 않아요. ‘떠도는 말’은 그야말로 한동안 떠돌다가 어느새 잊힙니다. 떠도는 말은 처음 불거질 적에 갑작스레 널리 퍼져서 마치 이 말을 안 쓰면 안 되기라도 하는듯하기까지 하지만, 목숨줄이 아주 짧아요. 2010년대에 널리 떠도는 ‘대박’ 같은 말도 앞으로는 하루아침에 사라지리라 느낍니다.


  내가 쓸 말은 ‘삶을 밝히는 말’입니다. 내가 쓸 말은 ‘떠도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가꿀 하루는 ‘삶을 밝히는 일’이요, 내가 지을 하루는 ‘삶을 노래하는 일’입니다.


  양자역학을 풀어내어 노벨상을 받은 하이젠베르크 님이 쓴 《부분과 전체》(지식산업사,1982)라는 책을 읽다가 ‘참기쁨(79쪽)’, ‘참모습(95쪽)’, ‘참지식(166쪽)’ 같은 낱말을 봅니다. 앞머리 ‘참-’을 붙인 낱말을 가만히 혀에 얹어서 굴리면서 생각합니다. ‘참모습’이라는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나오지만, 다른 두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안 나옵니다. 그러나 이런 낱말도 즐겁게 쓸 만하고, 기쁘게 주고받을 만합니다. ‘기쁨’이라 할 때와 ‘참기쁨’이라 할 때에는 느낌과 뜻이 사뭇 달라요. ‘지식’이라 할 때하고 ‘참지식’이라 할 때에도 느낌과 뜻이 아주 다릅니다.


  ‘참-’이라는 낱말에 다른 말마디를 하나씩 더 붙여 봅니다. 참사랑, 참마음, 참노래, 참꿈, 참숲, 참말, 참글, 참책, 참하루, 참삶, 참일, 참놀이, 참사람, ……. 그러고 보면, ‘참꽃’과 ‘참나무’와 ‘참새’라는 낱말이 있어요. 사회나 정치나 교육도 ‘참사회·참정치·참교육’처럼 ‘참-’을 붙여서 새롭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참다운 넋이 되어 새롭게 거듭나려 한다면, 언제 어디에서나 ‘참-’을 붙일 만합니다. 이리하여, 나 스스로 착한 넋이 되어 새롭게 거듭나려 한다면 ‘착한-’을 앞에 붙일 만하고, 나 스스로 고운 넋이 되어 새롭게 거듭나려 한다면 ‘고운-’을 앞에 붙일 만합니다. ‘착한사랑·고운사랑’을 할 수 있으며, ‘착한일·고운일’을 할 수 있어요. ‘착한말·고운말’을 쓸 수 있으며, ‘착한삶·고운삶’을 가꿀 수 있습니다.


  생각을 그려서 보이는 말입니다. 내가 어떻게 살려 하는가를 말로 담아서 보여줍니다. 남한테 보여주기보다 내가 나한테 보여줍니다. 내 생각은 늘 내 말로 드러납니다. 내가 가꾸려는 하루는 늘 내 말에 바람 한 줄기처럼 실려서 흐릅니다.


  내가 쓸 말은 내가 손수 삶을 짓도록 북돋우는 기운찬 말입니다. 내가 나눌 말은 내가 손수 삶을 가꾸면서 사랑과 꿈이 자라는 말입니다. 내가 들려줄 말은 내가 손수 아끼면서 보듬을 삶을 노래하는 말입니다.


  참말을 하면서 참하루를 엽니다. 참글을 쓰면서 참동무를 사귑니다. 참노래를 부르면서 참사랑이 퍼집니다. 참꽃을 바라보는 봄이요, 참나무가 베푸는 도토리를 줍는 가을입니다. 아름다운 삶을 아름다운 넋으로 바라보며 아름다운 말이 태어납니다. 4348.2.24.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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