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만족’ 문학



  어린이문학은 어른이 아이한테 베푸는 문학이 아닙니다. 어린이문학을 아직 잘 모르는 분들은, 이 글이 어른이 아이한테 선물처럼 건네기도 하는 문학이라 여길 수 있지만, 어린이문학은 어린이만 누리는 문학이 아닌 어른과 아이가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문학이기에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한테 베푼다’고 할 수 없습니다.


  어린이문학은 아이와 어른이 사람으로서 삶을 함께 누리려는 길을 찾는 문학입니다. 이리하여, 어린이문학은 늘 사랑을 다룹니다. 아이와 어른이 서로서로 아름다운 사람으로 마주하면서 바라볼 수 있기에 비로소 삶을 함께 지으면서 누리는 길을 찾습니다. 둘(아이와 어른)이면서 하나(사람)인 서로가 삶으로 함께 나아가기에 이 자리에서 사랑이 태어나고, 이러한 얼거리가 곱게 흐르는 숨결을 다루는 어린이문학은 늘 꿈으로 뻗습니다.


  어른이나 아이 모두 스스로 하고픈 일과 놀이를 찾아야 합니다. 어른은 다른 어른(남)이 시키는 일을 하기만 해서는 삶을 짓지 못합니다. 아이는 어른이 준 장난감을 받아서 손에 쥐어야 놀이를 하기만 해서는 삶을 짓지 못해요. 어른은 어른 나름대로 스스로 일을 슬기롭게 찾아야 삶을 짓습니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스스로 놀잇감을 꾸미고 가꾸어서 신나게 놀아야 삶을 짓습니다.


  어린이문학은 ‘대리만족’을 하는 문학이 아닙니다. 어른이 어릴 적에 누리지 못한 이야기를 담는 문학이 아니고, 어른이 아이 눈높이가 되어서 쓰는 문학이 아닙니다. 어른이 저마다 어릴 적에 어떻게 지냈는가 하고 되새기거나 떠올리면서 쓰는 문학으로는 어린이문학이 나오지 못합니다. ‘아이 눈높이가 되어’서 쓰는 문학이 아니라 ‘어른으로서’ 쓰는 문학이어야 합니다. ‘어른으로서 쓰되 아이와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쓰는 문학이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섣불리 ‘아이 눈높이’를 맞춘다면서 어설프게 쓰기에 ‘어설픈(유치하거나 치졸한)’ 글이 자꾸 나옵니다. ‘어른으로서 제 삶을 짓지 못한 채’ 글을 쓰기에, 글감(소재)과 이야기(주제)를 학교생활이나 집안생활을 건드리는듯이 ‘생활동화’를 쓴다고 하지만, 막상 아이들한테 아무런 꿈이나 사랑을 못 심는 글이 거듭 나옵니다.


  어린이문학은 언제나 어른이 씁니다. 이 대목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린이문학은 언제나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습니다. 이 대목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어린이문학을 선물처럼 주거나 아이들한테 베푼다고 하는 뜻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좋지도 않’습니다. 삶이나 사랑이나 꿈은 ‘좋고 나쁨’으로 가르거나 나타내지 못합니다. 사랑은 오직 사랑이 되어야 그릴 수 있고, 꿈은 오로지 꿈이 되어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삶을 써서 아이와 어른이 서로 어깨동무하는 길을 찾으려 한다면, 온통 삶으로 환하게 피어나는 꽃송이가 되는 넋으로 글을 써야 합니다. ‘대리만족’이 아닌 ‘삶·사랑·꿈’을 함께 심어서 함께 가꾸고 함께 누리려는 넋일 때에 비로소 어린이문학을 쓰는 사람(작가)으로 설 수 있습니다. 4348.3.23.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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