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글게 쓰는 우리 말
(1595) 빚을 갚은 고양이 (은혜 갚은 고양이, 고양이의 보은)
은혜 갚은 두꺼비
은혜 갚은 호랑이
은혜 갚은 까치
…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를 살피면 〈은혜 갚은 두꺼비〉라든지 〈은혜 갚은 호랑이〉라든지 〈은혜 갚은 까치〉처럼 말합니다. 한국사람은 이와 같이 “은혜 갚은” 꼴로 말해요. 한국과 이웃한 일본에서는 일본말로 ‘の’를 넣어서 말합니다. 이리하여, 일본에서는 “猫の恩返” 같은 말을 쓰고, 이 이름은 요즈음 한국에서 “고양이의 보은”처럼 옮기기도 합니다.
고양이의 보은 → 은혜 갚은 고양이
빗자루의 보은 → 은혜 갚은 빗자루
일본 만화영화 가운데 〈고양이의 보은〉이 있습니다. 미국 그림책 가운데 《빗자루의 보은》이 있습니다. 일본사람이 빚은 만화영화가 한국에 들어오기 앞서까지 “-의 보은” 같은 말투를 들을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예 없었다고까지 할 만합니다. 그러나, 일본 만화영화 하나를 한국말로 잘못 옮긴 사람들 때문에 한국말이 뒤숭숭하게 어지럽습니다.
한자말 ‘은혜(恩惠)’는 “고맙게 베풀어 주는 신세나 혜택”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으레 “은혜 갚은 두꺼비”처럼 말하기는 하지만, 더 따지고 보면 “고마움을 갚은 두꺼비”라는 소리요, “고마운 사랑을 갚은 두꺼비”라고 할 만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셔요. 한국사람이 한자말을 쓴 지 얼마 안 됩니다. 기껏해야 오백 해도 안 됩니다. 조선이나 고려 같은 정치가 섰을 적에 몇몇 우두머리와 지식인은 중국 한자말을 받아들여서 썼을 테지만, 이 나라를 이룬 거의 모든 시골사람은 수수한 한국말을 널리 썼어요. 수수한 시골사람이 ‘은혜’ 같은 한자말을 쓸 일은 없습니다.
빚갚기
빚을 갚은 두꺼비
사랑을 갚은 두꺼비
요새는 ‘빚’이라는 낱말을 ‘돈’과 얽힌 자리에 흔히 씁니다만, 지난날에는 ‘빚’을 돈과 얽힌 자리보다 ‘고마움·사랑·은혜·신세’를 가리키는 자리에 흔히 썼어요. “오늘은 내가 너한테 빚을 졌네.”처럼 말할 적에는 네가 나를 도와주어서 고마웠다는 뜻입니다. “자, 이제 나도 빚을 갚았어.”처럼 말할 적에는 네가 나한테 베푼 고마운 사랑을 돌려주었다는 뜻입니다.
곰곰이 따지면, 먼먼 옛날부터 한겨레가 두루 쓰던 말은 “빚을 갚은 고양이”입니다. ‘빚갚기’란 ‘은혜 갚기’입니다. 4348.3.2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