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패트롤 쟈코 (일반판)
토리야마 아키라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화책 즐겨읽기 480



‘외계인’인가 ‘우주인’인가

― 은하패트롤 쟈코

 토리야마 아키라 글·그림

 정은서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15.2.27.



  나는 지구별에서 삽니다. 내 몸은 오늘 이 지구별에서 하루를 맞이합니다. 나는 지구별에서 태어났고, 퍽 오랜 옛날부터 지구별에서 나고 죽기를 되풀이했다고 할 만합니다. 이리하여 나는 ‘지구사람’이거나 ‘지구별사람’입니다.


  지구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이 있습니다. 나는 지구에서 다른 별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지구도 수많은 별 가운데 하나이니, 다른 별에서는 지구를 그저 ‘별’ 가운데 하나로 바라봅니다. 그러니까, 내가 살고 내 이웃이 사는 이곳은 ‘지구라는 별’입니다.


  옛날에는 어떠했을는지 모르겠는데, 오백 해나 오천 해쯤 앞선 옛날에는 어떠했을는지 모르겠는데, 한자가 한국에 들어오기 앞서 한국사람은 ‘외계인’이나 ‘우주인’을 어떤 이름으로 가리켰을까 궁금합니다. 임금이나 지식인 같은 이들이 한자를 중국에서 받아들여 썼다고 하더라도, 여느 시골사람은 한자를 몰랐고 한자를 안 썼을 텐데, 여느 시골사람은 참말 ‘외계인’이나 ‘우주인’을 보았다면 어떤 이름으로 이들을 가리켰을까 궁금합니다.



- “그나저나 특이한 비행기로구먼. 자네는 외국인인가?” “외국인일 리가 없잖아. 난 우주인이다.” (18∼19쪽)

- “그나저나 TV 뉴스에선 원시적인 로켓과 아이돌 이야기만 나오더군.” “흥, 어리석은 뉴스지. 우주국은 자금 조달과 화젯거리를 만들려고 정식 훈련을 받은 적도 없는 인기 아이돌을 태운 로켓을 발사할 작정이야.” (33쪽)





  한겨레에는 따로 종교가 없습니다. 정치집권자는 중국에서 유교도 받아들이고 불교도 받아들여서 사람들이 이 종교를 믿게끔 억지를 부리거나 괴롭혔지만, 여느 사람들은 굳이 종교를 믿거나 따를 마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한국에 재미있게도 ‘하느님’이라는 낱말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어요.


  종교도 없는 여느 사람들은 왜 ‘하느님’이라는 낱말을 그 아득한 옛날부터 썼을까요? 불교나 유교를 정치집권자가 받아들이기 앞서,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하느님’이라는 낱말을 지어서 썼을까요? 무엇을 보고 느꼈기에 ‘하느님’이라는 낱말을 지어서 썼을까요?



- “지구인은 정보대로 상당히 몹쓸 생물인 모양이다. 기껏 구해 주러 왔지만 그럴 가치는 없어 보인다.” “구하러 와?” “본부의 레이더가 흉악한 우주인의 별에서 비행물체가 발진한 것을 포착했다! 경로와 속도를 계산해 보니 사흘 후 오전 10시 경에 지구의 이 근방에 도착한다는 것을 알았다! 비행물체에는 무서운 우주인이 타고 있어! 그놈을 무찌르고 지구인을 구하는 것이 진짜 임무다!” (37쪽)

- “흥, 봐줘 가면서 때렸으니 죽지는 않을 거야. 네놈들도 무 매너를 뉘우치고 여성에게 사과한 다음 꺼져라!” (97쪽)





  ‘하느님’이라는 낱말은 ‘하늘 + 님’입니다. 하늘에서 온 사람을 가리키는 낱말이면서, 하늘과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하느님’이라는 낱말은 이 땅에서 태어나 살던 여느 시골사람이 만난 ‘외계인’이나 ‘우주인’을 가리키려던 이름일 수 있습니다. 참말 하늘에서 척 하고 나타났을 테고, 하늘에서 날아서 이 땅으로 내려왔을 테니, 이 모습을 그대로 ‘하느님’이라고 할 만합니다. “아이고, 하느님”이나 “하느님, 맙소사” 같은 말을 참으로 옛날부터 누구나 썼는데, 이렇게 말한 까닭과 뿌리는 틀림없이 있으리라 느껴요.



- “우리의 정보를 팔아넘긴 것은 아닐까?” “그런. 의심하면 못써.” “오모리는 인간혐오증인 주제에 사람이 물러터졌네.” (125쪽)

- “오모리가 말한 것처럼, 미숙하다고는 해도 선량한 지구인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멸캡슐은 당분간 봉인해 둘게.” (197쪽)






  토리야마 아키라 님이 빚은 만화책 《은하패트롤 쟈코》(서울문화사,2015)를 읽습니다. 《은하패트롤 쟈코》는 《드래곤볼》을 이루는 뼈대가 무엇이었나 가만히 밝히는 길잡이책과 같습니다. ‘손오공(카카로트)’이라는 아이가 왜 어떻게 지구별로 왔고, 지구별을 찾아오는 우주인(외계인)은 누구이며, 드넓은 우주를 둘러싸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찬찬히 짚는 실마리를 담는 책입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일 텐데, 《드래곤볼》에서도 《은하패트롤 쟈코》에서도 ‘우주인’이라는 이름을 씁니다. 이들이 쓰는 말은 ‘외계인’이 아닙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지구가 온 우주 한복판’이라 여기거나 ‘온 우주에는 지구에만 생명체가 있다’고 여긴다면, ‘외계인’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어요. 그러니까, ‘외계인’은 너와 나를 남남으로 가르거나 쪼개는 이름입니다. ‘외국인’과 ‘내국인’으로 가르는 이름하고 같아요.


  이와 달리 ‘지구사람(지구인)’이라 한다면, 우리는 모두 이 지구에서 함께 사는 숨결이라는 뜻과 느낌을 나타냅니다. ‘우주인(우주사람)’이라 한다면, 우리는 모두 이 우주에서 함께 이웃이 되는 숨결이라는 뜻과 느낌을 나타내요.



- “놈들의 목적은 많은 별을 정복하는 것이지만, 무서운 것은 전투 자체를 즐기는 사악한 우주인이라는 점이다. 은하패트롤조차 상대가 안 될 만큼 강하고 전멸폭탄도 듣지 않아. 지구처럼 전투력이 약한 인간이 지배하는 별에는 대개 어린애를 파견해서 서서히 인간을 줄여 간다. 놈들은 아동기가 길어. 청년이 될 때까지 유아 체형인 채로 적을 방심시키다가, 순식간에 전투에 적합한 체형으로 성장한 다음 거의 노화하는 일 없이 싸우고 다니지. 겉보기에는 지구인과 똑같아. 꼬리가 있다는 것만 빼면.” (209쪽)






  지구별은 ‘노예 행성’이라고도 합니다. 지구별은 드넓은 온별누리(은하계)에서 아주 끝자락에 있는 별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이 지구별에 다른 우주인이 그리 눈길을 안 둔다고도 합니다. 이는 곳곳에서 여러모로 나오는 말인데, 만화책 《드래곤볼》에서도 살몃살몃 나오기도 합니다.


  가만히 보면 그렇지요. 지구별 사람들은 서로 아끼고 믿으면서 보살피는 사랑보다는 끔찍한 전쟁과 부질없는 스포츠와 바보스러운 강간과 약탈에 휘둘리거나 휩쓸립니다. 전쟁을 그치지 않을 뿐 아니라 온갖 차별과 학대와 계급과 신분 따위를 들먹이는 지구별 사람입니다.


  《드래곤볼》을 보면 ‘사이어인’이 우주에서 싸움을 아주 좋아하고 늘 싸움박질만 하는 겨레로 나오는데, 지구사람도 사이어인 못지않습니다. 다만, 지구사람은 전투력이 엉터리일 뿐이고, 지구사람은 온갖 전쟁무기를 만들지만 덧없는 전투력일 뿐입니다. 사이어인은 이녁 스스로 어마어마한 힘을 끌어냅니다. 스스로 담금질하면서 새로운 힘을 뽑아내고, 스스로 갈고닦으면서 끝없는 힘으로 나아갑니다.


  지구사람은 과학이나 학문도 무척 뒤떨어집니다. 《드래곤볼》이나 《은하패트롤 쟈코》에도 이 대목이 나옵니다. 다른 우주사람은 가볍고 작은 우주선으로 우주마실을 하지만, 지구사람은 이런 우주마실을 못 해요. 게다가 어느 우주사람은 우주선이 없이 우주를 가로지릅니다. 순간이동이나 공간이동을 우주 차원에서 해요.





- “넌 부잣집 딸인데 왜 집을 나와 알바를 하고 이렇게 구석진 섬에 오는 거야?” “SF작가에게는 경험이 필요해. 부자는 이런 생활을 상상도 하지 못하거든. 여기는 최고야 뭐니뭐니 해도 우주인이 있잖아. 그리고 노인과 우주인이라면 내가 아무리 예뻐도 덮치는 일이 없겠지.” (216쪽)

- “프리저가 뭔가 꾸미고 있어. 죽음의 예감이 든다.” “그나저나 당신이 자식을 걱정하다니, 사이어인답지 않아.” “너의 나약한 마음이 옮았나 보지.” … “그냥 다 함께 달아나면 안 될까?” “안 돼. 우린 스카우터 때문에 금방 들킬 거야. 지구라는 먼 별로 프로그래밍 해 뒀다. 식량은 많지만 인간도 자원도 별로 가치가 없어서 주목받지 않는 별이라 안성맞춤이야.” (242쪽)



  ‘손오공’이라고 하는 아이는 지구별을 아낍니다. 손오공이라는 아이는 처음에는 그냥 지구별이 좋았으나, 차츰 사랑으로 발돋움합니다. 왜냐하면, 손오공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한테서 착하고 참다우면서 고운 숨결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싸움을 할 줄 모르고 전투력도 0이지만, 따사롭고 너른 마음으로 모든 것을 녹이거나 잠재우는 고요한 바람을 느꼈기 때문이에요.


  손오공은 좀 투박하거나 살짝 바보스러운 ‘싸움꾼(싸울아비, 전사)’입니다. 처음부터 ‘싸움하는 겨레’로 태어난 탓입니다. 그러나, 손오공은 제 뿌리를 탓하거나 싫어하지 않습니다. 제 뿌리를 ‘남을 괴롭히지 않고 스스로 새로 거듭나려고 하는 발판’으로 여깁니다. 사이어인이라고 하는 뿌리를 ‘이웃을 돕고 아끼면서 사랑으로 나아가도록 다시 태어나도록 이끌어 주는 디딤돌’로 여깁니다.


  손오공은 지구사람한테도 ‘하늘을 나는 법’을 알려줍니다. 아마 지구사람 가운데 ‘크리링’이 가장 힘이 세다고 할 수 있어요. 크리링이라고 하는 아이는 손오공처럼 끝없이 담금질을 하지 못했지만, 제 마음에 있던 시샘이나 미움 같은 바보스러운 느낌을 많이 털었어요. 그렇기에 지구사람 가운데 무척 놀랍게 새로운 몸으로 거듭날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손오공이나 베지터가 ‘초 사이어인’이나 ‘슈퍼 사이어인’으로 스스로 거듭나듯이, 크리링도 ‘초 지구사람’이나 ‘슈퍼 지구사람’으로 스스로 거듭날 수 있어요. 못 할 까닭이 없습니다. ‘못 한다는 생각’이 못 하도록 막습니다. 왜냐하면, 손오공이라는 아이부터 언제나 스스로 ‘한다는 생각’만으로 살았거든요. 만화책 《드래곤볼》은 바로 이 대목을 보여줍니다. 우리들 누구나 ‘한다는 생각’이 있어야 할 수 있습니다. ‘못 한다는 생각’이라면 언제까지나 못 할 뿐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드래곤볼》로 기쁘게 접어들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도록 도와주는 《은하패트롤 쟈코》입니다. 재미있고 뜻있으면서 멋있는 만화책입니다. 4348.3.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