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생각 8. ‘이름’과 ‘이름값’
‘이름이 없는’ 자전거는 없습니다. 모든 자전거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름이 있는’ 자전거를 탑니다. 그런데, 이름만 있는 자전거를 넘어서, ‘이름값 있는’ 자전거가 있습니다. 누구나 ‘이름 있는’ 자전거를 타지만, 모두 ‘이름값 있는’ 자전거를 타지는 않습니다.
이름값 있는 자전거는 이름에 값이 붙은 자전거인 셈입니다. 그래서, 이름값 있는 자전거는 값이 제법 셉니다. 무척 비싸다고 할 만한 자전거도 있습니다.
이름값 있는 자전거는 어떤 자전거일까요? 첫째, 이름이 잘 보입니다. 이름값을 하는 만큼 ‘자전거 이름(상표)’이 아주 잘 드러납니다. 둘째, 값이 셉니다. 이름값을 하니 값이 꽤 셉니다. 셋째, 가볍고 튼튼합니다. 이름값을 할 수 있도록 여느 자전거보다 가벼우면서도 튼튼합니다. 넷째, 가볍고 튼튼하니 빠르게 잘 달립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집과 일터를 오가려고 자전거를 탈 수 있습니다. 삶을 즐기려고 자전거를 탈 수 있습니다. 아이와 자전거를 탈 수 있습니다. 한집 사람들이 두 다리로 즐겁게 나들이를 다니고 싶어 자전거를 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남한테 ‘이름값’을 자랑하고 싶어서 자전거를 탈 수 있습니다. 두 다리를 써서 아주 빠르게 달리고 싶어서 자전거를 탈 수 있습니다.
이름값 있는 자전거는 나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좋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이름값 있는 자전거일 뿐입니다. 돈이 넉넉하기에 이름값 있는 자전거를 장만할 수 있으나, 돈을 푼푼이 모아서 이름값 있는 자전거를 장만할 수 있어요. 다달이 10만 원이나 30만 원씩 여러 해에 걸쳐서 모아서 장만할 수 있고, 한꺼번에 1000만 원이나 3000만 원쯤 쓰면서 장만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과 마음으로 자전거를 탑니다. 자동차를 탈 적에도 저마다 다른 생각과 마음입니다. 돈이 되어 이름값 있는 자동차를 장만할 수 있고, 값싸면서 튼튼하거나 값싸면서 야무진 자동차를 장만할 수 있습니다. 어떤 자동차를 장만하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스스로 즐겁게 잘 타면 됩니다. 연필을 장만할 적에 이름값 있는 연필을 장만할 수 있고, 그냥 값싼 연필을 잔뜩 장만할 수 있습니다. 만년필이나 공책도 이와 같아요. 이름값 있는 것을 쓸 수 있고, 값싼 것을 쓸 수 있어요.
이름값 있는 자전거는 틀림없이 가볍고 튼튼합니다. 그러나 제때 제대로 손질하지 않으면 낡고 닳기는 똑같습니다. 이름만 있는 자전거는 틀림없이 무겁고 덜 튼튼합니다. 그러나 제때 제대로 손질하면 오랫동안 야무지게 타고 다니다가 아이한테 물려줄 수 있습니다.
‘남한테 보여주기에 멋진’ 이름값 있는 자전거를 장만해도 재미있습니다. 남한테 보여줄 마음이 없이 수수하거나 투박한 자전거를 살뜰히 아끼면서 즐겨도 재미있습니다. 어느 쪽이 되든, 내 자전거를 꾸준히 손질하고 아끼면서, 두 다리로 발판을 굴러 바람을 가르는 기쁜 하루를 맞이할 수 있으면 아름답습니다. 4348.3.18.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자전거와 함께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