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새기다
나카노 시즈카 지음, 나기호 옮김 / 애니북스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485



별을 헤아리는 사람

― 별을 새기다

 나카노 시즈카 글·그림

 나기호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06.1.10.



  별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별을 볼 수 있습니다. 별을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은 별을 볼 수 없습니다. 문득 생각하면 말놀이 같은데, 가만히 돌아보면 말놀이가 아닙니다. 별을 못 보는 사람은 처음부터 별을 헤아릴 마음이 없습니다. 별을 보는 사람은 언제나 별을 헤아릴 마음으로 지냅니다.


  시골에 가야 보는 별이 아닙니다.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보는 별입니다. 시골에서만 쏟아지는 별이 아닙니다.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쏟아지듯이 볼 수 있는 별입니다.


  불을 끄면 별이 한결 잘 보이겠지요. 그러나, 불 때문에 별이 더 보이거나 덜 보이지 않습니다. 내 마음 때문에 별을 보고, 내 마음 때문에 별을 못 봅니다. 별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늘과 마주해야 별이 내 가슴으로 쏟아집니다. 별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하늘조차 올려다보지 않으니, 내 가슴에 들어올 별은 하나도 없습니다.



- ‘언제나 이런 식으로 날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걸 보면 지긋지긋해진다. 치료를 해 주고 있는 건지, 그냥 괴롭히고 있을 뿐인지, 나조차도 모르겠다.’ (7쪽)

- ‘아무리 설교를 한들, 어떤 녀석에게 말을 한들, 이 녀석들은 초콜릿 먹는 걸 멈추지 않을 것이다.’ (9쪽)





  바쁜 삶에 어떻게 별을 보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바쁘기 때문에 별을 못 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부터 바빴고, 우리는 언제부터 별을 못 보았을까요?


  가만히 따져 보셔요. 우리가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단 지는 기껏해야 서른 해쯤 될락 말락 합니다. 새마을운동을 독재정권이 밀어붙인 뒤부터 비로소 ‘바쁘다’는 말이 불거졌고, 도시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돈을 벌 일자리를 찾으면서 바야흐로 ‘바쁘다’는 말이 퍼졌습니다.


  이제는 거의 모든 사람이 도시에 몰려서 사니, 도시사람은 너나없이 바쁩니다. 어른도 바쁘고 아이도 바빠요. 어른은 돈을 버느라 바쁘고, 아이는 학교와 학원에 얽매이느라 바쁩니다. 바쁜 어른은, 번 돈을 쓰느라 다시 바쁩니다. 놀러다니거나 술을 마시느라 바쁘고, 인터넷과 스포츠와 게임과 텔레비전과 영화 같은 문화생활을 누린다든지 여행을 하느라 바쁩니다. 아이들도 게임을 하랴 시험공부에 매달리랴 이래저래 참으로 바쁩니다.



- ‘찬찬히 생각해 보면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은 너무나 지당했다. 짐승이든 귀신이든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기 바빴던 내 자신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22쪽)

- ‘셋이 화음을 맞추기엔 조금 어려움이 따르지만, 꼭 잘할 수 있을 거야. ‘도’만 같이 잇어 준다면, 이대로 영원히 평온한 생활을 할 수 있어.’ (45쪽)




  나카노 시즈카 님이 빚은 만화책 《별을 새기다》(애니북스,2006)를 읽습니다. 어쩜 이렇게 ‘톤’으로 하나하나 알뜰히 만화를 빚었을까 싶어 놀랍습니다. 오늘날처럼 바쁜 사회에서 이런 만화를 하나 선보이자면 얼마나 손을 많이 써야 할까요. 바쁜 사람들이 이 만화를 느긋하게 넘기면서 차근차근 생각할 겨를이 있을까요? 바쁜 도시사람이 이 만화를 차분하게 읽으면서 하나하나 별자리를 읽거나 헤아릴 틈이 있을까요?



- “무엇보다 오로라가 가장 보고 싶어! 직접 눈앞에 펼쳐지는 오로라는 장관이겠지?” “당연하지! 어찌나 눈이 많이 오는지 파묻힐 지경이라니까! 수백 마리의 야생 순록이 설원을 가로질러 내달리고, 오로라는 매일 별이 가득한 하늘에 커튼처럼 펄럭여 보일 거야!” (101쪽)

- ‘형의 몸은 칠흑 같은 암흑으로 빠져들고 있다. 형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둠을 받아들여 자신의 별로 승화시키는 이 의식을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151쪽)



  지구도 별입니다. 해도 별입니다. 달도 별입니다. 온누리에 가득한 별은 모두 별입니다. 지구에서 사는 모든 사람은 참말 ‘사람’입니다.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 없습니다. 다 같이 사람이요, 다 다르게 사람입니다. 함께 삶을 짓는 사람이요, 함께 사랑을 이루는 사람입니다.


  별을 헤아리는 사람은 삶을 헤아립니다. 별 흐름을 읽으면서 삶 흐름을 읽습니다. 별자리를 헤아리면서 삶자리를 헤아리고, 별노래를 부르면서 삶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니까, 별을 아는 사람은 삶을 압니다. 별을 제대로 바라보는 사람은 삶을 제대로 바라봅니다. 학문으로 파고드는 별읽기라면 아무것도 몰라요. 이와 같지요. 학문으로 파고드는 삶읽기라면, 이때에도 아무것도 모릅니다.





- “널 괴롭히던 녀석들은 네가 약하기 때문에 상처를 입힌 것이 아니라, 너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알 수 없는 기운이 두려워서 그런 거야.” (154쪽)

- “넌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 그림을 새겨 넣을 필요가 없어. 원래부터 너만의 문양을 지니고 있으니까!” (156쪽)



  내 별은 내 가슴에 있습니다. 네 별은 네 가슴에 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가슴에 별을 품습니다. 나는 내 별을 내 가슴에서 꺼내어 내 온몸에 새깁니다. 너는 네 별을 네 가슴에서 꺼내어 네 온몸에 새겨요.


  내 별이 빛나고, 네 별이 빛납니다. 내 별이 춤추고, 네 별이 춤춥니다. 우리는 함께 손을 맞잡고 별춤을 추면서 별노래를 부릅니다. 언제나 고운 별빛으로 흐드러지고, 늘 사랑스러운 별내음을 맡으면서 하루를 짓습니다.


  만화책 《별을 새기다》를 가만히 새깁니다. 아픈 아이들이 나오고, 노래하는 아이들이 나오며, 초콜릿을 먹는 아이들이 나옵니다. 웃는 아이와 우는 아이가 나옵니다. 모두 별빛처럼 초롱초롱 해맑은 눈망울로 우리를 바라봅니다. 4348.3.17.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