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137) 분명 1
절망의 순간에도 꿈을 기억한다는 것은 분명 멋진 일이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최기숙-어린이, 넌 누구니?》(보림,2006) 202쪽
분명 멋진 일이지만
→ 틀림없이 멋진 일이지만
→ 참으로 멋진 일이지만
→ 대단히 멋진 일이지만
→ 아주 멋진 일이지만
…
한자말 ‘분명(分明)’은 “틀림없이 확실하게”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한국말로 ‘틀림없이’를 쓰면 됩니다. ‘분명’은 ‘흐릿함이 없이’나 ‘똑똑히’나 ‘뚜렷하게’를 뜻한다고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참말 ‘흐릿하지 않게’나 ‘똑똑히’나 ‘뚜렷하게’ 같은 한국말을 쓰면 되지요.
한자말 ‘확실(確實)하다’는 “틀림없이 그러하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사전에서 ‘분명’을 풀이하는 말은 겹말입니다. “틀림없이 틀림없게”로 풀이한 꼴입니다. 이 대목을 더 헤아린다면, 한국사람은 ‘분명하게’나 ‘확실하게’ 두 가지 모두 쓸 까닭이 없는 셈이요, ‘틀림없이(틀림없게)’라는 한국말이 두 가지 한자말에 밀리거나 짓눌리는 셈입니다.
얼굴을 분명하게 알아보다 → 얼굴을 또렷이 알아보다
말소리가 분명하게 들리다 → 말소리가 똑똑하게 들리다
발음이 분명하다 → 발음이 좋다 / 알아듣기 좋다
분명한 증거 → 뚜렷한 증거 / 틀림없는 증거
삶의 목표가 분명치 않다 → 사는 뜻이 흐리멍덩하다
“분명치 않다” 같은 말마디는 “뚜렷하지 않다”로 고쳐쓰면 되는데, 이 자리에서는 ‘흐릿하다’나 ‘흐리다’나 ‘흐리멍덩하다’나 ‘흐리터분하다’나 ‘하리타분하다’ 같은 말마디를 넣을 수 있어요. 흐린 모습을 가리키는 수많은 한국말을 알맞게 살려서 쓰면 됩니다.
이 사건은 타살임이 분명하다 → 이 사건은 틀림없이 타살이다
그녀는 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 그 여자는 틀림없이 운다
태도가 분명한 사람 → 매무새가 또렷한 사람
한국말사전을 보면 ‘분명(奔命)’이라는 한자말도 나오는데, 이런 낱말은 쓸 일이 없습니다. 옛날에 임금과 얽힌 어떤 일을 가리키는 한자말이기는 한데, 이제는 한국말사전에서 덜어내야지 싶습니다. 아니면 역사사전에 싣든지요. 그런데 이런 온갖 한자말을 굳이 역사사전에 실어야 할는지 좀 아리송하기도 합니다. 예부터 권력을 거머쥔 자리에 있는 이들은 한국말을 쓰지 않았는데, 오늘날 대통령이 쓰는 온갖 영어를 앞으로 먼 뒷날에 역사사전에 실으려 한다면, 아무래도 뜬금없는 일이 될 테니까요. 4339.8.22.불/4348.3.16.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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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히 힘든 때에도 꿈을 떠올리니 참으로 멋진 일이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절망(絶望)의 순간(瞬間)에도”는 “절망스런 때에도”나 “끔찍하고 힘든 때에도”나 “끔찍히 힘든 때에도”로 다듬습니다. “기억(記憶)한다는 것은”은 “떠올린다면”이나 “떠올리니”로 손보고, ‘결(決)코’는 ‘조금도’나 ‘썩’이나 ‘그리’로 손봅니다.
분명(分明)
[부]
: 틀림없이 확실하게
- 전구에는 분명 불이 들어와 있지 않은데
[형]
1. 모습이나 소리 따위가 흐릿함이 없이 똑똑하고 뚜렷하다
- 얼굴을 분명하게 알아보다 / 말소리가 분명하게 들리다 / 발음이 분명하다
2. 태도나 목표 따위가 흐릿하지 않고 확실하다
- 분명한 증거 / 태도가 분명한 사람 / 삶의 목표가 분명치 않다
3. 어떤 사실이 틀림이 없이 확실하다
- 이 사건은 타살임이 분명하다 / 그녀는 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분명(奔命) : 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바삐 움직임
- 지난해 농사를 실패하였고 금년에는 분명으로 인하여 지쳤사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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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말 바로잡기
(1664) 분명 2
건물 앞에 거의 지워져 가는 글씨로 “열심 가게”라고 적혀 있는 간판이 걸려 있는 것으로 봐서 1층은 가게로 사용되었던 것이 분명했다
《로알드 달/김연수 옮김-창문닦이 삼총사》(시공주니어,1997) 10쪽
가게로 사용되었던 것이 분명했다
→ 가게로 쓰였구나 싶다
→ 가게로 쓰인 줄 알겠다
→ 틀림없이 가게로 쓰였다
→ 아마 가게로 쓰였겠지
…
잘 알 수 없으나 틀림없이 그러하겠구나 하고 여기기에 ‘틀림없이’라는 낱말을 씁니다. 이 보기글에서도 ‘틀림없이’라는 낱말을 넣으면 됩니다. 그리고, 틀림없이 그러하다고 여기지만, 내가 예전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지는 않았으니 ‘아마’라는 낱말을 넣을 수 있습니다. “가게로 쓰인 줄 알겠다”라든지 “가게로 쓰였구나 싶다”처럼 손질해도 잘 어울립니다. 4348.3.16.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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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앞에 거의 지워져 가는 글씨로 “씩씩 가게”라고 적힌 간판이 걸린 모습으로 봐서 1층은 아마 가게였구나 싶다
“열심(熱心) 가게”는 “바지런 가게”나 “부지런 가게”나 “씩씩 가게”나 “튼튼 가게”로 다듬고, “적혀 있는”은 “적힌”으로 다듬으며, “걸려 있는 것으로 봐서”는 “걸린 모습으로 봐서”로 다듬습니다. ‘사용(使用)되었던’은 ‘쓰였던’이나 ‘썼던’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