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 시골빛 삶노래

― 네 손을 펼치렴



  네가 손을 펼쳐야 네 손을 내가 잡습니다. 내가 손을 펼쳐야 내 손을 내 이웃이 잡습니다. 너와 내가 서로 손을 펼치지 않으면, 우리는 손을 잡을 수 없습니다. 너와 내가 서로 손을 펼칠 때에, 우리는 손을 잡기도 하고 손바닥을 맞대기도 하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너와 내가 춤을 추려면 손을 활짝 펴고 만나야 합니다. 너와 내가 춤을 추듯이 삶을 지으려면 마음을 활짝 열고 함께 살아야 합니다. 손을 펼치고, 마음을 펼치면서, 사랑을 펼칩니다. 삶을 펼치고, 꿈을 펼치면서, 이야기를 펼칩니다.


  우리는 저마다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한꺼번에 두어 걸음이나 서너 걸음을 나아가지 않습니다. 한달음에 열이나 스무 걸음씩 건너뛰지 않습니다. 차근차근 걷습니다. 씩씩하게 걷습니다. 기쁘게 걷습니다.


  가시밭길이기에 더 고단하지 않습니다. 어느 길을 걷든 스스로 고단하다고 여기니 고단합니다. 꽃길이기에 더 싱그럽지 않습니다. 어느 길을 걷든 스스로 싱그럽다고 여기니 싱그럽습니다. 그러니까, 남이 보기에는 가시밭길이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여느 길입니다. 남이 보기에는 꽃길이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따분한 길입니다.


  내 삶은 늘 내가 손수 일굽니다. 내 밭은 늘 내가 손수 짓습니다. 내 말은 늘 내가 손수 가꿉니다. 내 이야기는 늘 내가 손수 들려줍니다. 내 밥은 늘 내가 손수 차려서 먹습니다. 어느 것이든 언제나 내 마음이 움직이면서 이루는 삶입니다. 좋거나 나쁜 것이 없습니다. 오로지 삶이 있습니다. 반갑거나 서운한 것은 없습니다. 오로지 사랑이 있습니다.


  신지아 님이 쓴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샨티,2014)라는 책이 있습니다. 살결이 빠알간 빛깔로 물든 몸으로 태어났다고 하는 신지아 님은 어릴 적에 ‘마음으로 사귀는 동무’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 어린 날을 돌아봅니다. 나한테는 마음으로 사귀는 동무가 있었을까요? 나한테는 여러 놀이동무와 이야기동무가 있었는데, 이들은 나한테 마음동무였을까요? 그리고, 나는 다른 아이들한테 마음동무나 이야기동무가 될 만했을까요?


  신지아 님은 어릴 적에 정신병원에 다녀온 적이 있다고 합니다. 정신병원에서 얼굴을 마주한 의사 아저씨한테 “엄마가 날 왜 여기 데리고 왔는지 이해가 안 가요. 내가 돌았대요. 학교에서 조퇴하면 인왕산으로 달려갔고, 꽃을 보고 풀 냄새를 맡고, 하늘을 가슴에 안고 낮잠을 자면 너무나 좋아요. 학교 가기 싫은 것이 돈 건가요? 어른들은 정말 이상해요. 저는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재미없어요(85쪽).” 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니면서도 인왕산을 오르내렸군요. 인왕산에서 꽃과 풀과 나무를 만났군요. 하늘과 비와 바람과 벼락을 사귀었군요.


  학교에서 보는 어른이나 아이 모두 재미없을밖에 없었겠군요. 풀내음 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이 없고, 꽃송이 같은 웃음을 보여주는 동무가 없으며, 하늘바람 같은 사랑을 나누는 이웃이 없으면, 삶이 재미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만히 보면, 오늘날 아이들은 무척 재미없는 하루를 보냅니다. 풀도 꽃도 나무도 없는 채 하루를 보내야 해요. 하늘도 못 보고 구름이나 비나 눈이나 바람을 못 느끼는 채 하루가 지나가요. 햇볕 한 줌 제대로 쬐면서 하루를 보내는 아이나 어른은 얼마나 될까요. 바람 한 줄기가 온몸을 감싸는 기운을 느끼지 못하는 채 하루를 지나가는 사람은 얼마나 많을까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이 팔다리를 뒤흔드는 몸짓을 지켜보면서, 이런 몸짓이 마치 ‘춤’이라도 되는 양 따라하는 아이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노래하거나 춤추고 싶다는 꿈을 키우는 아이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이나 ‘가수’가 되어서 ‘돈을 많이 벌겠노라’ 외치는 아이만 잔뜩 찾아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언제 어디에서나 늘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는 아이는 드물고, 텔레비전에서 떠도는 춤과 노래를 똑같은 몸짓으로 되풀이하는 아이만 많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지껄이는 갖가지 거칠거나 막된 말을 아무렇지 않게 주워담는 아이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가만히 보면 어른도 똑같은걸요. 어른도 여느 때에 참으로 거칠거나 막된 말을 아무렇지 않게 주워담아요. 아이들은 어른 곁에서 이런 거친 말과 막된 말을 고스란히 지켜보면서 배워요.


  사랑을 배우는 아이가 드뭅니다. 꿈을 물려받는 아이가 드뭅니다. “내 삶을 통해서 내 몸과 마음 그 자체가 다이아몬드가 되는 것, 그것이 내가 갖고 싶은 다이아몬드였다(178쪽).” 같은 생각을 마음에 씨앗 한 톨로 심으면서 하루를 오롯이 누리려고 하는 아이가 몹시 드뭅니다. 아이들은 교과서와 시험공부에 파묻힙니다. 어른들은 아이를 교과서와 시험공부에 파묻습니다.


  삼월이 무르익는 시골에는 쑥내음이 고루 퍼집니다. 다만, 모든 시골자락에 쑥내음이 퍼지지는 않습니다. 마늘밭을 건사하는 마을 어르신은 바야흐로 경운기 몰고 농약을 치느라 부산합니다. 군청에서는 ‘불조심’을 외치면서 아침 낮 저녁에 걸쳐 ‘불 피우지 말자’라든지 ‘논둑과 밭둑 태우지 말자’ 같은 이야기를 마을방송으로 끊임없이 날마다 시끄럽게 떠듭니다.


  나는 우리 집 큰아이와 뒤꼍에서 쑥을 뜯습니다. 쑥을 뜯는 동안 우리 집에서 쑥내음을 듬뿍 들이켜고, 우리 몸과 옷에 쑥내가 가득 뱁니다. 그런데, 마을 한쪽에서는 농약이 퍼지고, 우리 마을뿐 아니라 이웃 여러 마을은 군청에서 떠드는 ‘녹음테이프 마을방송’ 소리로 귀가 아픕니다.


  신지아 님은 “내가 없으면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는 것, 나를 사랑하지 않거나 내가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지 못하면 사랑을 안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도 이해하게 되었다(344쪽).” 하고 말합니다. 내가 나를 아낄 때에 지구별이 나를 아껴 줍니다. 내가 나를 보살필 때에 지구별이 나를 보살펴 줍니다. 내가 나를 사랑할 때에 지구별을 감도는 바람이 나를 사랑해 줍니다.


  봄은 달력 숫자로 오지 않습니다. 봄은 사람들 옷차림에서 오지 않습니다. 봄은 짧은치마라든지 새빨갛거나 샛노란 옷에서 오지 않습니다. 봄은 저잣거리 쑥떡에서 오지 않습니다. 봄은 따스하면서 너그러운 내 마음에서 옵니다. 봄은 따스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에서 오고, 봄은 너그러운 몸짓으로 홀가분하게 함께하는 춤사위에서 옵니다.


  우리 가슴에서 봄이 자랍니다. 우리 가슴에서 여름과 가을이 자랍니다. 우리 가슴에서 겨울이 찾아와 고요하고 고즈넉하게 쉽니다. 우리는 서로 손을 펼쳐서 기쁨과 꿈과 사랑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내 가슴을 열어서 손을 펼칩니다. 4348.3.16.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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