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1037) 낭만적 1


그래도 리젯은 낭만적인 꿈에 부풀었고, 뭔가 모험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니스트 톰슨 시튼/장석봉 옮김-다시 야생으로》(지호,2004) 64쪽


 낭만적인 꿈에 부풀었고

→ 새로운 꿈에 부풀었고

→ 부푼 꿈이 가득했고

→ 풋풋한 꿈에 부풀었고

→ 애틋한 꿈에 부풀었고

→ 싱그러운 꿈에 부풀었고

→ 사랑스러운 꿈에 부풀었고

 …



  ‘낭만’이라는 낱말을 쓰는 분이 있으면 슬쩍 “그러게요, 그런데 ‘낭만’이 무엇을 가리키지요?” 하고 묻곤 합니다. ” 이때에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낭만’이 무엇을 가리키거나 뜻하는지 제대로 이야기해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낱말을 쓰는 사람은 무척 많고, ‘낭만 + 적’ 꼴인 ‘낭만적’을 쓰는 분은 더더욱 많습니다.


  한국말사전에서 ‘낭만’을 찾아보면 퍽 갑갑합니다. 말풀이는 “정서적이며 이상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심리 상태”인데다가 “실현성이 적은” 무엇이라고 나옵니다. 이런 말풀이를 읽으면서 ‘낭만’이 무엇인가를 헤아려 볼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정서적이며’는 무엇이고 ‘이상적으로’는 또 무엇인가요.


  ‘정서적(情緖的)’이란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무엇이라 합니다. ‘정서’는 “사람의 마음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이라 합니다. ‘이상적(理想的)’은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이라 하는군요. 그러니까, “사람들한테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무엇을 일으키는 느낌”이 ‘낭만’인 셈입니다. 이러면서 ‘실현성(實現性)’이 적다고 했는데, ‘실현성’이란 “실제로 이루어질 가능성”이라고 하니까, “이루기 힘들다”는 소리요, 한 마디로 갈무리해 보면, “사람들한테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무엇을 일으키지만 이루어지기 힘든 느낌”을 놓고 ‘낭만’이라 일컫는 셈입니다.


  이번에는 ‘낭만적’ 풀이를 봅니다. “현실적이 아니고 환상적이며 공상적인”이라고 나옵니다. ‘낭만’ 풀이에서는 “실현성이 적은”이라 했는데 ‘낭만적’ 풀이에서는 “현실적(現實的)이 아닌”이라 하는군요. ‘-적’을 붙인 낱말이니 말풀이에서도 ‘-적’을 붙여야 하는가 봅니다. ‘현실적’은 “현재 실제로 존재하거나 실현될 수 있는”을 가리킨답니다. 곧 “이 자리에 있거나 이곳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을 뜻하는 셈이고, “현실적이 아닌”이란 “이 자리에 없거나 이곳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을 가리킵니다. ‘환상적(幻想的)’이란 “생각 따위가 현실적인 기초나 가능성이 없고 헛된”이라 합니다. 말풀이에 ‘현실적인’이 다시 되풀이되는군요. ‘낭만적’ 말풀이는 겹말인 셈입니다. ‘공상적(空想的)’이란 “현실적이지 못하거나 실현될 가망이 없는 것을 막연히 그리어 보는”이라 합니다. 이 말풀이에서도 ‘현실적’이 거듭 나옵니다. ‘낭만적’ 말풀이는 같은 풀이가 세 차례 거듭되는 아주 얄궂은 겹말인 꼴입니다. 게다가 ‘공상적’ 풀이에서는 “실현될 가망이 없는”이라는 대목마저 있습니다. 어쩜 한국말사전 말풀이는 이토록 엉망진창 겹말투성이일 수 있을까요. 아무튼, 한 마디로 간추리자면 “이루어지기 힘들거나 이루어질 수 없는 무엇을 그리는” 일이 ‘낭만적’이라는 소리인데, 말풀이는 얼렁뚱땅 엉터리로 적히고, 이래저래 겹말만 가득합니다.


  이런 말풀이를 읽으면서 낱말뜻을 옳게 헤아릴 만한 사람은 거의 없겠구나 싶습니다. 말풀이를 읽어도 말뜻을 헤아리기 어려울 뿐 아니라, 사람들은 처음부터 말뜻이나 말느낌이 어떠한가조차 제대로 살피지 않는구나 싶습니다.


 꿈같다 . 꿈만 같다 . 꿈과 같다

 꿈결 같다 . 꿈나라 같다 . 꿈누리 같다


  이 보기글에서는 “꿈에 부풀었고”나 “부푼 꿈이 가득했고”처럼 적바림해 보아도 됩니다. 애써 ‘낭만적인’ 꿈이라 적지 않아도 됩니다. 말차례를 바꾸어 “부푼 꿈”이라 한 다음 “부푼 꿈이 가득했고”라든지 “부푼 꿈이 넘쳤고”나 “부푼 꿈으로 즐거웠고”나 “부푼 꿈이 감돌았고”나 “부푼 꿈으로 기뻤고”처럼 적바림할 수 있어요.


  또는 ‘풋풋한’이라든지 ‘애틋한’이라든지 ‘사랑스러운’이라든지 ‘아련히 그리운’이라든지 ‘고운’이라든지 ‘무지개 빛깔’ 같은 꾸밈말을 넣어 봅니다. “신나는 꿈에 부풀었고”처럼 적어 보아도 잘 어울립니다.


  일본사람이 즐겨쓰는 ‘낭만’과 ‘낭만적’이라는 낱말이 이 나라에 들어오기 앞서, 한국사람은 ‘꿈’이나 ‘꿈 같다’ 같은 말로 내 느낌과 넋과 마음을 담아내거나 나타내며 살았습니다. ‘꿈같다’처럼 한 낱말로 쓰지는 않으나, 가만히 보면 ‘꿈같다’처럼 한 낱말을 새롭게 일구어 내 느낌과 넋과 마음을 나타내면 잘 어울리리라 생각합니다.


  이리하여, ‘사랑스러운·애틋한·보드라운·좋은·살가운·풋풋한·기쁜·즐거운·반가운·고즈넉한·아름다운·아리따운·고운·예쁜’ 같은 말마디를 알맞게 골라서 붙일 수 있습니다. 때와 곳을 살펴서 이 같은 꾸밈말을 넣으면 됩니다.


  시를 읊거나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라면, “낭만적인 목소리”가 아닌 “달콤한 목소리”이거나 “꾀꼬리 같은 목소리”이거나 “구수한 목소리”이거나 “보드라운 목소리”라 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낭만적으로 보일지도

→ 무척 멋있어 보일지도

→ 몹시 아름다워 보일지도

→ 참으로 좋아 보일지도


  그러고 보니, 나날이 ‘멋’이나 ‘아름다움’ 같은 낱말로 이야기를 읊는 사람을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나날이 ‘낭만’과 ‘낭만적’이라는 낱말로 이야기를 읊는 사람만 마주합니다. ‘꿈’이나 ‘꿈결’이나 ‘꿈누리’나 ‘꿈나라’ 같은 낱말로 내 넋과 얼을 드러내려는 사람 또한 마주하기 힘듭니다.


  나 스스로 내 삶에 꿈이 깃들지 못하니, 내 넋이나 말에 꿈결 같은 느낌이 묻어나지 못하리라 봅니다. 꿈이 없는 삶에 꿈을 잃은 말입니다. 꿈하고 동떨어진 삶에 꿈이랑 멀어지는 글입니다. 4341.1.14.달/4343.12.6.달/4348.3.14.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래도 리젯은 새로운 꿈에 부풀었고, 뭔가 부딪혀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험(冒險)을 해 보고”는 그대로 둘 만하지만, “부딪혀 보고”로 손볼 수 있습니다.



낭만적(浪漫的) : 현실적이 아니고 환상적이며 공상적인

   - 낭만적 성향 / 순전히 문학도로서의 낭만적 성격과 호기심 /

     낭만적인 분위기 / 그는 낭만적인 목소리로 시를 낭독했다 /

     양 떼를 몰고 저 비단길을 오르는 것도 상당히 낭만적으로 보일지도

낭만(浪漫) : 실현성이 적고 매우 정서적이며 이상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심리 상태

   - 젊은 시절의 낭만 / 정열과 낭만이 넘치던 학창 시절 / 낭만에 젖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1625) 낭만적 2


“그게 이 무사 유령이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미련이야. 그것만 하면 성불할 수 있겠지.” “정말 그것만 하면?” “그러면 더 이상 여한은 없소.” “알겠어요. 어쩐지 딱하기도 하고, 낭만적이야.”

《타카하시 류미코/서현아 옮김-경계의 린네 2》(학산문화사,2010) 17쪽


 낭만적이야

→ 멋있어

→ 아름다워

 …



  아득한 옛날에 싸움이 잦았다고 합니다. 땅을 일구던 수수한 사람은 싸움을 일으키지 않으나, 땅을 일구는 사람을 다스린다는 권력자는 으레 이웃 나라나 겨레를 넘보면서 쳐들어가 싸움을 벌였습니다. 이때에 억지로 싸움터로 끌려가서 칼을 휘두르거나 활을 쏘면서 애꿎게 죽어야 한 사람이 많았고, 이 싸움터에서 죽은 사내 한 사람이 끝끝내 아쉬움을 떨치지 못하고 유령으로 남았답니다. 이 유령은 ‘넋 혼인’을 해 주면 아쉬움을 털고 저승으로 가겠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아이는 “어쩐지 딱하기도 하고, 낭만적이야.” 하고 말합니다.


  사랑을 찾거나 바라면서 저승으로 못 가고 이승에서 떠도는 무사 유령입니다. 이녁 삶이란 슬프다 할 만하고 애틋하다 할 만합니다. 이렇게 슬프다 할 만하거나 애틋하다 할 만한 이야기는 으레 소설이라든지 영화에 나오며, 이렇게 소설이나 영화로 꾸며서 내놓은 이야기를 보는 사람들은 ‘아름답다’라든지 ‘멋있다’라든지 ‘애처로우면서 꿈 같다’고 여기곤 합니다.


  아름다운 사랑을 찾아 온삶을 바치니, 어느 모로 보자면 어리석지만 다르게 보자면 이 몸짓 그대로 아름답습니다. 고운 사랑을 바라며 온마음을 기울이니, 어느 구석으로 보자면 어리숙하지만, 다른 구석으로 살피자면 이 몸짓이 고스란히 곱습니다.


  “어쩐지 딱하기도 하고, 아름다워.”입니다. “어쩐지 딱하기도 하고, 고운 사랑이야.”입니다. “어쩐지 딱하기도 하고, 꿈결 같은 이야기야.”입니다. 4343.12.6.달/4348.3.14.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게 이 무사 유령이 이승에 남긴 마지막 아쉬움이야. 그것만 하면 곱게 저승에 갈 수 있겠지.” “참말 그것만 하면?” “그러면 더 앙금이 없소.” “알겠어요. 어쩐지 딱하기도 하고, 멋있어.”


‘미련(未練)’은 ‘아쉬움’으로 다듬습니다. ‘성불(成佛)’이란 부처가 되는 일을 뜻하는데, 이 자리에서는 “곱게 저승으로 갈”로 손질합니다. ‘정(正)말’은 ‘참말’로 손보고, ‘더 이상(以上)’은 ‘더는’으로 손보며, ‘여한(餘恨)’은 ‘남은 아쉬움’이나 ‘아쉬움’이나 ‘앙금’으로 손봅니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1707) 낭만적 3


넝쿨 집이라고 하면 왠지 아주 특별하고 비밀스러운 느낌이 든다. ‘그 집’이나 ‘거기’라고 하는 것보다 훨씬 낭만적이다

《황선미-나온의 숨어 있는 방》(창비,2006) 204쪽


 훨씬 낭만적이다

→ 훨씬 따스하다

→ 훨씬 포근하다

→ 훨씬 사랑스럽다

→ 훨씬 살갑다

→ 훨씬 좋다

→ 훨씬 낫다

→ 훨씬 듣기 좋다

 …



  즐겁게 지내는 집이라 하면 아무래도 즐거움이 환하게 드러나는 이름을 붙여야 즐겁습니다. 기쁘게 웃고 노래하는 보금자리라 하면 참으로 기쁘게 웃고 노래하는 느낌이 살아날 만한 이름을 붙여야 기쁘면서 사랑스럽습니다. 서로 아끼며 돌보는 사이라면, 서로 아름답거나 살가운 이름을 부르리라 생각합니다. 함께 좋아하며 보살피는 이웃이라면, 함께 반가우면서 좋은 이름을 부르리라 생각해요. 4348.3.14.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넝쿨 집이라고 하면 왠지 아주 새롭고 숨겨진 느낌이 든다. ‘그 집’이나 ‘거기’라고 할 때보다 훨씬 사랑스럽다


‘특별(特別)하고’는 ‘남다르고’나 ‘다르고’나 ‘새롭고’로 손보고, ‘비밀(秘密)스러운’은 ‘숨겨진’으로 손봅니다. “하는 것보다”는 “할 때보다”로 손질합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