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461) 그/그들 1
그들은 스멀스멀 나에게 배어들었지만 그 텁텁하며 구수한 냄새가 싫지 않았으며 부러 피하거나 떨치지 않았다
《이지누 엮음-잃어버린 풍경 1》(호미,2005) 6쪽
그들은 스멀스물 나에게 배어들었지만
→ 그 글은 스멀스멀 나한테 배어들었지만
→ 그 이야기는 스멀스멀 나한테 배어들었지만
→ 그 기행문은 스멀스멀 나한테 배어들었지만
…
이 보기글에 나오는 ‘그들’은 ‘기행문’을 가리킵니다. 이 글을 쓴 분은 다른 사람이 쓴 여러 ‘기행문’을 읽고 나서 ‘그 글’이 이녁 마음으로 스멀스멀 배어들었다고 밝히면서 ‘그들’이라는 대이름씨를 넣습니다.
한국말에서 ‘그/그들’은 무엇을 가리키는 자리에 쓸까요? ‘그/그들’은 사람을 가리키는 대이름씨입니다. 짐승이나 풀이나 나무를 사람처럼 꾸며서 쓰는 문학이나 동화라 한다면 ‘그/그들’을 쓸 수 있다고 할 테지만, 다른 자리에서는 이 대이름씨를 쓰지 않습니다.
“그 글”이라 하지 않고 “그들”이라고 하면 글맛이나 글멋이 날는지 궁금합니다. 대이름씨를 이렇게 써도 될는지 궁금합니다. 대이름씨를 이와 같이 써야 문학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이 보기글처럼 ‘글’이나 ‘책’이나 ‘신문’을 ‘그/그들’로 가리킬 수 있다면, “그 글을 읽어 주셔요”가 아닌 “그를 읽어 주셔요”라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그/그들’을 넣어서 말하면 다들 아리송하다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리라 봅니다. “책을 읽자”라 하지 않고 “그를 읽자”라 하면 그야말로 말이 뒤죽박죽이 되고 맙니다. 4338.11.13.해/4348.3.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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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글은 스멀스멀 나한테 배어들었지만 그 텁텁하며 구수한 냄새가 싫지 않았으며 부러 꺼리거나 떨치지 않았다
‘피(避)하거나’는 ‘멀리하거나’나 ‘꺼리거나’로 다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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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도 익혀야지
(547) 그/그들 4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지금껏 단 한 번도 와 본 적 없던 갯바람 날리는 부산에 그는 닿아 있었다
《김은식-장기려,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봄나무,2006) 24쪽
갯바람 날리는 부산에 그는 닿아 있었다
→ 그는 갯바람 날리는 부산에 닿았다
→ 갯바람 날리는 부산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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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기글에서는 대이름씨 ‘그’를 넣을 수 있습니다. 다만, 글월 사이에는 넣지 않습니다. 글월 첫머리에 넣어야지요. “그는 이제껏”처럼 넣거나, “그는 갯바람 날리는”처럼 넣어야 어울립니다. 글월 사이에 넣는 ‘그를’은 뜬금없습니다. 이 글월을 찬찬히 살피면 ‘그를’은 덜 만합니다. 굳이 넣을 까닭이 없습니다. 4339.4.30.해/4348.3.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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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넋을 차려 보니, 이제껏 어느 한 번도 와 본 적 없던 갯바람 날리는 부산에 닿았다
“정신(精神)을 차려”는 “넋을 차려”로 손보고, ‘지금(只今)껏’은 ‘이제껏’이나 ‘여태껏’으로 손보며, ‘단(單)’은 ‘딱’이나 ‘어느’로 손봅니다. “닿아 있었다”는 “닿았다”로 손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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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도 익혀야지
(529) 그/그들 3
드러누운 채, 얼굴로 떨어지는 눈송이에 흠칫 놀라면서도 그들을 피하지 않았다
《이지누-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호미,2006) 19쪽
그들을 피하지 않았다
→ 이를 피하지 않았다
→ 눈송이를 꺼리지 않았다
→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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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눈입니다. 눈을 보면서 ‘눈들’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비입니다. 비를 보면서 ‘비들’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눈이나 비를 가리켜 ‘그’라고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이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눈송이와 빗방울을 놓고도 이와 같습니다. 한국말에서는 ‘눈송이들’이나 ‘빗방울들’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잘 생각해 보셔요. 바닷물은 ‘바닷물’일 뿐, ‘바닷물들’이 아닙니다.
눈 . 비 . 물 . 바닷물 . 냇물 (o)
눈들 . 비들 . 물들 . 바닷물들 . 냇물들 (x)
영어(미국말이나 영국말)를 쓸 적에는 영어 말투대로 써야 합니다. 영어 말법을 살피면서 써야 합니다. 한국말을 쓸 적에는 한국 말투대로 써야 합니다. 한국 말법을 살피면서 써야지요. 한국말을 어설피 영어처럼 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국말을엉뚱하게 서양 말법이나 말투를 흉내내듯이 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4339.3.24.쇠/4348.3.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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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누운 채, 얼굴로 떨어지는 눈송이에 흠칫 놀라면서도 눈송이를 꺼리지 않았다
드러누운 채, 얼굴로 떨어지는 눈송이에 흠칫 놀라면서도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피(避)하지’는 ‘꺼리지’나 ‘가리지’로 다듬습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