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32. 사진으로 가는 길
‘글’이 없던 때에는 사람들이 누구나 ‘말’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글’이 태어난 뒤 사람들은 아주 빠르게 ‘글’로도 이야기를 나눕니다. 말로도 이야기를 나누지만, 글로도 이야기를 넉넉히 나눕니다. 다만, 글이 태어난 지 아직 얼마 안 된 탓에 글로는 제 느낌이나 뜻을 모두 실어서 보내거나 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오래된 ‘그릇’인 말은 아주 홀가분하면서 살가이 주고받는 ‘이야기 그릇’ 구실을 하지만,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그릇인 글은 때때로 서로 잘못 읽거나 엉뚱하게 받아들이면서 ‘이야기 그릇’이 아닌 ‘싸움 그릇’이 되기도 합니다.
‘사진’은 사람들이 서로 마음과 생각을 주고받는 이야기 그릇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진이 태어난 지는 그야말로 얼마 안 됩니다. 사진이 널리 퍼진 때를 헤아리면 사진은 그야말로 갓난쟁이라고 할 만합니다. 사진으로 수많은 일을 할 수 있고, 사진으로 온갖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만, 아직 어리거나 어설프거나 어수룩한 모습이 곧잘 드러나기도 해서, ‘사진이라는 이야기 그릇’은 앞으로 더 자라야 하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사진을 다루려는 사람들을 보면, 아직도 사진에서는 ‘실험 사진’이 많아요. ‘만드는 사진’이 무척 많이 태어나기도 합니다.
글을 보아도 이와 비슷합니다. 요즈음은 ‘실험 글’은 거의 사라졌다 할 만하지만, ‘억지로 만드는 글(억지로 쥐어짜는 글)’은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잘 헤아려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실험 말’은 없습니다. 말을 실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억지로 만드는 말’은 아무한테서도 눈길을 못 받습니다. ‘억지로 쥐어짜는 말’은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할 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말하듯이 쓰는 글이 될 때에 글은 ‘이야기 그릇’ 구실을 제대로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 또한 말처럼 ‘그저 흐르면서 저절로 이야기가 되는 그릇’ 구실을 할 때에 참답게 사진이라고 할 만합니다. 사진으로 가는 길은 ‘사진이 사진다운 모습으로 뿌리를 내려서 잎을 돋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삶’과 같은 길입니다.
굳이 실험을 하거나 만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애써 만지작거리거나 꼬물거려야 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대로 보여주면 됩니다. 그저 그대로 드러내면서 나눌 수 있으면 됩니다.
‘글’은 ‘노래’나 ‘춤’보다 나이가 어립니다. 그래서 노래와 춤을 헤아리면 글이 얼마나 어린지 잘 알 수 있어요. 쥐어짜는 노래나 춤은 재미없습니다. 억지로 만드는 노래나 춤은 귀와 눈을 아프게 합니다. 수수하면서 부드러이 흐르는 노래와 춤이 될 때에 비로소 귀와 눈을 즐겁게 합니다. 수수하면서 부드러이 흐르는 글일 때에 ‘이야기 그릇이 되는 글’이 됩니다. 이리하여, 사진도 수수하면서 부드러이 흐르는 사진이 될 때에 ‘이야기 그릇’이 되어요.
그대로 찍으면 됩니다. 그대로 보여주면 됩니다. 그대로 나누면 됩니다. 그대로 즐기면 됩니다. 말하듯이 쓰는 글이 가장 아름다우면서 수수한 글이요, 말하듯이 찍는 사진이 가장 아름다우면서 수수한 사진입니다. 4348.2.28.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