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29. 흙손
흙을 만지는 손은 흙손이 됩니다. 흙손이 되면 흙내음이 나고 흙빛이 감돕니다. 흙기운이 서려서, 이 흙손으로 무엇을 만지면 어디에나 흙숨을 가만히 옮길 수 있습니다. 사랑을 어루만지는 손은 사랑손이 됩니다. 사랑손이 되면 사랑내음이 나고 사랑빛이 흐릅니다. 사랑기운이 서려서, 이 사랑손으로 무엇을 만지면 언제나 사랑숨을 퍼뜨릴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손은 모든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내 손은 흙빛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고, 내 손은 사랑빛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내 손은 참을 사진으로 담을 뿐 아니라, 거짓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어요. 내 손은 아름다움과 미움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으며, 내 손은 꿈이나 노래도 얼마든지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다만, 무엇을 사진으로 담든, 내가 스스로 움직이고 내가 스스로 손을 뻗어야 합니다. 언제나 내가 스스로 움직이는 만큼 내 사진이 태어납니다. 내가 스스로 손을 뻗어서 다가가는 만큼 내 사진이 드러납니다.
이웃과 살가이 어깨동무를 하는 사람이 사진을 찍으면, 이 사진에는 언제나 살갑고 포근한 기운이 서립니다. 이웃과 살가이 어깨동무를 하지 않은 채 사진을 찍으면, 이 사진에는 겉보기로는 놀랍거나 훌륭할는지 모르나, 어떠한 따순 기운도 흐르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두멧자락(오지)을 찾아가야 ‘두멧자락(오지)’ 기운이나 모습을 사진으로 찍지 않아요. 우리가 두멧자락이라 하는 곳은 우리가 처음 선 이곳에서 따졌을 적에 멀디먼 곳이지만, 그곳(두멧자락)에서 사는 사람은 그곳(두멧자락)이 그들 보금자리요 삶터이며 고향입니다. 그러니까, ‘오지 여행’을 하는 이들은 ‘내 이웃한테 보금자리요 삶터이며 고향’인 곳을 ‘내 얕은 생각과 눈길’에 따라서 재거나 따져서 함부로 잘라내어 사진에 담는 셈입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오지 여행’을 할 수 없어요. 우리는 언제나 ‘내 이웃 보금자리’를 찾아갈 뿐입니다. 우리는 늘 ‘내 이웃 삶터와 고향’을 만날 뿐이에요.
사진기를 손에 쥔 손은 어떤 손인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손은 흙손인가요? 내 손은 사랑손인가요? 내 손은 웃음손인가요? 내 손은 눈물손인가요? 내 손은 꿈손인가요? 내 손은 어떤 손인지 먼저 또렷이 바라보고 나서 사진기를 쥐어야 합니다. 4348.2.24.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