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21 고요누리



  고요한 곳에는 소리도 몸짓도 없습니다. 고요한 터에는 노래도 춤도 없습니다. 고요한 자리에는 눈물도 웃음도 없습니다. 고요한 삶에는 이야기도 사랑도 없습니다. 그런데, 고요한 곳에는 이 모두가 함께 있습니다. 어찌 된 셈일까요? 아무것도 없는 고요한 누리에 모든 것이 함께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기에 모든 것이 새롭게 자랍니다. 모든 것이 없기에 어느 것이든 새롭게 태어납니다. 어떠한 것이든 홀가분하게 내려놓아 씨앗이 되도록 땅에 심었기에, 이 땅에서는 이 모든 새로운 숨결이 천천히 거듭납니다.


  ‘고요누리’입니다. 고요누리는 ‘가능성’이자 ‘제로포인트’입니다. 아주 조그마한 점이면서 모든 것이 싹틀 수 있는 바탕입니다. 씨앗이면서 온누리입니다. 삶이면서 죽음입니다.


  우렁차게 지르는 소리라야 다른 사람이 듣지 않습니다. 말 없는 말을 마음속에 담아도 모든 사람이 듣습니다. 꽥꽥 목청을 돋아야 저 먼 데까지 소리가 퍼지지 않습니다. 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면서 마음자리에 고요한 숨결을 씨앗으로 심으면, 이 씨앗은 별누리 모든 숨결한테 한꺼번에 퍼져서 그야말로 기운차고 곱게 모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움직임으로 드러나는 몸짓이 되어야 알아차리지 않습니다. 움직임으로 드러나는 몸짓으로 보여주어야 삶을 밝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오늘 이곳에서 바로 나 스스로 모든 것을 합니다. 왜냐하면, 움직임으로 드러나는 몸짓이 있더라도 이 몸짓을 이끄는 생각이 없으면 부질없는 움직임이나 몸짓일 뿐입니다. 나 스스로 키우거나 살찌우거나 북돋우거나 보듬는 생각이 없다면, 어떠한 움직임이나 몸짓도 싹을 틔우지 못합니다.


  이 땅에 씨앗을 심지 않고 비료와 농약과 항생제를 뿌리고 또 뿌린들 아무것도 안 돋습니다. 이 땅에 씨앗을 심지 않고 물만 주거나 볕만 잘 들도록 한들 어떠한 것도 안 나옵니다.


  이 땅에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비료도 농약도 항생제도 끌어들이지 마셔요. 이러한 것은 어느 한 가지조차 없어도 됩니다. 씨앗을 틔워서 키우는 기운은 비료도 농약도 항생제도 아닙니다. 종교도 철학도 교육도 학문도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예술도 ‘사랑’이라고 하는 씨앗을 틔우지 못합니다. ‘삶’이라고 하는 씨앗도, ‘이야기’라고 하는 씨앗도, 노래와 춤과 웃음이라고 하는 씨앗도, 다른 어느 것으로도 틔우지 못합니다.


  고요한 넋이 되어 심는 씨앗에서 모든 것이 자랍니다. 고요한 숨결이 되어 바라보는 씨앗 한 톨을 이 땅(마음)에 심기에 비로소 새롭게 태어날 수 있습니다. 씨앗 한 톨은 늘 기다립니다. 씨앗 한 톨은 이 씨앗을 우리가 손수 이 땅(마음)에 심는 날까지 고요하게 기다립니다. 씨앗 한 톨은 내 손길을 거쳐서 바람을 타고 이 땅(마음)으로 스며듭니다. 이리하여, 내 손길과 바람을 누린 씨앗은 흙(땅/마음) 품에 안겨서 포근하면서 아늑하게 잠듭니다. 포근하고 아늑하게 잠들면서 새로운 꿈을 꾸고, 새로운 꿈을 꾸기에 ‘씨앗’이라고 하는 허물을 비로소 벗으면서 ‘나비’로 깨어나듯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습니다.


  첫누리(1차 의식)가 새누리(2차 의식)입니다. 첫걸음(비기닝)이 새걸음(어드밴스)입니다. 첫걸음을 떼는 첫누리에서 한누리(1차 단계)를 밟습니다. ‘한누리’는 아름답지요. 좋음과 싫음도, 미움과 살가움도, 전쟁과 평화도, 아이낳기와 살곶이도, 지구별 사회에서 일어나거나 터지는 모든 일과 놀이는 다 아름답지요. 그러나 한누리에만 머물 수 없어요. ‘두누리(2차 단계)’로 갑니다. 차분한 곳인 두누리로 갑니다. 사회를 이루고 모임을 엮습니다. 두누리는 한누리와 대면 한결 낫다 싶지만, 두누리에만 머물 수 없어요. 해님이 깃드는 ‘세누리(3차 단계)’로 갑니다. 세누리에서 살짝살짝 놀라운 모습을 엿볼 수 있을 텐데, 세누리에만 머물 수 없어요. 우리는 기쁘게 ‘네누리(4차 단계)’로 갑니다. 네누리에서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는 사랑을 마주합니다. 너와 내가 하나이면서 둘인 사랑을 마주하고, 너와 나는 둘이지만 하나인 사랑을 만납니다. 이윽고 내 몸과 마음에서 온힘을 뽑아내는 터전인 ‘닷누리(다섯누리/5차 단계)’로 갑니다. 닷누리에서 마음껏 힘껏 새로움을 누립니다. 이윽고 ‘엿누리(여섯누리/6차 단계)’로 갑니다. 힘이 아닌 차분한 숨결로도 얼마든지 모든 것을 이루면서 다스릴 수 있는 거룩한 빛을 만납니다. 이리하여 ‘일곱누리(7차 단계)’에 닿습니다. ‘고요누리(제로포인트)’에서 씨앗 한 톨을 심은 우리는 한누리부터 일곱누리까지 찬찬히 걷습니다. 고요한 일곱누리에 닿아서 가없고 끝없는 누리에서 부는 바람을 쐽니다.


  바람을 먹고 바람을 마십니다. 바람을 불러 바람노래가 됩니다. 바람으로 이루어진 ‘바람누리’에서 우리가 가는 곳은 지구라는 별이 깃든 ‘온누리’요, ‘별누리’입니다.


  가슴에 빛을 담습니다. 빛누리에 섭니다. 빛은 ‘까만누리’에서 새롭게 퍼집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돌아가서 씨앗 한 톨이 되는 고요누리에 닿습니다.


  한누리는 흙누리입니다. 두누리는 꽃누리입니다. 세누리는 해누리입니다. 네누리는 하늘누리입니다. 다섯누리는 알(열매)누리입니다. 여섯누리는 꿈(구름)누리입니다. 일곱누리는 씨(씨앗)누리입니다. 홀가분하게 흐르고, 신나게 오가는, 고운 하루입니다. 삶을 마음껏 누려요. 우리 ‘삶누리’를 기쁘게 가꾸어요. 4348.2.16.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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