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군내버스 문득 돌아보기



  나는 시골에 뿌리를 내려 산 뒤, 군내버스를 탈 적마다 공책에 ‘버스가 우리 마을 어귀에 들어온 때’를 꼬박꼬박 적었다. 음성에서도 늘 버스때를 적었고, 고흥에서도 언제나 버스때를 적는다. 내가 마을 어귀에 선 때를 먼저 적은 뒤, 군내버스가 들어온 때를 적는데, 버스가 들어오기로 한 때에 맞추어 들어온 일은 한 차례도 없었다. 짧으면 5분, 으레 10분 남짓, 길면 20분이 넘도록 늦게 들어오기 일쑤이다. 워낙 자동차가 안 지나다니는 조용한 시골이기에 이동안 아이들은 이리 달리고 저리 뛰면서 신나게 노래하고 웃으며 논다. 이렇게 놀 수 있는 시골이니 참으로 호젓하면서 아늑하다. 그런데 군내버스가 늦어도 지나치게 늦는다. 읍내에서 마을로 돌아오는 군내버스는 언제나 ‘어김없는 때’에 맞추어 지나가지만, 이 버스가 마지막 마을에 닿아 읍내로 돌아가는 길에는 언제나 한참 늦는다.


  몇 해 앞서 쓰던 공책과 얼마 앞서 쓴 공책을 가만히 넘기다가 ‘버스 들어온 때’를 적은 글을 보니, 새삼스럽게 골이 살짝 아프다. 시골에서 버스를 모는 일꾼은 왜 이렇게 다닐까? 시골에서 버스를 모는 일꾼은 마을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시골사람은 아무도 시계를 안 보고, 시골사람은 몇 분이나 몇 십 분쯤 늦어도 된다고 여기는가?


  시골 할매와 할배가 목이 빠져라 버스를 기다리게 해 놓고는, 한참 늦게 들어온 버스에 부랴부랴 올라타려 할 때에 ‘빨리 타지 않는다’는 둥, ‘왜 버스삯을 미리 챙겨서 타지 않고, 버스에 오르고서 버스삯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내려 하느냐’는 둥, ‘왜 빨리 자리에 앉지 않느냐’는 둥, ‘웬 짐을 이리 많이 싣고 타려 하느냐’는 둥, ‘버스가 택시인 줄 아느냐고, 아무 데나 세워 달라고 하면 세워 줄 수 있느냐’는 둥, 할매와 할배를 나무라는 목소리를 들을 때면 참 쓸쓸하다. 어느 버스 일꾼도 마을 할매나 할배보다 나이가 많지 않다. 아니, 어느 버스 일꾼도 마을 할매나 할배한테 딸아들뻘이거나 손자뻘이다. 버스 일꾼이 이녁 어버이를 자동차로 모신다고 할 적에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차를 몰는지 한 번이라도, 다문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기를 빈다. 4348.2.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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