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란디의 생일 선물
안토니오 에르난데스 마드리갈 글, 토미 드 파올라 그림, 엄혜숙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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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랫소리와 노래가 아닌 소리

― 에란디의 생일 선물

 안토니오 에르난데스 마드리갈 글

 토미 드 파올라 그림

 엄혜숙 옮김

 문학동네 펴냄, 2009.5.12.



  봄이면 풀벌레가 깨어납니다. 봄이 무르익으면서 풀벌레 노랫소리가 함께 무르익고,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풀벌레 노랫소리가 한결 우렁찹니다. 풀벌레가 저마다 온갖 소리를 낼 적에, 나는 시골에서 이 소리를 노랫소리로 느껴서 받아들입니다.


  경운기가 지나갑니다. 마을방송이 흐릅니다. 택배 짐차가 지나갑니다. 철마다 농약 치는 소리가 들리고, 두멧시골에까지 종교를 퍼뜨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양복을 갖추어 입고 찾아옵니다. 풀벌레가 들려주는 소리가 노랫소리라 한다면, 경운기나 기계나 마을방송이나 종교 퍼뜨리려는 소리는 어떤 소리가 될까요. 자질구레한 소리일까요. 이러한 소리도 모두 노랫소리일까요.



.. 에란디는 일어나 얼굴을 씻고, 블라우스와 치마를 입었어요. 마마는 에란디의 머리를 두 갈래로 땋아 주었어요. 에란디의 길고 탐스러운 머리는 허리까지 내려왔지요 ..  (3쪽)




  두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갑니다.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탑니다. 버스에서 내려 기차로 갈아타는 데까지 걸어서 갑니다. 읍내 버스역에서 이웃 도시로 나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기차역에서 기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면서, 나도 아이들도 발바닥을 구르면서 놉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아이들도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나 수많은 사람들 복닥거리는 소리를 얼마든지 노랫소리로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귀를 찢는 따가운 소리로 여길 수 있고, 때로는 사랑스러우면서 멋진 노랫소리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 소리는 왜 나한테 노래로 스며들까요. 이 소리는 왜 나한테 귀에 거슬릴까요. 나는 왜 이 소리를 귀여겨들으면서 흥얼흥얼 가락에 맞추어 노래를 부를까요. 나는 왜 이 소리에는 귀를 닫고 눈마저 질끈 감고 싶을까요.


  어느 대목에서 노래와 ‘그냥 소리’가 갈릴까요. 어느 대목에서 ‘삶을 밝히는 소리’와 ‘삶에서 고단한 소리’로 나뉠까요. 내 마음은 나를 둘러싼 소리를 어떻게 맞이하고 싶을까요. 내 숨결은 내가 스스로 짓는 소리에 어떤 가락을 담아서 이웃한테 퍼뜨리고 싶을까요.



.. “에란디,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알지?” “그럼요, 마마. 내 생일이잖아요!” 에란디가 말했어요. 내일이면 에란디는 일곱 살이 될 거고, 마마는 에란디에게 생일 선물을 사 줄 거예요. 에란디는 마을 피에스타에 입고 갈 새 옷을 갖고 싶었어요 ..  (7쪽)




  안토오 에르난데스 마드리갈 님이 글을 쓰고, 토미 드 파올라 님이 그림을 그린 《에란디의 생일 선물》(문학동네,2009)이라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시골마을에서 함께 살림을 가꾸는 어머니와 딸아이는 조용히 하루를 누립니다. 어머니는 그물을 손질하면서 고기를 낚고, 아이는 고즈넉한 시골에서 동무와 어울려서 놉니다. 어머니는 딸아이 머리카락을 곱게 빗으면서 아낍니다. 아이는 해마다 새롭게 찾아오는 생일을 기다리면서 고운 꿈을 꿉니다.


  그런데 두 어머니와 가시내한테 고빗사위가 찾아옵니다. 어머니가 고기를 낚을 적에 쓰는 그물이 낡고 해집니다. 어린 가시내가 새 옷을 한 벌 얻었지만, 새 인형을 장만할 돈은 없습니다. 이리하여 어머니는 이녁 머리카락을 잘라서 돈을 마련해 보려 하는데, 어머니 머리카락은 짧아서 쓸 수 없다고 합니다. 아마 시골마을 어머니는 지난해에도 머리카락을 잘라서 돈으로 바꾸었나 봐요. 아직 머리카락이 길게 새로 자라지 못했나 봐요.


  일곱 살이 꽉 차는 가시내 에란디는 망설입니다. 그리고 알아챕니다. 어머니는 왜 머리카락이 짧은지 알아채고, 에란디네 집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에란디가 머리카락이 잘리지 않기를 바라지만, 에란디는 오직 제 뜻대로 머리카락을 잘라서 팔자고 합니다.



.. 마마는 몸을 돌리며 단호하게 말했어요. “내 딸의 머리는 팔지 않아요.” 그때 에란디가 마마의 손을 잡아당기며 마마의 얼굴을 올려다보았어요. “그렇게 해요, 마마. 내 머리를 팔아요.” 에란디가 작은 소리로 속삭였어요 ..  (20쪽)




  어버이는 아이를 낳아 돌봅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너른 사랑을 나누어 주는 하루를 가꾸고 싶습니다. 어버이는 아이가 슬프거나 고단한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는 아이도 같은 마음이에요. 아이도 어버이한테 너른 사랑을 나누어 주는 하루를 짓고 싶어요. 아이도 어버이가 슬프거나 고단한 일을 겪지 않기를 바라요.


  그림책에 나오는 시골마을 어머니가 아이 머리카락을 고이 아끼고 싶듯이, 시골마을 가시내도 어머니 머리카락을 고이 아끼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제 머리카락을 날마다 곱게 빗고 땋아 주듯이, 아이도 나중에는 어머니 머리카락을 곱게 빗어서 땋아 주고 싶습니다. 둘이 오래오래 따순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하루를 아름답게 짓고 싶습니다.



.. “마마, 걱정 마요. 내 머리는 곧 전처럼 길고 예쁘게 자랄 거예요.” “네 머리가 우리 마을에서 가장 길고 아름다웠는데.” 마마가 말했어요. 에란디는 잠깐 멈추었다가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마마, 이제 새 그물을 살 수 있어요?” ..  (27∼28쪽)



  어머니는 아이를 걱정하고, 아이는 어머니를 근심합니다. 두 사람은 아무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걱정과 근심은 오래가지 않아요. 이내 사그라듭니다. 두 사람이 나누면서 키우는 사랑이 아주 크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어머니한테 다부지게 말하지요. 새 머리카락은 곧 다시 자란다고 말하지요. 어머니는 아이를 한결 포근하게 안으면서 생각합니다. 그래 우리한테는 새로운 앞날이 있지 하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사랑하고, 한결같이 꿈을 꿉니다. 늘 춤을 추고 기쁘게 노래합니다.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바라보면서 파랗게 눈부신 꿈을 꿉니다. 파랗게 맑은 냇물을 길으면서 파랗게 눈부신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해맑고 따스한 햇볕을 쬐면서 해맑고 따스한 놀이를 누리고, 해맑고 따스한 손길을 나누면서 해맑고 따스한 하루가 흐릅니다. 4348.2.17.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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