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856) 무임승차
사회의 어떤 분야에든 무임승차는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컴맹이라는 사실에 안달하지 않는다
《장정일-생각, 장정일 단상》(행복한책읽기,2005) 8쪽
어떤 분야에든 무임승차는 있다
→ 어떤 곳에든 묻어가기는 있다
→ 어떤 자리든 얻어타기는 있다
→ 어떤 데이든 끼워살기는 있다
…
한국말사전에서 ‘무임승차’를 찾아보면 “차비를 내지 않고 차를 탐”으로 풀이하는데, 보기글에는 “찻삯이 없는”으로 여는 글을 싣습니다. 그러니까, ‘무임승차’라는 낱말을 풀이할 적에 처음부터 “찻삯을 내지 않고”로 적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찻삯을 안 치르고 몰래 차를 타려 한다면 ‘몰래타기’나 ‘거저타기’나 ‘얌체타기’ 같은 낱말을 새로 지어도 잘 어울리리라 봅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글쓴이가 컴퓨터를 다룰 줄 몰라도 둘레에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얼마든지 ‘묻어서 함께 갈’ 수 있다고 밝힙니다. 이러한 느낌을 나타내려 한다면, ‘무임승차’라는 한자말보다는 ‘곁살이’가 걸맞으리라 봅니다. ‘얹히기’나 ‘업히기’나 ‘도움받기’ 같은 낱말을 쓸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거저먹기’ 같은 낱말을 쓸 만합니다.
주머니에 돈이 없으니 ‘얻어타기’를 합니다. 저한테 힘이나 슬기나 연장이 없으니 ‘도움받기’를 합니다. ‘얹혀가기’나 ‘업혀가기’를 하기도 합니다. 곁에 붙어서 냠냠 받아먹으니 ‘곁살이’입니다.
찻삯이 없는 그에게 무임승차를 허용하는 일생일대의 실수를 범하고
→ 찻삯이 없는 그한테 거저로 타게 한 크나큰 잘못을 저지르고
→ 찻삯이 없는 그를 그냥 태운 어마어마한 잘못을 저지르고
역무원 몰래 기차에 무임승차하려다 들켰다
→ 역무원 몰래 돈 안 내고 기차에 타려다 들켰다
→ 역무원 몰래 기차에 타려다 들켰다
→ 역무원 몰래 차표 없이 기차에 타려다 들켰다
전차를 무임승차할 수 있었고
→ 전차를 거저로 탈 수 있었고
→ 전차를 그냥 탈 수 있었고
함께 살아가는 이 땅에서는, 조금 넉넉하면 기꺼이 나누고, 조금 모자라면 기꺼이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어디에서 시키거나 추켜세우지 않더라도, 조용조용 함께 나누고 즐기면서 어울리면 됩니다. 4341.10.10.쇠/4348.2.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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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어떤 곳에든 곁살이는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컴퓨터를 다룰 줄 몰라도 안달하지 않는다
“사회의 어떤 분야(分野)에든”은 “사회 어떤 곳에든”이나 “사회 어떤 자리에든”으로 다듬고, “컴맹(computer盲)이라는 사실(事實)에”는 “컴퓨터를 쓸 줄 모르나”나 “컴퓨터를 다룰 줄 몰라도”나 “컴퓨터에 깜깜하다는 대목에”로 다듬습니다.
무임승차(無賃乘車) : 차비를 내지 않고 차를 탐
- 찻삯이 없는 그에게 무임승차를 허용하는 일생일대의 실수를 범하고 /
역무원 몰래 기차에 무임승차하려다 들켰다 / 전차를 무임승차할 수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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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도 익혀야지
(73) 뜨거운 태양이 두터운 종이를
뜨거운 태양이 두터운 종이를 뜨겁게 달구었다
《게리 폴슨/김옥수-다리 건너 저편에》(사계절,1997) 7쪽
뜨거운 태양이 두터운 종이를 뜨겁게 달구었다
→ 해가 두꺼운 종이를 뜨겁게 달구었다
→ 햇볕이 두꺼운 종이를 뜨겁게 달구었다
→ 이글이글 타는 해가 두꺼운 종이를 뜨겁게 달구었다
…
해는 뜨거울까요? 알 수 없습니다. 달은 차가울까요? 알 수 없습니다. ‘해’라고 하는 별에서 뿜는 ‘볕’을 놓고는 뜨겁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따로 ‘해·햇볕’이라는 낱말을 씁니다. 해는 눈부실까요? 알 수 없습니다. 해는 온갖 빛깔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해’라고 하는 별에서 나오는 ‘살’을 놓고는 눈부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햇살’이라는 낱말을 쓰고, 곳곳에 퍼지는 햇살을 가리켜 ‘햇발’이라고 따로 쓰며, 해가 처음 솟을 적에 나오는 빛줄기(햇살)를 ‘햇귀’라고 따로 씁니다. 한편, 해에서 나오는 ‘빛’을 놓고 따로 ‘햇빛’이라고 합니다. 뜨겁다고 하려면 “뜨거운 햇볕”처럼 써야 올바릅니다. 이와 함께 “밝은 햇빛”과 “눈부신 햇살”처럼 써야 올발라요. 이를 헤아리지 않는다면, 이 보기글처럼 “뜨거운 태양”처럼 잘못 쓰기 마련입니다.
‘두텁다’라는 한국말은 “의리, 믿음, 관계, 인정 들이 굳고 깊다”를 뜻합니다. 종이는 두터울 수 없습니다. 믿음이나 마음이나 사랑을 두고 ‘두텁다’나 ‘도탑다’ 같은 낱말을 씁니다. 종이를 놓고는 ‘두껍다’라고만 합니다.
한편, 이 보기글은 1997년에 처음 나온 책에 실렸고, 2007년에는 이 보기글이 “태양이 마니가 머리에 덮어 쓰고 있던 두꺼운 판지와 몸을 가리고 있던 상자를 뜨겁게 달구었다”로 바뀝니다. 2007년에 나온 새 번역에서는 “두터운 종이”를 “두꺼운 판지(板紙)”로 고칩니다. 얼핏 보자면, 새 번역은 제대로 바로잡았다고 할 테지만, 곰곰이 살피면, 새 번역도 엉터리입니다. 왜 그러할까요? ‘판지’라는 한자말은 “두껍게 널빤지 모양으로 만든 종이”를 가리켜요. 그러니까, “두꺼운 판지”는 겹말입니다. 그냥 “두꺼운 종이”라고 적으면 될 노릇입니다. 무엇보다 2007년 새 번역에서도 ‘해’를 제대로 가려서 쓰지 못해요. 한자말 ‘태양(太陽)’은 ‘해’를 가리킬 뿐이에요. ‘太陽’은 ‘sun’처럼 외국말입니다. ‘sun’을 ‘선’이나 ‘썬’으로 적는대서 한국말이 되지 않고, ‘太陽’도 ‘태양’이라 적는대서 한국말이 되지 않습니다. 2007년에 나온 새 번역은 “햇볕이 마니가 머리에 덮어쓴 두꺼운 종이와 몸을 가리던 상자를 뜨겁게 달구었다”로 바로잡아야 알맞습니다. 4335.8.12.달/4348.2.12.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햇볕이 두꺼운 종이를 뜨겁게 달구었다
‘태양(太陽)’은 ‘해’로 바로잡아야 하는데, 이 보기글에서는 ‘햇볕’으로 고쳐씁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