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818) 거론할 이유


스크린쿼터는 GATT는 물론 그 후신인 WTO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문화적 예외 조항’으로 볼 때, 현재로선 어떤 ‘경제 논리’로도 축소나 폐지를 거론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김규항-비급 좌파》(야간비행,2001) 89쪽


 축소나 폐지를 거론할 이유가 없기 때문

→ 줄이거나 없애자고 말할 까닭이 없기 때문

→ 줄이거나 없애자는 말을 들먹일 까닭이 없기 때문

→ 줄이거나 없애자고 할 까닭이 없기 때문

 …



  한자말 ‘거론(擧論)’은 “어떤 사항을 논제로 삼아 제기하거나 논의함”을 뜻한다고 하는데, ‘논제(論題)’는 ‘이야깃감’을 가리키고, ‘제기(提起)’는 ‘내어놓음’을 가리키며, ‘논의(論議)’는 ‘이야기함’을 가리킵니다. 말풀이를 여러 가지 한자말로 붙인 ‘거론’이지만, 말뜻을 하나하나 따지면, “이야깃감을 내놓아 이야기를 나눔”을 나타낼 뿐입니다.


  보기글을 돌아봅니다. 어떤 이야깃감을 툭 던지듯이 내놓는다고 한다면, ‘들먹이다’나 ‘들추다’ 같은 낱말을 쓸 수 있습니다. 일본사람이 한자말을 빌어서 쓰는 “거론할 이유” 같은 말투가 아니어도 한국사람은 한국말로 알맞거나 슬기롭게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4337.8.4.물/4348.2.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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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는 GATT를 비롯하여, 나중에 생긴 WTO에서도 받아들이는 ‘문화 예외 조항’으로 볼 때, 아직까지 어떤 ‘경제 논리’로도 줄이거나 없애자고 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는 물론(勿論)”은 “-를 비롯하여”로 손보고, “그 후신(後身)인”은 “나중에 생긴”으로 손봅니다. “인정(認定)하고 있는”는 “받아들이는”으로 손질하고, “문화적(-的) 예외 조항”은 “문화 예외 조항”으로 손질하며, ‘현재(現在)로선’은 ‘아직까지’로 손질합니다. “축소(縮小)나 폐지(廢止)를”은 “줄이거나 없애자고”로 다듬고, ‘이유(理由)’는 ‘까닭’으로 다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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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811) 지속가능하다


하지만 이것이 지속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룬다티 로이/박혜영 옮김-9월이여 오라》(녹색평론사,2004) 8쪽


 이것이 지속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 이 일이 오래갈 수 없는 줄

→ 이 일이 오래 이어질 수 없는 줄

→ 이 일이 늘 이어지지 않는 줄

→ 이 일이 한결같을 수 없는 줄

 …



  2000년대로 접어든 어느 무렵부터 ‘지속가능한 미래’라든지 ‘지속가능’이라는 말마디가 널리 퍼집니다. 마치 유행말 같습니다. 곳곳에서 이런 말을 씁니다. 마치 지난날에는 ‘오래 이어갈 삶’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듯한 흐름입니다.


  한자말 ‘지속(持續)’은 “어떤 상태가 오래 계속됨. 또는 어떤 상태를 오래 계속함”을 가리키고, ‘가능(可能)’은 “할 수 있거나 될 수 있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니, ‘지속가능’이란 “오래 할 수 있음”이나 “오래갈 수 있음”을 나타내는 셈입니다.


 지속가능한 미래

→ 오래갈 앞날

→ 오래 이어질 앞날

→ 한결같이 흐를 앞날

→ 한결같은 앞날


  ‘오래가다’는 한 낱말입니다. ‘오래하다’는 아직 한 낱말이 아닙니다. 앞으로 ‘오래하다’도 한 낱말로 삼아서 쓸 만하리라 봅니다.


  한자말을 끌어들이는 말투가 잘못이나 말썽이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다만, 이 땅에서 아주 오랫동안 살던 옛사람이 오늘 우리한테 물려준 ‘오래가다’라는 낱말이 있다는 대목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오래가는 삶을 생각합니다. 오래가는 꿈을 헤아립니다. 오래가는 사랑과 오래가는 숨결을 곱씹습니다. 오래가는 말이란 무엇일까요. 오래가는 글이란 어떤 글일까요. 4337.7.21.물/4348.2.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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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일이 오래갈 수 없는 줄 우리는 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일이 한결같을 수 없는 줄 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일이 늘 이어지지 않는 줄 안다


‘하지만’은 ‘그러나’나 ‘그렇지만’이나 ‘그런데’로 바로잡습니다. ‘이것이’는 ‘이 일이’로 손질하고,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은 “-하지 않는 줄”로 손질하며, “알고 있다”는 “안다”로 손질합니다. ‘우리는’을 글월 뒤쪽에 넣을 수도 있지만, 이음씨 바로 다음 자리에 넣어야 글월이 매끄럽습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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