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226) 불리다 1


다른 두 명 중 한 명은 ‘영 진저’라고 불리는 열두 살의 소년으로, 평범한 아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고아로서 정상적인 양육을 받지 못했으며, 작년에는 주로 트라팔가르 광장에서 살았다

《조지 오웰/박경서 옮김-코끼리를 쏘다》(실천문학사,2003) 171쪽


 ‘영 진저’라고 불리는

→ ‘영 진저’라고 하는

→ ‘영 진저’라는 이름이 붙은

 …



  ‘부르다’를 잘못 쓰기에 ‘불리다’도 잘못 씁니다. ‘부르다’ 말풀이를 한국말사전에서 살피면 “10. 무엇이라고 가리켜 말하거나 이름을 붙이다”처럼 나오지만, 이 말풀이는 올바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잘못 쓰는 말투를 억지스레 담았으니까요. ‘부르다’는 “이름을 붙이다”를 가리키는 자리에 쓰지 않고 “이름을 외치다”를 가리키는 자리에 씁니다.


  ‘불리다’는 “교무실로 선생님한테 불리어 갔다”나 “많은 사람한테 불리는 노래”나 “시상식에서 내 이름이 불렸을 때”처럼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한테 천재라고 불렸다”처럼 쓸 수는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한테 천재 소리를 들었다”라든지 “많은 사람들한테 천재라는 말을 들었다”처럼 써야 올바릅니다.


 우리는 그를 형님으로 부르면서 깍듯이 대접할 것이다

→ 우리는 그를 형님으로 삼으면서 깍듯이 모실 생각이다

→ 우리는 그를 형님으로 여기면서 깍듯이 모시려 한다

→ 우리는 그를 형님으로 깍듯이 모실 생각이다

 그는 형님으로 불리면서

→ 그는 형님 소리를 들으면서

→ 그는 형님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 그는 형님이 되면서

→ 그는 형님으로서


  ‘불리다’를 제대로 쓰자면 ‘부르다’부터 제대로 써야 합니다. ‘부르다’를 옳게 가누지 못하면 ‘불리다’도 옳게 가누지 못합니다. 여느 말투를 알맞게 쓰지 못할 적에는 입음꼴도 엉터리로 쓰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이 말을 배우려는 뜻으로 한국말사전을 살필 텐데, 한국말사전 올림말이나 낱말풀이나 보기글을 보면, 일본 말투와 번역 말투를 한국말사전에 자꾸 싣기 일쑤입니다. 한국사람이 쓸 낱말이 아닌 일본 한자말과 중국 한자말을 함부로 싣기도 합니다. 이래서야 말을 말답게 바라보기 어렵겠지요.


  쉽지 않을는지 모르나, 먼 옛날부터 우리 어버이가 어떤 말을 썼는지 헤아리면 실마리를 풀 수 있습니다. 학교 교육이나 신문이나 방송에 물들지 않은 시골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어떤 말투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지 찬찬히 돌아보면 실타래를 엮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인문책이나 신문이나 방송이나 교과서에서는 ‘불리다·부르다’를 엉터리로 쓰지만, 이러한 물결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흙을 만지는 시골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고이 흐르는 한국말을 정갈히 쓸 줄 압니다. 전문 학자한테 맡길 말이 아니라, 손수 삶을 짓는 사람이 씩씩하게 가꿀 말입니다. 4337.5.23.해/4348.2.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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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둘 가운데 하나는 ‘영 진저’라고 하는 열두 살 아이로, 수수한 아이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외톨이로서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했으며, 지난해에는 거의 트라팔가르 광장에서 살았다


“두 명(名) 중(中) 한 명(名)”은 “둘 가운데 하나”로 손보고, “열두 살의 소년(少年)”은 “열두 살 아이”나 “열두 살 사내 아이”로 손보며, ‘평범(平凡)한’은 ‘수수한’으로 손봅니다. ‘사실(事實)은’은 ‘알고 보면’으로 손질하고, ‘고아(孤兒)’는 ‘외톨이’나 ‘외돌토리’나 ‘외톨박이’로 손질하며, “정상적(正常的)인 양육(養育)을 받지 못했으며”는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으며”나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했으며”로 손질합니다. ‘작년(昨年)’은 ‘지난해’로 다듬고, ‘주(主)로’는 ‘거의’로 다듬습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369) 불리다 2


오스트레일리아 근해에 서식하는 열대성 어류 중 놀래기과의 작은 기생어류로부터 농어류까지 아주 다른 물고기 서너 종이 모두 그루퍼라는 속칭으로 불린다

《팀 윈튼/이동욱 옮김-블루 백》(눌와,2000) 10쪽


 아주 다른 물고기 서너 종이 모두 그루퍼라는 속칭으로 불린다

→ 아주 다른 물고기 서너 가지를 모두 그루퍼라고 한다

→ 아주 다른 물고기 서너 가지를 모두 그루퍼라고들 한다

→ 아주 다른 물고기 서너 가지를 아울러 그루퍼라고 한다

 …



  물고기 이름을 밝히는 자리에 ‘불리다’라는 낱말을 넣은 보기글입니다. 이름을 밝히려 한다면 ‘하다’라는 낱말을 넣어야 알맞습니다. ‘-라는 이름을 쓴다’라든지 ‘-라는 이름을 붙인다’처럼 적을 수도 있습니다. 4337.11.1.달/4348.2.2.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오스트레일리아 앞바다에 사는 열대 물고기 가운데 놀래기과인 작은 더부살이물고기부터 농어까지 아주 다른 물고기 서너 가지를 모두 그루퍼라고 한다


‘근해(近海)’는 ‘앞바다’나 ‘든바다’로 다듬고, ‘서식(棲息)하는’은 ‘사는’으로 다듬으며, “열대성(-性) 어류(魚類)”는 “열대 물고기”로 다듬습니다. ‘중(中)’은 ‘가운데’로 손보고, ‘기생(寄生魚類)’는 ‘더부살이물고기’로 손보며, “서너 종(種)”은 “서너 가지”로 손봅니다. “-라는 속칭(俗稱)으로”는 “라는 이름으로”로 손질할 수 있는데, 이 보기글에서는 아예 덜 수 있습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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