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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소리 2
라가와 마리모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461
노래 한 마디에 싣는 마음
― 순백의 소리 2
라가와 마리모 글·그림
이상은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3.2.25.
마음을 담아서 말을 하면, 이 말을 듣는 사람뿐 아니라, 이 말을 하는 사람부터 즐겁습니다. 마음을 담아서 말을 할 적에는, 웃음이나 눈물이 저절로 흐릅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깃든 말은 우리 모두를 아름답게 살리거든요. 아름답게 살리는 말은 새로운 바람을 일으킵니다. 새로운 바람은 너와 나 사이에 징검다리를 놓고, 이 징검다리는 서로서로 따사로운 사랑으로 피어납니다.
마음을 담아서 노래를 하면, 이 노래는 듣는 사람뿐 아니라, 이 노래를 하는 사람부터 기쁩니다. 마음을 실어서 노래를 할 적에는, 웃음이나 눈물이 시나브로 흐릅니다. 참으로 그렇지요. 마음이 깃든 노래는 우리 모두를 곱게 살립니다. 곱게 살리는 노래는 새로운 숨결이 됩니다. 새로운 숨결은 너와 나 사이에 무지개를 놓아, 이 무지개는 서로서로 넉넉한 보금자리로 이어집니다.
- “형이 와 있는 동안엔 한 번도 안 켰죠? 들려주는 게 무서워서가 아니었을까요?” (11쪽)
- “동피가 째졌네.” “만든 지 오래됐으면 그리 된다.” “어째서?” “가죽은 살아 있으니까. 오랫동안 바람을 안 쏘인기다.” (37∼38쪽)
백 마디 말이 아니어도 넉넉합니다. 한 마디나 두 마디 말이어도 넉넉합니다. 마음을 담을 수 있는 말이면 언제나 넉넉합니다. 긴 노래나 멋진 노래가 아니어도 반갑습니다. 널리 알려진 노래가 아니어도 되고, 사랑을 실어 부르는 노래이기만 하다면, 우리는 서로 살갑게 어깨동무를 할 수 있습니다. 노래에 깃든 넋이 환한 날갯짓으로 구름 너머로 올라가서 맑은 햇발로 온누리로 퍼집니다.
그러니, 아이한테 들려주는 말뿐 아니라 어른끼리 나누는 말을 살뜰히 주고받을 노릇입니다. 글을 쓸 적이든, 보고서나 논문을 쓸 적이든, 신문글이나 이런저런 보도자료를 쓰든, 어떤 글이든 마음을 담아서 쓸 노릇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는 말과 글은 돈을 벌 생각이 아니라 삶을 지을 생각으로 나누니까요. 삶을 지을 수 있는 말과 글일 때에 꽃답게 피어나면서 작은 씨앗으로 흙 품에 안깁니다.
- ‘그 애가 듣고 있던 것은, 그 프레이즈는. 할배의 즉흥이었다. 이상하다. 할배의 소리를 아는 사람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니.’ (60쪽)
“사와무라는? 어느 정도 켤 수 있어?” “그걸 멀쩡히 켜는 건 무리다. 게다가 나는, 내 마음이 그 곡을 못 따라간다.” (90쪽)
- “카미키 세이류에게 들려주긴 뭘 들려주겠노? 뭐한다꼬? 누굴 위해 켜야 하는지 모를 때는, 나는 켤 수가 없다. 그런 기분인데 내가 우째 마에다한테 ‘켜 주마’ 하고 말하겠나 말이다.” (123쪽)
라가와 마리모 님이 빚은 만화책 《순백의 소리》(학산문화사,2013) 둘째 권을 읽습니다. 둘째 권에서는 주인공 아이가 할머니 앞에서 샤미센을 켜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아이는 왜 할머니 앞에서 샤미센을 켤까요. 아이는 왜 할아버지를 떠올리려 할까요. 아이는 왜 할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소리를 이웃한테 들려줄까요. 아이는 왜 ‘내 소리’를 찾으려 할까요.
실마리는 오직 하나입니다. 사랑입니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사랑합니다. 동무도 이웃도 사랑합니다. 누구보다 아이는 제 스스로 사랑하는 삶을 짓고 싶습니다. 그래서, 샤미센 켜는 길에 서고 싶고, 샤미센으로 꿈을 짓고 싶습니다.
- “자기가 못하는 걸 해 달라고 누가 부탁하면, 니는 우얄래?” “안 할 걸요?” (130쪽)
- “담긴 ‘마음’의 크기는 아느냐 모르느냐 차이다. 하지만 켜 보지도 않고 겁낼 건 없데이. 할매한테는 니 ‘춘효’를 들려 드리면 되잖겄나. 할매가 가진 우리 할배의 기억에, 니가 들어가면 되는 기라.” (137쪽)
바람이 부는 날에는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습니다. 바람이 멎은 날에는 조용한 노래를 듣습니다. 바람은 나뭇가지를 간질이면서 살랑살랑 새로운 노래를 들려주고, 바람은 풀잎을 어루만지면서 살풋살풋 새삼스러운 노래를 들려줍니다.
구름이 짙은 날에는 구름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습니다. 구름이 없는 날에는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들이 노래를 베풉니다. 구름은 구름대로 구름노래를 베풀고, 뭇새는 뭇새대로 날갯짓을 노래처럼 베풉니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뛰면서 노래가 흐릅니다. 어버이가 부엌에서 밥을 지으면서 노래가 흐릅니다. 수저가 딸각이면서 노래가 되고, 이불을 여미면서 노래가 됩니다. 모든 삶은 모든 노래요, 모든 이야기는 모든 숨결입니다.
- ‘60년 넘게 할배의 소리를 기억하던 사람.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춘효’를 만들어 낸 할아버지의 마음을.’ (186∼187쪽)
- “그 사람의 음색은 따뜻하고, 살아갈 용기를 주었지. 네 음색에는 아픔을 어루만지는 따뜻함이 있어. 소리의 혼이 네게 이어져 내려간 게지. 오늘, 옛날과 지금이 이어져서 행복하구나. 정말 고맙다.” “저야말로, 고맙습니더.” “이젠 잠드는 게 무섭지 않아. 앞으로는 좋은 꿈을 꿀 테니.” (206∼207쪽)
나는 내 노랫가락을 찾습니다. 너는 네 노랫가락을 찾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제 노랫가락을 찾아서 길을 걷습니다. 누구는 빙 돌아서 갈 수 있고, 누구는 차근차근 오솔길을 갈 수 있습니다. 숲길을 지나는 사람이 있고, 숲속에서 낮잠을 실컷 잔 뒤 다시 길을 나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마다 다른 사람이 저마다 다른 꿈을 짓는 하루입니다. 저마다 다른 사람이 오늘 하루 새롭게 아침을 열면서 가꾸는 삶입니다. 오늘 켜는 샤미센과 어제 켠 샤미센이 다를 테고, 오늘 들려주는 샤미센과 모레에 들려줄 샤미센이 다를 테지요. 우리는 누구나 날마다 새롭게 자라는 맑은 넋이니까요. 4348.2.1.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