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9 좋아하다·좋다·그리다·사랑



  오늘날 참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아주 자주 쓰지만, 정작 말뜻을 제대로 모르거나 한국말사전에조차 엉터리로 말뜻을 달아서 도무지 도움이 안 되는구나 싶은 낱말로 ‘사랑’이 있습니다. 먼저 한국말사전을 보면, ‘사랑’을 “1.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어머니 사랑) 2.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나라 사랑) 3.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이웃 사랑) 4.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사랑을 고백하다) 5. 성적인 매력에 이끌리는 마음 (사랑을 불태우다) 6. 열렬히 좋아하는 대상 (내 첫 사랑)”처럼 여섯 가지로 풀이합니다. 그런데 이 풀이 가운데 빠져야 할 풀이가 몇 가지 있습니다. 4번 풀이와 5번 풀이가 빠져야 하지요. 두 가지 풀이는 오늘날에 갑작스레 생긴 풀이일 뿐 아니라, ‘사랑’이 담는 뜻을 아주 흐립니다. 그러면, ‘사랑(사랑하다)’이란 무엇일까요?



1. 어떤 사람·넋·숨결·마음을 무척 아끼고 살뜰히 여기다

 - 아이를 사랑하는 어버이 마음과 어버이를 사랑하는 아이 마음은 같아요

 - 사랑을 고이 담아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놀지요

2. 어떤 것을 무척 아끼고 살뜰히 다루며 즐기다

 - 할머니는 숲을 사랑하고 할아버지는 바다를 사랑하셔요

 - 다 함께 평화를 사랑하면서 어깨동무를 하기를 바라요

3. 서로 깊고 넓게 생각하면서 살뜰히 아끼고 믿다

 - 어머니와 아버지는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 나한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4. 이웃이나 동무를 돕거나 따뜻하게 마주하다

 -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따뜻하고 너그럽지요

 - 힘들어 하는 동무한테 손길을 내미는 사랑

5. 애틋하게 귀여운 사람·아기·짐승·숨결을 일컫는 말

 - 할머니는 나를 보면 “우리 사랑” 하면서 부르셔요

 - 우리 집 고양이는 깜찍한 내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낱말에는 ‘가치판단’이나 ‘감정’이 깃들지 않습니다. 꾸밈없이 바라보면서 아낄 줄 아는 마음이 사랑입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 모든 것을 녹일 수 있는 마음이 사랑입니다. 이러한 뜻과 느낌에서 벗어나는 말풀이를 섣불리 ‘사랑’이라는 낱말에 끼워넣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한국말사전에 나오는 ‘사랑 4’나 ‘사랑 5’는 무엇일까요? 남녀(또는 남남이나 녀녀) 사이에 애틋하게 흐르는 마음은 ‘좋아하다’입니다. ‘사랑 4’로 쓸 뜻이나 느낌이 아닌 ‘좋아하다’로만 적어야 합니다. ‘사랑 5’는 무엇인가 하면 ‘살섞기’입니다. “성적인 매력에 이끌리는 마음”은 언제나 ‘살섞기’나 ‘살 비비기’나 ‘살갗 쓰다듬기’로 드러납니다. 이러한 모습이나 몸짓은 아주 다른 낱말로 가리켜야 합니다.


  사람이 사는 이 땅에서는 모두 네 가지 흐름에 따라 마음이 나타납니다. 네 가지 흐름이라고 나눌 만하지만, 어느 흐름이 더 높거나 낮지 않습니다. 그저 흐름일 뿐입니다. 이 흐름을 살펴보겠습니다.


 1. 좋아하다 

 2. 좋다

 3. 그리다

 4. 사랑(사랑하다)


  ‘좋아하다’는 기쁨과 슬픔이 있는 마음이요, 괴로우며 신나는 느낌이 있는 마음입니다. 아프기도 하다가 즐겁기도 합니다. 시샘이라든지 미움 같은 마음도 있고, 반가움이나 고마움 같은 마음도 있습니다. “서로 이끌리는 마음”이란 ‘좋아하다’입니다.


  ‘좋다’는 ‘좋아하다’와 사뭇 비슷하다 할 만하지만, 한 걸음 나아간 마음을 가리킵니다. ‘좋다’고 할 적에는 느낌(감정)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너 없이는 못 산다고 할 적에는 ‘좋아하다’요, 너를 참으로 아름답거나 멋지거나 훌륭하게 느낀다고 할 적에는 ‘좋다’입니다. ‘좋아하다’라는 느낌일 적에 두 사람은 짝짓기나 살섞기만 할 수 있습니다. ‘좋다’라는 느낌일 적에 두 사람은, 이를테면 ‘한결같은 믿음(영원한 우정)’이 됩니다.


  ‘그리다’는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도 서로서로 생각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이리하여, 님을 그린다고 말하고, 꿈을 그린다고 말하며, 그대를 그린다고 합니다. ‘좋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마음이 바로 ‘그리다’입니다. ‘그리다’라는 마음이 될 수 있으면, 두 사람은 서로 거룩합니다. 서로 차분하게 아름답습니다.


  ‘사랑’은 ‘좋아하다’와 ‘좋다’와 ‘그리다’를 지나서 넷째 흐름입니다. ‘사랑’이 되면, 가치판단이나 감정이나 사회의식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름다움과 거룩함까지 넘어서는 마음이 ‘사랑’입니다. 가없이 넓으면서 끝없이 깊은 마음결이 바로 ‘사랑’입니다.


 1. 좋아하다 → 짝짓기 . 살섞기

 2. 좋다 → 믿는 마음 . 차분한 생각

 3. 그리다 → 거룩한 숨결 . 아름다운 빛

 4. 사랑(사랑하다) → 가없는 넋 . 너른 바람


  사회나 문학이나 종교나 정치나 교육이나 예술 같은 곳에서 함부로 잘못 쓰는 ‘사랑’이라는 낱말에 휩쓸리거나 휘둘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아무 자리에나 아무렇게나 쓰는 낱말이 아닙니다. 거의 모든 사람은 ‘좋아하다’라는 느낌으로 가리켜야 하는 데에서 으레 ‘사랑’이라는 낱말을 함부로 씁니다.


  덧붙인다면, ‘좋아하다’일 때에는 ‘팬클럽’입니다. 팬클럽은 자칫 ‘우상’이나 ‘아이돌’이 되고 맙니다. 예배당에 다니는 퍽 많은 분들은 ‘아무개 팬클럽’처럼 종교에 휘둘립니다. 정당선호도 조사나 국민투표는 거의 ‘좋아하다’ 테두리에서 이루어집니다. “믿는 마음”이나 “차분한 생각”을 가리키는 ‘좋다’는 종교하고 동떨어집니다. 성직자나 교사 가운데 ‘좋아하다’를 넘어선 사람은 여러모로 똑똑합니다. 어느 한쪽에 안 치우치지요. 이런 분들은 삶을 ‘좋다’라는 눈길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리다’일 적에는 둘레를 환하게 밝히는 빛이 우리한테서 저절로 나옵니다. 그래서 ‘님 그리기’를 할 줄 아는 마음인 사람은 참으로 거룩하다고 합니다. ‘사랑’이라는 마음이 된다면, 모든 것을 녹이기에, 아픔도 미움도 모두 녹입니다. 사랑일 수 있을 때에, 예부터 흔히 일컫는 “할머니 손은 약손”이 됩니다. 바로 사랑스러운 손길이기에 아픈 데를 깨끗하게 낫게 해 줍니다. 사랑으로 지은 밥이 사람을 살리고, 사랑으로 들려주는 말이 생각과 마음을 곱게 보듬습니다. 4348.1.3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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