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개 삽사리 우리 문화 그림책 3
이가을 지음, 곽영권 그림 / 사계절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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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72



어떤 숨결이 되고 싶은가

― 사자개 삽사리

 이가을 글

 곽영권 그림

 사계절 펴냄, 2005.9.26.



  나무는 겨울에도 제자리에 우뚝 서서 찬바람을 맞습니다. 눈이 내리면 눈을 고스란히 맞습니다. 나뭇가지에도 눈이 쌓이고, 나뭇줄기에도 눈이 꽁꽁 얼어붙습니다. 나무는 눈이며 바람을 모두 맞아들이면서 겨울마다 더욱 씩씩하게 자랍니다.


  나무는 여름에도 한 곳에 곱게 서서 불볕을 쬡니다. 여러 날 가뭄이 들든 여러 날 장마가 지든 볕과 비를 모조리 맞습니다. 나뭇잎이 바싹 마르겠구나 싶은 날에도, 나뭇잎이 빗물에 온통 젖는 날에도, 볕과 비를 고맙게 맞아들이면서 여름마다 한결 튼튼하게 자랍니다.


  풀벌레는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풀밭에서 지냅니다. 풀밭에서 바람을 쐬면서 하루를 누리고, 풀밭에서 바람 따라 하늘을 날기도 하며, 풀밭에서 밤별을 새하얗게 올려다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새는 눈이 오거나 냇물이 꽁꽁 얼거나 숲에서 지냅니다. 때로는 숲에서 벗어나 마을 언저리에서 먹이를 찾거나 보금자리를 살피려고 합니다. 서로 깃을 부비면서 추위를 견딥니다. 나뭇가지에 살며시 내려앉아 먼 곳을 바라봅니다. 노래하듯이 서로서로 부르고, 펄럭펄럭 가벼운 날갯짓으로 어디로든 날아갑니다.





.. 스님이 가만히 앞을 살펴보니 저만치 웬 사자가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오래 굶었는지 배가 홀쭉한 젊은 수사자였습니다 ..  (7쪽)



  사람이 집을 짓습니다. 살 곳을 살펴서 집을 짓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살다가, 짝을 이루어 둘이 살고, 어느덧 아이가 하나둘 태어납니다. 아이가 늘면서 살림이 불고, 아이가 자라면서 새로운 집을 짓습니다. 새로운 집을 짓더니 어느새 마을이 태어나고, 마을에는 오순도순 새로운 이야기가 퍼집니다.


  처음에는 손수 심고 가꾸면서 갈무리하는 삶입니다. 처음에는 함께 나누고 서로 도우면서 어우러지는 삶입니다. 그런데, 함께 얼크러지면서 나누는 삶을 잊고, 누군가를 심부름꾼으로 부리려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손수 씨앗을 심지 않는 사람이 다시 나타나고, 손수 집을 짓지 않는 사람이 거듭 나타나며, 손수 옷을 짓지 않는 사람이 자꾸 나타납니다. 도시가 생겨요.


  도시에서 사람들은 ‘내 삶 짓기’를 하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내 삶 가꾸기’를 하는 듯하지만, 가만히 살피면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해 주는 삶’입니다. ‘내 일을 해서 살림을 꾸리는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삶’입니다. 오늘날 도시에서 사는 사람이 지내는 집이든 먹는 밥이든 입는 옷이든, 모두 ‘다른 사람이 지은 것’입니다. 내가 손수 지은 것이란 찾아볼 수 없습니다.




.. “우선 이걸 좀 먹자꾸나.” 스님은 주먹밥 한 덩이를 꺼내어 사자에게 주었습니다. 사자는 주먹밥을 허겁지겁 먹었습니다. “이게 무엇인가요?” “밥이란다.” “다른 동물을 죽이지 않고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인가요?” “그래. 논과 밭에서 나는 곡식을 익혀 만든 음식이지.” “이것만 먹고도 살 수 있나요?” ..  (11쪽)



  이가을 님이 글을 쓰고 곽영권 님이 그림을 그린 《사자개 삽사리》(사계절,2005)를 읽습니다. ‘삽사리’가 된 ‘사자’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입니다. 사자는 어느 날 제 삶을 새롭게 보았고, 새롭게 보았기에 더는 ‘사자로 지내지 못하겠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이런 사자를 새로운 삶으로 이끌 만한 동무가 없습니다. 모두 사자를 꺼릴 뿐입니다.


  사자는 왜 사자를 그만두고 다른 숨결이 되고 싶을까요? 사자는 왜 사자로 지내는 삶을 버리려 할까요? 사자는 왜 사자 아닌 다른 넋으로 거듭나려고 할까요?


  고기를 먹든 풀을 먹든 모두 목숨입니다. 무엇을 먹든 모두 목숨입니다. 지구별에서 살려면 다른 목숨을 먹어야 합니다. 채식을 하느냐 육식을 하느냐가 아닌, 다른 목숨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내 목숨이 달라집니다.




.. 스님은 지나는 길에 예불을 올리고 사자는 그러는 스님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런 날은 스님에게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드는 것이니, 마음을 잘 닦으면 뜻한 바를 이룰 수 있느니라.” 이야기가 밥이 되고 이야기가 잠이 되었습니다 ..  (34쪽)



  모든 것은 마음이 지을까요? 어느 모로 본다면 마음이 모든 것을 짓는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마음만 있는 대서 어느 것이나 짓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머리에서 생각이 나와서 마음에 씨앗을 심어야 비로소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없는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짓지 못합니다.


  사자가 삽사리로 될 수 있던 까닭은 생각을 마음에 심었기 때문입니다. 사자는 처음에는 어떤 생각을 심어야 할는지 몰랐어요. 이러다가 어느 스님을 만나 함께 돌아다니면서 한 가지를 깨닫습니다. 고기도 밥도 안 먹고 ‘이야기’를 먹고 ‘바람’을 마시면서 삶을 지을 수 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그래서 아주 새로운 숨결로 거듭나려는 생각을 마음에 심었고, 이 마음에 따라 몸이 달라집니다.


  사자가 삽사리로 거듭났다면, 우리도 다른 숨결로 거듭날 수 있을 테지요. 사자가 마음자리에 씨앗 한 톨 심으면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면, 우리도 우리 마음자리에 아름다운 씨앗 한 톨 심으면서 새롭게 거듭날 수 있을 테지요. 4348.1.3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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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처럼 2015-01-31 11:37   좋아요 0 | URL
쉽고 아름다운 글에 빠져듭니다. 마음자리에 따뜻한 씨앗 하나 심어 뿌듯하네요.

숲노래 2015-01-31 22:32   좋아요 1 | URL
우리는 언제나 고운 씨앗을 심는 멋진 이웃이라고 느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