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읽는 ‘두 가지’ 책



  아이들은 두 가지 책을 읽습니다. 첫째, 스스로 아름답다고 여기는 책을 찾아서 읽습니다. 둘째, 어버이가 좋다고 여겨서 내미는 책을 받아서 읽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첫째 자리보다는 둘째 자리에 있는 책을 훨씬 많이 읽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어린이책은 아무래도 어버이나 둘레 어른이 이모저모 살피거나 따져서 아이한테 건네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스스로 골라서 읽기란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책 도서관에서는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고르겠지요. 그런데, 아이들은 ‘아이인 내가 읽고 싶은 책’이 눈앞에 있어도, 선뜻 손을 못 뻗습니다. 두리번두리번 살핍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우리 어머니가 이 책이 좋다고 했는데’라든지 ‘우리 아버지가 이 책을 읽으라 했는데’ 같은 말이 퍼뜩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퍽 어린 나이일 적에는 ‘어른 잣대’로 어린이책을 가리거나 따지지 않는 어버이요 어른일 수 있지만, 아이가 대여섯 살쯤 되고 예닐곱 살이나 여덟아홉 살쯤 되면, 어버이와 어른들 눈빛과 눈썰미가 확 달라집니다. 아이가 열 살을 넘고 열두어 살을 지나면 어버이와 어른들 눈초리는 확 바뀝니다. 어떻게 바뀔까요? ‘시험공부에 도움이 되는 책’이 아니면 안 쳐다보는 어버이나 어른이 되고 맙니다.


  한국에서 나오는 창작그림책이나 번역그림책을 가만히 보면, ‘학습 효과를 북돋우려고 하는 책’이 꽤 많습니다. ‘아름다운 삶과 사랑과 꿈을 담은 이야기책’보다 ‘학습 효과와 시험성적에 이바지하는 책’이 무척 많아요.


  수많은 위인전은 ‘삶과 사랑과 꿈’보다는 ‘학습 효과’로 기울어집니다. 청소년문학도 이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세계문학전집’이나 ‘고전명작’으로 뽑는 책을 찬찬히 보기만 해도 쉬 알 수 있습니다. 어른(어버이와 교사)이 아이한테 건네려고(추천하려고) 하는 책을 가만히 보셔요. 참말 아름다운 책을 아이한테 읽히려 합니까, 아니면 시험공부에 이바지할 학습 효과를 바라며 읽히려 합니까?


  책을 읽는 까닭을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해야 합니다. 책은 학습 효과(교훈) 때문에 읽히지 않습니다. 삶이 아름답기에 책을 짓고, 아름다운 사랑을 물려주고 싶기에 책을 엮으며, 맑은 꿈을 이루는 길이 즐겁기에 책을 씁니다. 아이와 함께 읽을 책은 오직 ‘삶과 사랑과 꿈’을 이야기하는 책이어야 합니다. 어버이와 어른이 스스로 즐기거나 누릴 책은 오로지 ‘삶과 사랑과 꿈’을 착하며 참되고 아름답게 짓는 이야기가 흐르는 책이어야 합니다. 4348.1.29.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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