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여우 4
오치아이 사요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59



우리 멋진 아이들

― 은여우 4

 오치아이 사요리 글·그림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4.9.30.



  곰곰이 돌아보면, 나는 모든 것을 다 아는데, 그동안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내가 모든 것을 다 알듯이, 내 둘레에 있는 모든 이웃과 동무도 ‘모든 것을 다 압’니다. 내 이웃과 동무 가운데에는 이녁이 모든 것을 다 아는 줄 슬기롭게 알아채거나 깨달은 분이 있을 테고, 아직 받아들이지 않은 분이 있을 테며, 잘못 받아들인 분이 있을 테지요. 이를 미처 헤아리지 못한 분이 있을 테고요.


  어떤 모습이든 모두 아름답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는 줄 알아챌 적에도 아름답고, 아직 이를 안 알아채더라도 아름답습니다. 저마다 스스로 짓는 삶이니까요.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은 ‘모르는 것이 없’는 줄 압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뿐 아니라, 돌이나 나무하고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줄 알기도 해요. 새나 구름이 우리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는가를 환하게 알아챌 수 있고, 연필이나 책하고도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을 만합니다.





- “국자를 망가뜨린 건 확실히 잘못한 일이지만, 중요한 건 그걸 반성하고 사과하는 마음이란다. 그러니까 여우님도 용서해 주실 거야.” (31쪽)

-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건 매우 멋진 일이란다. 할머니 때는 웬만해서는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으니까. 좋아하는 사람과 맺어질 수 없는 시절이었지! 그러니까 좋아하면 솔직하게 고백해도 돼. 언젠가는 나나미 너를 좋아해 줄 여자애가 나타날 거야.” (60쪽)



  나한테는 작은 노트북과 태블릿이 있습니다. 내 작은 노트북은 올해로 열두 해째 함께 지냈지 싶습니다. 작고 가벼운 노트북인데, 두 아이와 다니며 가방 짐을 줄이려고 더 가벼운 태블릿을 장만했어요. 이러다 보니 노트북을 쓸 일이 없습니다. 이 아이(작은 노트북)한테는 참 미안한 일이지만 이리 되고 맙니다. 그런데 새로 장만한 태블릿이 곧잘 말썽을 일으켰어요. 안 켜지거나 안 꺼집니다. 왜 이럴까,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새로 장만한 기계인데, 어쩜 이렇게 ‘말을 안 들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내 생각이 바로 이 아이(새 태블릿)를 그러한 말대로 이끌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내 생각을 불태우기로 합니다. 내가 스스로 품은 생각인 ‘힘들다’와 ‘말을 안 듣네’라는 두 마디를 마음속으로 활활 불태웁니다. 이러고 나서 ‘사랑스럽다’와 ‘착하다’와 ‘고맙다’ 세 마디를 마음속에 담습니다. 태블릿을 내 무릎에 얹은 다음, 태블릿 화면에 내 오른손을 대고서 이 세 마디를 한동안 마음으로 읊었어요. 이렇게 있는 동안 태블릿 화면이 두근거린다고 느꼈고, 꽤 따스한 기운이 퍼지고 난 다음에 전원 단추를 눌렀지요. 그러니, 이때부터 여태까지 아주 잘 켜지고 잘 꺼집니다.



- “네가 결정한 일이라면 아빠는 뭐든지 응원할게.” (81쪽)

- “엄마가 했으니까 나도 되고 싶었고, 엄마가 했던 일을 알고 싶었어. 지금도 무녀를 동경하고 신에게 봉사하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 무녀가 아니라, 나는 분명 ‘엄마’가 되고 싶었던 거야.” (84∼85쪽)





  오치아이 사요리 님이 빚은 만화책 《은여우》(대원씨아이,2014) 넷째 권을 읽습니다. 만화책 《은여우》에 나오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사랑스럽고 멋집니다. 어버이와 동무와 이웃한테서 사랑을 받으니 사랑스러울 수 있으나, 아이들 스스로 사랑스럽습니다.


  남한테서 얻는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에서 길어올리는 사랑입니다. 남이 해 주기를 바라는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 이루거나 바라는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스러운 사람은 스스로 사랑스럽습니다. 멋진 사람은 스스로 멋집니다. 놀라운 사람은 스스로 놀랍습니다. 남이 북돋우거나 추켜세우기에 멋지거나 놀랍지 않아요. 스스로 삶을 북돋우거나 끌어올릴 줄 알기에 멋지거나 놀라븝니다.



- “여자라서 처음에는 남편에게 신사를 맡기고, 저는 무녀를 하려고 했는데, 그것보다는 제 스스로 신직이 되어 신사를 잇고 싶어요.” (138쪽)

- “애 나름대로 고민해 결정한 일이잖아. 그럼, 그걸 인정해 주는 게 어른 아냐?” (144쪽)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는 두 아이도 언제나 멋지고 사랑스럽습니다. 나와 곁님이 낳은 두 아이인 터라 멋지거나 사랑스럽지 않아요. 아이들 스스로 멋지고 사랑스럽습니다. 이웃에 있는 다른 아이라든지, 마을에 있는 다른 아이(우리 마을에는 아이들이 없고 면소재지나 읍내에만 아이들이 있지만)도 스스로 멋지고 사랑스럽지요.


  그런데, 이러한 멋과 사랑은 예전부터 느끼면서 알기는 했을 텐데, 예전에는 제대로 못 느끼거나 미처 알아채지 못한 모습이 많구나 싶습니다. 내가 나 스스로 얼마나 멋지고 사랑스러운가를 그동안 꾹꾹 눌러서 밟기만 했듯이, 내 둘레에서도 수많은 이웃과 동무가 이녁한테서 멋지거나 사랑스러운 모습을 이녁 스스로 꾹꾹 눌러서 밟기만 하는구나 싶기도 해요.


  사회에서 억누르고 학교에서 짓누릅니다. 정치와 문화로 억누르고, 제도와 틀로 짓누릅니다. 참말 온갖 사회의식이 우리를 누르거나 밟으려고 해요.




- “긴타로, 나는 애당초 평범한 여우야. 산에서 들에서 그저 가족들과 함께 살았지. 인간과 똑같아. 하지만 신의 사자가 된 뒤로 비로소 알았어. 인간이란 매우 깊고 복잡한 존재라는 것을.” (175쪽)

- “인간은 신 앞에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마치 갓난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이 되지. 긴타로, 나는 내가 신의 사자가 된 이유를 알고 싶어. 인간은 신에게 무엇을 기원하고 생각하는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신이 내게 무언가를 보여주려 하고 있는 건지.” (178쪽)



  다 함께 아름답게 사는 길은 아주 쉽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면 우리는 다 함께 아름답게 살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는 다 함께 아름답게 살지 못해요. 남이 나를 사랑할 때에 아름다운 삶이 아니라, 내가 나를 사랑할 때에 아름다운 삶입니다.


  다만, 내가 나를 사랑하더라도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바라보고 알아야지요. ‘좋아하다’나 ‘좋다’는 마음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어느 한 사람한테 끌리는 마음이 아닙니다. 사랑은, 어느 한 사람을 ‘내 것’으로 거머쥐려는 마음이 아닙니다. 사랑은, 어느 한 사람과 살을 섞으려는 마음이 아닙니다. 사랑은, 내가 나를 아끼면서 내 이웃과 동무를 아끼려는 마음이요, 서로 거룩한 넋인 줄 느끼면서 따사롭게 안을 수 있는 마음입니다. 4348.1.2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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