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들고 자는 언니
고형렬 지음 / 창비 / 200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사랑하는 시 51



내 노랫소리가 너한테 닿아

― 빵 들고 자는 언니

 고형렬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2001.8.10.



  동시는 노래입니다. 노래가 모두 동시이지는 않으나, 동시는 늘 노래입니다. 그러니까, 동시라는 옷을 입고 나온 글 가운데 노래로 부를 수 없다면, 이러한 글은 동시가 못 됩니다. 왜냐하면, 동시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왜 동시가 노래인가 하면, 동시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사회에서 일본 문학가들이 지은 ‘동시’라는 낱말을 빌어서 쓰는데, 우리 겨레가 이 땅에서 먼먼 옛날부터 쓰던 낱말로 적는다면, 우리 어른이 손수 지어서 아이한테 손수 물려주는 ‘글’은 바로 ‘노래’입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노래를 부릅니다. 어른은 아이한테 노래를 읊습니다. 아이는 어버이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따사로움을 맞아들입니다. 아이는 둘레 어른한테서 노래를 받고서는 기쁨을 누립니다.



.. 엄마 손은 시장 본 사람들을 쳐다봐요 / 이 파를 사세요 이 파를 사세요 / 아기는 꿈을 꾸다가 파단을 든 / 엄마 손에 날아와 있어요 ..  (엄마 손)



  이야기는 늘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노래와 춤을 아우릅니다. 노래와 춤이 어우러져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데, 요새는 문학을 하는 분들이 이야기를 빚지 못해요. 요즈음 쏟아지는 어른문학이나 어린이문학을 보면 ‘줄거리’는 있되 ‘이야기’는 없습니다. 줄거리를 짜서 뭔가 재미가 있을 듯하게 꾸미기는 잘 하지만, 이야기를 사랑스럽게 엮어서 아이들과(또는 동무가 될 어른들과) 기쁘게 손을 맞잡는 노래나 춤으로 나아가지 못해요.


  다시 말하자면, ‘줄거리’란 ‘가르침(교훈)’입니다. 모든 이야기에는 줄거리(가르침)가 깃들되, 저절로 깃듭니다. 이야기에는 줄거리가 있어요. 그러나, 줄거리만으로는 이야기가 안 되지요.



.. 쌩 사라지는 찬바람 / ‘아 저게 뭐야?’ / 온몸으로 느낀다 / 엄마 등은 / 따뜻한 온돌이 된다 ..  (첫 추위를 느껴요)



  고형렬 님이 쓴 동시집 《빵 들고 자는 언니》(창작과비평사,2001)를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이 책은 ‘겉모습’은 ‘동시집’이지만, 아무래도 속살로 살피자면 ‘노래책’이 아닙니다. 우리 겨레가 예부터 아이와 어른이 함께 누리던 ‘글’은 바로 ‘노래’인데, 고형렬 님이 빚은 이야기는 노래에 닿지 못합니다. 교과서에 실릴 법하거나, 교과서에 실어도 될 법한 이야기입니다만, 아이들이 손수 삶을 가꾸거나 사랑하면서 누릴 노래가 되기는 어렵겠구나 싶습니다.


  말을 고치자면, 고형렬 님은 이녁 나름대로 ‘이야기’를 빚겠다고 했지만, 그만 ‘줄거리’를 짜는 데에서 그쳤습니다. 설익은 줄거리에 줄 띄우기와 글잣수 맞추기만 시늉으로 해서 ‘동시’라는 껍데기를 입혔습니다.


  그러니까, 교과서에 실리는 동시라든지 교과서에 실을 법한 동시란, 줄거리만 있는 ‘교훈’, 다른 말로 하자면, 아이들을 삶으로 이끌지 않고 ‘지식으로 길들이려는 제도권 교육’이라는 뜻입니다.



.. 잠자리는 화곡동 아이들을 가만두지 앟는다 / 아이들을 산으로 불러 낸다 // 엄마는 잠자리를 잡지 말라 하지만 / 아이들은 즐거워 잠자리만 따라간다 ..  (잠자리)



  동시집 《빵 들고 자는 언니》에는 ‘어른 목소리’만 넘칩니다. 그나마 ‘아이 목소리’도 깃들지 못합니다. 게다가, ‘그냥 목소리’일 뿐, 노래로 삭이지 못했습니다. 줄을 가르고 연을 맞추며 글잣수를 가다듬으면 동시일까요? 아닙니다. 참다운 동시란, 그러니까 참다운 노래란, 늘 언제 어디에서나 함께 부르는 노래입니다. 어버이와 어른이 먼저 부르고, 아이가 기쁘게 맞아들여 부르는 노래일 때에 동시입니다. 악보가 없이도 노래로 부를 수 있을 때에 노래입니다. 악보를 꾸미고 콩나물을 그려야 노래가 아니에요. 기쁨으로 우러나와서 불러야 노래입니다. 그렇지만 고형렬 님 동시집은 좀 억지스레 꾸민 ‘어른 목소리’가 곳곳에 튀어나옵니다.



.. 모두 나무 색깔이어요 / 누가 저런 색깔을 칠해 주었을까요 ..  (북한산 버들치)



  내 노랫소리가 너한테 닿을 때에 웃습니다. 네 노랫소리가 나한테 닿을 때에 웃습니다. 동시라는 옷을 입히는 글을 쓰자면, 내가 먼저 웃고, 네가 함께 웃는 이야기를 써야 합니다. 너와 내가 서로 한목소리가 되어서 기쁘게 노래를 부를 만한 글을 써야 동시입니다. 4348.1.2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