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사라지면 인류는 어떻게 될까? 청소년 지식수다 4
실비 보시에 지음, 안느 루케트 그림, 배형은 옮김, 이기용 감수 / 내인생의책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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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79



말은 늘 움직인다

― 언어가 사라지면 인류는 어떻게 될까?

 실비 보시에 글

 배형은 옮김

 내인생의책 펴냄, 2014.11.30.



  실비 보시에 님이 쓴 《언어가 사라지면 인류는 어떻게 될까?》(내인생의책,2014)를 읽습니다. 지구별 푸름이가 이 책을 읽고서 ‘말’이 무엇인지 살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말’이 무엇인지 다루지 못합니다. ‘말에 얽힌 역사’라든지 ‘말에 얽힌 문화’라든지 ‘말을 둘러싼 전쟁이나 정치권력’을 다룹니다.



.. 어느 날,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던 평화로운 애버리지니의 삶에 갑자기 유럽인들이 끼어들었다. 유럽인들은 애버리지니를 “한마디로 미개인이다.”라고 단정 지었다 ..  (17쪽)



  ‘말에 얽힌 역사’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지요. ‘말에 얽힌 문화’는 ‘말’이 아닙니다. ‘말을 둘러싼 전쟁이나 정치권력’은 무엇일까요? 이 또한 ‘말’이 아닙니다. 말은 오로지 말입니다. 말을 보아야 말을 알 텐데, 《언어가 사라지면 인류는 어떻게 될까?》라는 책은 아주 뜻깊은 이야깃거리를 건드리려 했으나, 미처 뜻깊은 대목을 살피거나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느 대목이 뜻깊지 못할까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에서는 ‘말’을 한 번도 건드리지 못하는데, 꼭 세 가지만 꼽겠습니다.



ㄱ. 어떻게 보면 언어의 분화는 오히려 축복이기도 하다. 언어가 나뉜 덕분에 인류의 문화적 자산이 더욱 풍요로워졌다. 인류는 다양한 언어 덕분에 더 많은 것들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33쪽)



  말이 여러 갈래로 나뉜 일은 선물(축복)이 아닙니다. 끔찍한 ‘무덤(재앙)’입니다. 다만, 끔찍한 무덤이라고 해서 나쁘지는 않습니다. 재미난 일(경험)이지요. 그러면, 말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나라나 겨레마다 말이 다른 일은 어떤 모습일까요?


  말이 여러 갈래로 나뉘었기 때문에 여러모로(다양하게) 말할(표현)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말이 여러 갈래로 나뉘었기 때문에, 우리는 어느 한 가지를 놓고 여러 가지 말을 쓰지만, 막상 깊이 파고들지 못합니다. 여러 갈래로 나뉜 말 때문에 정작 ‘말로 다루어야 할 모습’을 못 다룹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까? 어느 나라나 겨레에서는 ‘눈’을 나타내는 낱말이 아주 많지만, 어느 나라나 겨레에서는 ‘눈’을 아예 모릅니다. 그리고, 말이 여러 갈래로 나뉜 탓에, 오늘날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의사소통)를 나누려면 ‘다른 갈래 말’을 자꾸 배워야 합니다. 한국사람은 영어나 프랑스말이나 독일말이나 일본말이나 중국말을 배워야 해요. 이때에 어느 누구도 ‘표현 다양성’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똑같은 것을 가리키는 다 다른 말’을 익히느라, 막상 ‘한 가지’에 얽매여, 다른 수많은 삶을 놓칩니다.


  ‘표현 다양성’이란 ‘곱다·아름답다·아리땁다·어여쁘다·예쁘다’가 어떻게 다른가를 깨달아, 이를 제대로 바라보면서 제대로 쓰는 일을 가리킵니다. ‘표현 다양성’이란 ‘퍽·꽤·무척·몹시·매우·아주·대단히·엄청나게·어마어마하게’ 같은 낱말이 어떻게 다른가를 알아차려, 이를 맑게 바라보면서 밝게 쓰는 일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보셔요. 이런 ‘참다운 표현 다양성’을 몇 사람이나 누리는지요?



ㄴ. 한국어는 오랜 역사를 가진 언어다. 1443년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뒤 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져 내려왔으며, 한글이 창제되기 이전에 한자를 차용해 표기한 시절까지 따지면 그 역사는 훨씬 더 옛날로 올라간다. (100쪽)



  조선 무렵에 생긴 일은 ‘글자 만들기’입니다. 글자가 있기 앞서 말이 있었습니다. 세종대왕이라는 사람은 ‘말’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한자 차용’이 있기 앞서 ‘말’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책입니다. 기껏 500년밖에 안 되는 말이라고요? 아니지요.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쓴 햇수는 500만 해라고 해야지요. 이러한 해가 흐르는 동안 말은 어떻게 흘렀을까요? 글이 없이 말만 있던 기나긴 나날 동안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하나도 안 잊고 아주 아끼면서 즐겁게 썼어요. 그런데, 말을 담는 글을 만든 뒤로, 자꾸 말이 바뀝니다. 글을 만든 사람은 권력자였기 때문입니다. 권력자와 지식인은 글을 잣대로 삼아 말을 재거나 따졌습니다.


  말은 삶을 짓는 사람이 지었습니다. 시골에서 흙을 지어 밥과 옷과 집을 지은 사람이 말을 지었습니다. 세종대왕이나 지식인은 글자(훈민정음)를 지었을는지 모르나, 글자에 담을 생각과 삶은 모두 시골사람이 흙을 가꾸어 삶을 짓는 동안 지었습니다.


  ‘말’이란 ‘해·별·달·밥·사랑’ 같은 낱말입니다. ‘ㄱ·ㄴ·ㅏ·ㅓ’는 말이 아니라 ‘글자(글)’입니다.



ㄷ. 인간이 남긴 기록 중에는 신에 대한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다. 인간은 신이 어떤 존재인지, 신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기록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다. 권력에 대한 기록도 적지 않다. 왕과 왕조의 이름과 통치 기간을 기록함에 따라 왕들의 이야기가 전설 속에서만 떠돌지 않게 되었다, 끝으로 행정·경제에 관한 기록은 나라의 곳간에 밀이 얼마나 있는지, 농부들에게 부과한 세금이 얼마인지 등 옛 시대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도와준다. (114쪽)



  권력자와 지식인은 왜 글을 만들었을까요? 글을 만든 까닭은 말을 가두려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만들어서 정치권력 이야기만 역사로 적어서, 사람들을 종(노예)으루 부리려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학교교육은 아이들한테 ‘말’을 안 가르쳐요. 오직 ‘말과 얽힌 정치’와 ‘말과 얽힌 문화’와 ‘말과 얽힌 역사’만 가르치지요. 그래서, 오늘날 학교에서는 시험공부만 시키고, 모든 아이들은 학교에서 시험지옥에 휩쓸리면서 ‘창조하기(삶짓기)’하고 동떨어집니다.


  《언어가 사라지면 인류는 어떻게 될까?》라는 책은 무척 뜻깊은 이야기를 다룰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가지도 뜻깊게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안타깝거나 아쉽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이 책은 오늘날 입시지옥 얼거리 학교교육 틀에서는 쓸모가 많기 때문입니다. 시험공부에는 도움이 될 책이고, 시사상식을 늘리는 데에는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말’을 바르게 보거나, 깨닫거나, 알아차리거나, 배워서, 삶을 짓는 길로 나아가는 실마리를 알고자 한다면, 책을 덮으시기 바랍니다. 4348.1.2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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