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8 ‘참말’과 ‘너무’
예부터 이 나라 시골사람은 마음을 나타낼 적에 “참말 좋지”나 “참 좋지”처럼 말했습니다. ‘참말’과 ‘참’은 시골사람이 쓰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난날에는 이 나라를 이루는 99.9%에 이르는 사람이 시골사람이었기에, 이들은 ‘시골사람’이 아닌 ‘사람’이었고,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사람이 쓰는 말(사람말)’은 ‘참말·참’이었어요.
오늘날 한국은 시골이 거의 사라지면서, 시골사람이 함께 사라집니다. 물질문명을 만드는 도시사람이 되고, 도시사람이 아이를 낳아 다른 도시사람을 이룹니다. 오늘날 한국은 도시사람이 99%%에 이릅니다. 이제 이 도시사람은 ‘도시말’을 씁니다. 도시말을 쓰면서 시골과 도시라는 터를 가릅니다. 도시와 시골이 갈리니, 예전에는 누구나 ‘시골사람 = 사람’인 얼거리였는데, 오늘날에는 ‘도시사람 ↔ 시골사람’이 갈리는 얼거리가 되는 한편, 시골사람이 도시사람한테 얕잡히고 말면서 ‘사람말(사람이 쓰는 말)’까지 함께 사라집니다.
도시사람이 쓰는 도시말은 ‘正말’과 ‘眞짜’입니다. 그리고 ‘너무’입니다. 이 세 가지 말은 한국말이 아니고 사람말이 아닙니다.
퍽 . 꽤
아주 . 매우 . 무척 . 제법 . 몹시
대단히
엄청나게
어마어마하게
한국사람이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할 적에, 그러니까 사람이 사람으로서 말을 할 적에는 낱말 숫자에 따라 느낌을 달리하면서 여러 말을 때와 곳에 맞게 썼습니다. 그리고, 이 모두를 아우르는 가장 큰 낱말이 있어요.
참 . 참말
‘참·참말’은 느낌을 나타내는 낱말을 모두 아우릅니다. 그래서, “참 사랑해”나 “참말 사랑해”는 마음 가득 사랑이 넘치는 숨결을 드러냅니다. 이와 달리 “정말 사랑해”나 “진짜 사랑해”는 겉치레와 꾸밈과 속임수와 거짓이 드러납니다. 왜 그러할까요? 시골사람 시골말, 그러니까 사람이 쓰는 사람말은 ‘정말·진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낱말을 한국사람이 쓴 지는 기껏 백 해조차 안 됩니다. 한국 사회가 일본한테 식민지가 되면서 종살이를 하는 동안 한국말(사람말)을 빼앗겼고, 이러는 동안 사람들 스스로 종이 되면서 넋을 잃었습니다. 넋을 잃으니 삶과 말을 함께 잃어요.
한국 사회는 일제 강점기에서 풀려났으나, 삶과 넋과 말은 아직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국말(사람말)이 살아나려면 제대로 된 말, ‘참말’을 써야 합니다.
그러면 “너무 좋아”는 무엇일까요? ‘너무’라는 낱말은 “너무 아파”나 “너무 싫어”나 “너무 슬퍼”처럼 씁니다. ‘너무’는 “좋아해”나 “사랑해” 앞에 쓸 수 없습니다. 이러한 얼거리를 읽을 때에 비로소 말을 깨닫습니다. 말을 깨달아야 넋을 알아봅니다. 넋을 알아보아야 삶을 짓습니다. 4348.1.2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