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6 ‘섬·서기·서다’와 ‘진화’



  한자말 ‘진화(進化)’를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면 “일이나 사물 따위가 점점 발달하여 감”으로 풀이합니다. 이 풀이말을 읽고서는 ‘진화’라는 낱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한자를 낱으로 뜯어서 보면, ‘진화’는 “나아감 + 되다”입니다. 그러니까, “나아가게 되다”를 가리킨다고 할 만한 ‘진화’입니다.


  그러면, ‘영적 진화’라고 하면, 이 말은 무엇을 뜻하거나 가리킬까요? 참 알쏭달쏭하지요. 여러모로 꽉 막힌 말마디이지요. 아무래도 알아차리기 힘들고, 아무래도 알아차리기 힘드니까 이 사람은 이대로 말하고 저 사람은 저대로 말할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낱말 하나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기에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제대로 바라보지 않아서 제대로 알지 못하니, 제대로 쓰지 못합니다. ‘진화’나 ‘영적 진화’라는 말마디를 쓰고 싶다면, 이 말마디부터 제대로 바라보고서 알아챈 뒤에 써야 합니다. 이 말마디를 써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 말마디를 제대로 읽고 알아서 내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나아가게 되다”란 무엇일까요? 생각을 기울여 봅니다. 나아가게 된다고 할 때에는, 이제 이곳에 있지 않고 저곳에 갈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진화’는 “머무르지 않음”을 뜻합니다. 그렇지만, ‘진화’는 ‘감·가기·가다’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머무르지 않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갈 수 있는 모습을 가리키는 ‘진화’이지만, 이 낱말은 한국말로는 ‘섬·서기·서다’입니다. 왜냐하면, ‘일어서다’와 ‘바로서다’를 가리키는 ‘서다’이기 때문입니다. 멈추는 모습을 가리키는 ‘서다’가 아니라 “일어서다 + 바로서다”인 ‘서다’입니다.


  오늘날 우리 둘레 사람들이 사회의식으로 ‘진화·영적 진화’라는 낱말을 쓰는 자리를 살피면, 다음처럼 적어 볼 수 있습니다.



 깨어나기 . 새로 깨어나기

 눈 뜨기 . 눈을 떠서 보기

 태어나기 . 다시 새롭게 태어나기

 거듭나기



  사회의식으로 ‘진화’라는 낱말을 쓰는 사람은 으레 ‘거듭나기’를 가리키는 자리에 씁니다. 그러니까, 무슨 소리인가 하면, ‘거듭나기’라 말해야 하는 자리에서 자꾸 ‘진화’라는 말마디를 엉뚱하게 쓰니까, ‘깨어나기’와 ‘눈 뜨기’와 ‘다시 새롭게 태어나기’라고 말해야 할 자리에서도 그만 뜬금없이 ‘진화’나 ‘영적 진화’라는 말마디를 집어넣을 뿐 아니라 ‘내적 성장’ 같은 일본 한자말을 자꾸 끌어들입니다. 한국사람이면서 한국말을 바라보지 못하는 몸이니, 한국말을 잊을 뿐 아니라, 뜻도 모르는 채 이 말 저 말 주워섬기고 말아요.


  말부터 제대로 보면서 ‘우뚝 서야’ 이곳에서 저곳으로 한 발짝 내디딥니다. 말부터 제대로 보면서 ‘슬기롭게 서야’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어디이든 홀가분하게 내 마음껏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말부터 제대로 보면서 ‘아름답게 서야’ 새처럼 바람을 타고 하늘을 훨훨 날면서 내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진화’라는 낱말을 쓰고 싶다면, 이 한자말이 ‘서다’를 가리키는 줄 바르게 바라보면서 느끼면 됩니다. 4348.1.2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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