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장 쓰기 오늘의 사상신서 155
이오덕 지음 / 한길사 / 1992년 3월
평점 :
품절




이오덕을 읽는다



삶을 지을 때에 글을 쓴다

― 우리 문장 쓰기

 이오덕 글

 한길사 펴냄, 1992.3.30.



※ 책풀이 ※

1992년에 처음 나온 《우리 문장 쓰기》는 《우리 글 바로쓰기》를 1권과 2권을 펴낸 다음에 선보인 책이다. 《우리 문장 쓰기》에서는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글에 담는 길을 밝힌다. 여러 갈래로 나눌 수 있는 글이란 무엇인지 밝히고, 갈래에 따라 글을 어떻게 쓸 때에 제대로 ‘한국사람이 쓴 글’이 될 만한지 알려준다. 제아무리 손재주로 꾸민다고 해 보았자 글이 될 수 없고, 손수 짓는 삶에 따라 즐거움과 기쁨을 담으려고 할 때에 참다우면서 아름다운 글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이 책 한 권으로 들려준다.



..



  내가 하는 말은 모두 내 마음입니다. 내가 하는 말마다 그때그때 어떤 마음인지 환하게 드러납니다. 마음을 즐겁게 가누는 사람은 언제나 즐겁게 말을 하고, 마음을 맑게 가다듬는 사람은 언제나 맑게 말을 합니다.


  거칠게 말을 한다면, 마음이 거칠다는 뜻입니다. 짜증을 섞어서 말을 한다면, 마음이 짜증으로 가득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거친 말이든 짜증 섞인 말이든 나쁘지 않습니다. 좋지도 않으나 나쁘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때그때 내 마음이 말로 드러날 뿐입니다. 그러니 나는 내 말을 찬찬히 살피면서 그때그때 어떤 마음인지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읽을 수 있을 적에 비로소 말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말은 언제나 마음을 나타내기 마련이니,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을 홀가분하게 나타낼 수 있습니다. 기쁨을 나타내고 슬픔을 나타내지요. 놀라움을 나타내고 아쉬움을 나타내지요. 서러움을 나타내다가는 쓸쓸함을 나타내고, 반가움을 나타내다가는 사랑을 나타내요.


  어떤 마음이든 나타낼 수 있는 말입니다. 어떤 마음이든 나타내는 말이기에 내 삶은 날마다 새롭게 빛납니다. 말 한 마디를 하면서 마음을 살피고, 말 두 마디를 하면서 마음을 북돋우며, 말 세 마디를 하면서 마음을 가꿉니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글을 함부로 쓰지 말고(꼭 할 말만 쓰고), 깨끗한 말로 쓰는 일이다 … 농민도 어민도 노동자도 상인도 공무원도 교원도, 누구나 써야 한다. 마치 말을 누구나 하듯이, 모든 사람이 쓰고 싶은 글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야 말이 살아나고 글이 살아난다. 사람이 살아나고 문학이 살아난다 … 대관절 ‘문학 문장’, 곧 문학이 될 수 있는 글이 따로 있을 수 있는가 … 글은 말보다 어렵게 써도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쉽게, 더 친절하게 써야 한다 … 될 수 있는 대로 중국글자말을 쓰지 말고 우리 말로 써야 한다 … 중국글자를 섞어서 쓴 글은 반민주의 글이다. 그리고 쉬운 우리 말이 있는데 그런 말을 안 쓰고 어려운 말, 보통 사람들이 잘 안 쓰는 말, 유식한 중국글자말이나 일본글에서 나온 말, 쓰지 않아도 되는 서양말을 쓴 글은 모두 반민주의 글일 수밖에 없다 ..  (14, 16, 18, 32, 198쪽)



  더 좋다 싶은 말을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잘못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지 않아도 됩니다. 글을 쓰다가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틀릴 수 있습니다. 말을 하다가 혀가 꼬일 수 있으며, 때로는 헛말이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다 괜찮습니다. 아, 내가 이런 말을 이런 마음으로 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슬기롭게 갈고닦으면 됩니다.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새파랗게 눈부신 하늘이기에 새파랗구나 하고 느낍니다. 매캐한 하늘이기에 매캐하구나 하고 느낍니다. 구름을 볼 수 있고, 해를 볼 수 있으며, 하늘을 가르는 새를 볼 수 있어요. 무엇이든 내가 스스로 보는 대로 느끼고, 이 느낌을 고스란히 말과 글에 담습니다.


  냇물을 바라보면서 냇물 빛깔과 냄새를 헤아립니다. 냇물에서 사는 물고기를 느끼고, 냇물에 있는 돌멩이와 모래를 느낍니다. 냇물이 흐를 적에 반짝이는 물결을 느끼고, 냇가에 찾아와 물을 쪼는 멧새가 몸을 터는 몸짓을 느낍니다.


  요모조모 짜맞추지 않아도 됩니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면서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런 틀이나 저런 짜임새를 살펴서 글을 써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마음을 나타내도록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 됩니다. 우리는 늘 우리 마음을 꾸밈없이 아끼고 사랑하면서 말과 글을 사랑하면 됩니다.


  그러니, 문예창작을 배워야 문학을 하지 않아요. 시론을 배우거나 이론을 익혀야 시나 소설을 쓰지 않아요. 대학교를 다닌 사람이 문학을 하지 않습니다. 문학을 바라는 사람이 문학을 합니다. 문학을 꿈꾸는 사람이 문학을 해요. 노래를 꿈꾸는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꿈꾸는 사람이 춤을 춥니다. 흙을 꿈꾸는 사람이 흙을 짓고, 삶을 꿈꾸는 사람이 삶을 짓습니다.



.. 사물을 보는 그대로 나타내도록 해야지, 요란한 글 때문에 사물이 흐리게 보이도록 해서는 안 된다 … 좋은 글은 일하면서 살아가는 백성들에게도 쉽게 읽히는 작품, 그래서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 글의 마지막 심판자는 백성들이다. 책과 학문과 추상논리와 관념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사물과 사실 속에서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닌 가장 소박한 느낌과 생각이 글의 가치를 매기게 되어야 한다 … 살아 있는 말이란 어떤 말인가? 사물과 사실을 바로 보여주고 바로 느끼게 하는 말, 바로 가슴에 와닿는 말, 진실이 차 있는 말이다 … 말이 없으면 글도 없다. 글은 없어도 견딜 수 있지만, 말이 없으면 사람이 살아갈 수 없다 … 말은 생각(의식)에서 나왔다. 생각은 삶에서 나왔고, 삶은 바로 살아 있는 목숨이다 ..  (24, 25, 40쪽)



  나무 한 그루를 심습니다. 씨앗을 심을 수 있고, 어린나무를 얻어서 심을 수 있습니다. 크게 자란 나무에서 가지 하나를 꺾어서 심을 수 있습니다. 벼락을 맞고 쓰러진 나무를 안쓰러이 여겨 작은 가지 하나를 잘라서 심을 수 있어요. 어떻게 심든 모두 나무입니다. 어떻게 심든 모두 아름답게 자라는 나무입니다.


  나무는 백 해를 살고 오백 해를 살며 즈믄 해를 사는 동안 우람하게 큽니다. 나무 한 그루는 열 그루로 퍼지고, 열 그루는 백 그루로 퍼집니다. 모든 숲은 나무 한 그루에서 비롯합니다. 지구별 푸른 숨결은 씨앗 한 톨에서 비롯합니다.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보듬는 사랑은 바로 말 한 마디에서 태어납니다. 내가 나를 아끼고, 내가 너를 아끼며, 내가 우리를 아끼는 따사로운 마음에서 말이 태어납니다. 이 따사로운 마음과 말은 따사로운 숨결이 되고, 어느새 따사로운 노래로 퍼집니다.


  아이와 나누는 자장노래가 아이한테 놀이노래로 거듭납니다. 놀이노래는 놀면서 부르는 노래이면서 언제 어디에서나 기쁜 내 마음을 드러내는 노래로 달라집니다. 자장노래는 놀이노래이면서 기쁨노래이고 삶노래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셔요. 내 말 한 마디가 노래로 거듭나서 퍼진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내가 하는 말 한 마디가 이웃과 동무한테 맑은 웃음과 노래로 스며들 수 있으면 얼마나 사랑스러울까요. 말 한 마디로 사랑을 짓고, 글 한 줄로 꿈을 지으면, 우리 삶은 얼마나 맑고 밝을까요.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까닭을 생각합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니까 말을 하고 글을 써요. 서로 돌보고 보살피니까 말을 하고 글을 써요. 내 사랑이 내 말로 나타나고, 네 사랑이 네 말로 드러나요. 우리는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서 말을 나누고, 우리는 언제나 활짝 웃고 노래하면서 말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 글이 지배하는 사회는 그 글을 독차지하는 관리들과 지식인들과 돈 가진 이들이 움직이는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는 글을 모르면 사회에 나가 활동할 수가 없고, 여행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사람 노릇을 제대로 못한다 … 가정에서 살아 있는 말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더 철저한 글말을 배우게 된다. 교과서만 읽고 쓰고 외우게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살아 있는 말을 배울 기회가 거의 없다 … 우리가 남의 나라 글을 따라서 쓰고, 그렇게 쓰는 글을 따라서 말을 하게 된다면, 그 말이 다시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우리의 삶을 움직인다 … 글이 이렇게 오염이 되고, 말이 글 따라 병들었는데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데, 우리들 생각이 병들고 삶이 변질된 것을 어찌 깨닫겠는가 ..  (41, 42, 44, 45쪽)



  이오덕 님이 쓴 《우리 문장 쓰기》(한길사,1992)를 읽습니다. 이오덕 님은 두툼한 책 한 권을 써서 우리들한테 ‘우리 마음을 담아서 나누는 글이란 무엇인가’ 하는 실마리를 밝히려 합니다. 글을 쓰는 즐거움과 보람이 얼마나 큰 사랑인가를 넌지시 보여주려 합니다. 글을 써서 나누는 기쁨과 뜻이 얼마나 예쁜 노래인가를 찬찬히 알려주려 합니다.


  《우리 문장 쓰기》는 ‘이렇게 써야 바로 쓴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문장 쓰기》는 ‘이렇게 써야 말과 글이 산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문장 쓰기》는 ‘우리 마음 쓰기’를 이야기하고, ‘우리 생각 밝히기’를 이야기하며, ‘우리 사랑 나누기’를 이야기합니다.


  《우리 문장 쓰기》는 ‘이렇게 해야 글을 잘 쓴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문장 쓰기》는 ‘이렇게 해야 삶을 잘 가꾼다’는 이야기입니다. 내 말과 글을 가꾸면서 내 넋을 가꾸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내 말과 글을 가꾸면서 내 넋을 가꿀 때에 내 삶을 어떻게 가꿀 수 있는지 찬찬히 밝힙니다.


  마음이 있으니 글을 쓰지요. 생각이 있으니 글을 쓰고 싶지요. 사랑이 있으니 글을 써서 책을 엮은 뒤 널리 나누다가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싶지요. 말은 언제나 넋이 되고, 넋은 고스란히 삶이 됩니다. 말을 가꾸는 일이란 넋을 가꾸는 일이요, 넋을 가꾸는 일은 삶을 가꾸는 일입니다. 거꾸로, 삶을 가꾸는 일은 넋을 가꾸는 일이면서, 넋을 가꾸는 일은 말을 가꾸는 일이 됩니다.



.. 말을 살리는 글을 어떻게 하면 쓸 수 있는가? 한자말·일본말·서양말 같은, 밖에서 들어온 말을 안 쓰고, 쉬운 말과 순수한 우리 말을 찾아 쓰면 된다. 글을 모르는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쓰면 된다 … 우리가 하는 말은 농사일에 쓰이는 말이 많고, 사람과 자연의 모습과 움직임을 나타내는 말이 중심으로 되어 있다 … 말이 이렇게 풍성하니 그 말을 적어 보이는 글자가 또 거기에 걸맞게 창조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배달글은 세종대왕이 지었다기보다 풍성한 말을 가진 우리 온 겨레가 지어냈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일 것 같다 … 이야기하기에 알맞는 말, 노래하기에 알맞는 말이기에 영어같이 ‘과거완료’나 ‘과거진행완료’ 따위의 때매김이 소용없는 것은 당연하다 ..  (51, 52, 53쪽)



  토박이말을 살려야 하니까 토박이말을 쓰지 않습니다. 영어를 쓰지 말아야 하니까 영어를 쓰지 말아야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넋을 홀가분하게 살찌우거나 살려서 기쁘게 노래하고 싶기에 말을 깊이 생각하고 널리 헤아리면서 말을 합니다. 나는 내 얼을 아름답게 보듬거나 살가이 보살피고 싶기에 차근차근 생각을 짓고 삶을 일구어 글을 씁니다.


  밭을 가꾸면서 글을 씁니다. 아기를 돌보면서 글을 씁니다. 밥을 지으면서 글을 씁니다. 옷을 기우면서 글을 씁니다. 빨래를 하면서 글을 씁니다. 나무를 베거나 장작을 패면서 글을 씁니다. 길을 걸으면서 글을 씁니다. 자전거를 달리면서 글을 씁니다.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를 귀여겨들어요. 그러고 나서 글을 써요. 나비와 새가 날갯짓하면서 하늘을 가르는 모습을 지켜봐요. 그러고 나서 글을 써요. 소나기가 내리고 무지개가 뜨는 마을에서 이웃과 오순도순 어우러져요. 그러고 나서 글을 써요.


  우리가 쓰는 글은 얼마나 고운가요. 우리가 주고받는 글은 얼마나 알찬가요. 우리가 빚어서 책으로 엮는 글은 얼마나 따스한가요. 우리가 읽는 글은 얼마나 값진가요. 글줄마다 이야기가 흐르고 노래가 감돕니다. 글월마다 꿈이 깃들고 사랑이 피어납니다.


  손수 씨앗을 심어 보셔요. 씨앗 한 톨이 어떻게 깨어나서 자라는지 바라보셔요. 깨어난 씨앗 한 톨이 흙을 어떻게 바꾸고, 둘레를 어떻게 바꾸는지 살펴보셔요. 씨앗 한 톨이 자라서 줄기가 오르고 잎이 오르는 동안, 둘레에 어떤 바람이 흐르는지 헤아리셔요. 씨앗 한 톨이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적에 어떤 기운이 감도는지 느끼셔요. 말 한 마디는 씨앗입니다. 말씨가 생각을 짓습니다. 글 한 줄은 씨앗입니다. 글씨가 이야기를 짓습니다.



..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주고받는 말을 되찾을 수 있을까? 살아 있는 우리들의 말, 인간의 말을 할 수 있을까? 그 길은 단 하나뿐이다. 삶을 찾아 가지는 것이다. 기계가 되지 말고,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 체험과 행동은 없고 책만 읽어서 이른바 ‘상상’이란 것으로 적어 놓은 말들이 살아 있는 겨레의 말이 될 수 있는가? 없다 … 오늘날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삶이다. 잃어버린 삶을 도로 찾아 가지는 일이다. 삶을 찾아 가지려고 하는 노력이 그 어떤 노력보다도 앞서야 하고, 그 노력을 바탕으로 해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쓴 글을 다듬기도 해야 비로소 제대로 글이 씌어질 것이다 …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중국글을 우리 글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일본글 틀에 잡히게 되어도 그것을 깨달을 줄 모르고, 영어 틀에 빠져 있는 줄도 모른다 ..  (54, 55, 66, 80쪽)



  글을 쓰는 사람은 삶을 씁니다. 글쓰기는 늘 삶쓰기입니다. 삶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고, 삶이 있기에 글을 쓸 기운이 납니다.


  글은 머리로 지어서 쓰지 못합니다. 때때로 머리로 글을 지으려 하는 사람이 있지만, 억지를 부려서 머리로 글을 쓰면, 이 글은 제대로 살지 못합니다. 삶이라고 하는 숨결이 없는 글은 힘도 기운도 사랑도 꿈도 없습니다. 삶이라고 하는 숨결을 담아서 쓰는 글일 때에 비로소 참다운 힘과 착한 기운과 맑은 사랑과 밝은 꿈이 깃듭니다.


  왜 그러할까요? 왜 머리로 짓는 글은 제대로 살지 못할까요? 머리로 짓는 글, 이른바 이론과 학문이나 지식으로 짓는 글은 아무것도 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료와 농약과 항생제는 흙을 살리지 않습니다. 비료와 농약과 항생제는 흙을 망가뜨리거나 괴롭히면서 곡식과 열매를 땅에서 더 뽑아내는 구실을 합니다. 그러니, 이런 것으로는 흙을 못 살리고 못 가꾸고 못 북돋웁니다.


  풀 한 포기에 바치는 사랑스러운 손길은 흙을 가꿉니다. 흙을 가꾸려는 손길을 받고 자란 풀포기는 겨울이 되어 시들 적에 흙으로 돌아갑니다. 나무가 떨구는 가랑잎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풀줄기와 나뭇잎은 흙을 되살리면서 흙이 됩니다.


  우리가 쓰는 글은 풀줄기나 나뭇잎과 같이 마음을 살리거나 살찌우는 밑거름이 될 수 있어야 싱그럽습니다. 살아가는 결 그대로 글을 쓰고, 사랑하는 마음씨 그대로 글을 쓰며, 꿈꾸는 무늬 그대로 글을 씁니다.


  글을 쓰려는 사람은 따로 배워야 하지 않습니다. 글을 쓰려는 사람은 삶을 바라보고 느끼면서 가꾸면 됩니다. 글을 쓰려는 사람은 학교를 다니거나 책을 많이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글을 쓰려는 사람은 하루하루 기쁨으로 맞아들이면서 즐거움으로 노래할 수 있으면 됩니다. 살림을 다스리고 하루를 노래할 때에 비로소 글을 씁니다. 밥을 짓고 옷을 지으며 집을 짓는 삶이 그대로 글입니다.



.. 우리가 일본글을 배우지 않고 일본글에 빠지지 않았다면 진작 중국글자체에서도 벗어나 있었을 것이다 … 자기가 쓰고 싶은 절실한 생각이나 이야기를 자기 말로 아무 형식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쓰게 되었을 때 그 결과가 저절로 어떤 글의 맵시를 갖추게 된다면 그때는 그것을 가지고 문체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 눈으로 살펴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직접 일을 해 보고 몸으로 겪어 볼 필요도 있다. 그래야 마굿간에서 여물을 먹고 있는 소 한 마리도 제대로 볼 수 있고, 도랑에 버려진 농약병 이야기도 진실 그대로 꾸밀 수 있을 것이다 … 글을 쓸 때는 아주 결심을 단단히 해서 커다란 자기혁명을 한다는 몸가짐을 가져야 한다. 그런 몸가짐을 가지고 쓰는 글 속에 새로운 자기가 태어나게 해야 한다 … 서로 삶과 마음을 나누는 편지 쓰기를 하면 좋겠다 ..  (94, 157∼158, 179, 188, 477쪽)



  삶을 지을 줄 알 때에 비로소 글을 짓습니다. 군사독재 서슬이 퍼렇던 지난날 제도권 학교교육에서 억지로 시키던 ‘글짓기’가 아닌, “삶을 짓다”와 같은 “글을 짓다”일 적에 수수하면서 고운 글이 태어납니다.


  글은 짓습니다. ‘독후감 숙제 따위 글짓기’가 아닌, ‘삶을 노래하는 글짓기’입니다. 이오덕 님은 ‘글쓰기’라는 낱말을 따로 빚어서 쓰셨어요. ‘글짓기’라는 낱말이 나쁘지 않으나, 군사독재 총칼을 내세운 앞잡이와 꼭둑각시 때문에 아이들이 아프고 다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낱말에 새로운 숨결을 담아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기를 바랐기에, ‘글스기’라는 낱말을 빚었어요.


  그런데 오늘날 학교교육이나 사회를 보면, 낱말은 ‘글짓기 → 글쓰기’처럼 바뀌었으나, 속내는 예전과 똑같습니다. 삶을 쓰려고 하는 글쓰기가 아닌, 억지로 짜맞추거나 이론이나 지식으로 얽어매는 글쓰기입니다.


  글은 허울로 쓰지 않습니다. 글은 껍데기가 아닙니다. 글은 속내요, 알맹이입니다. 글짓기라는 이름이든 글쓰기라는 이름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삶을 드러내고 사랑을 밝히며 꿈으로 나아가는 숨결을 담을 수 있는 글이면 됩니다.


  이리하며, ‘삶말’과 ‘삶글’이라는 낱말이 새롭게 태어나요. 삶을 그리는 말이기에 삶말이면서, 삶을 짓는 말이기에 삶말입니다. 삶을 노래하는 글이기에 삶글이요, 삶을 꿈꾸는 글이기에 삶글입니다.


  밥 한 그릇을 나누는 삶입니다. 나무를 심고 풀을 뜯는 삶입니다. 바람을 쐬고 햇볕을 쬐는 삶입니다. 냇물을 마시고 들을 돌보는 삶입니다. 아기를 낳고 키우는 삶입니다. 아이와 함께 뛰노는 삶입니다. 옷을 지어 함께 입고, 이불을 빨아 함께 덮는 삶입니다. 삶을 노래합니다. 삶노래이지요. 삶을 이야기합니다. 삶이야기입니다.



.. 원고료 수입이 많다 보니 삶의 현장에 나가 일할 필요가 없어지고, 그래서 늘 방안에서 제멋대로 장난처럼 글재주 놀이를 하기 쉽기 때문 … 일과 놀이가 따로 나누어진 오늘날 사회에서는 사람의 표현조차 순수한 자기 표현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사회의 요구에 따라 한갓 직업으로써 하는 표현활동이 되어 있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고, 따라서 표현이 어떤 틀에 박히고, 기계로 찍혀 나오듯하여 표현하는 사람 자신의 마음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되어 있기가 예사다 … 자기를 정직하게 쓰면 마음이 후련해지고 기뻐질 터인데, 이렇게 겉모양만 괴상하게 꾸며 보이는 글을 무슨 보람으로 쓸까 … 글과 사람은 따로 볼 수 없고, 따로 보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글과 사람이 다른 것처럼 보는 것은 우리가 글을 바로 보지 못했거나 사람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  (243, 318, 355, 425쪽)



  글을 쓰는 사람이 늘기를 빌어요. 삶을 쓰는 사람이 늘기를 빌어요. 글을 노래하는 사람이 늘기를 빌어요. 삶을 노래하는 사람이 늘기를 빌어요. 글을 슬기롭게 읽어서 생각을 슬기롭게 밝히는 사람이 늘기를 빌어요. 삶을 슬기롭게 읽어서 마음을 슬기롭게 밝히는 사람이 늘기를 빌어요.


  글만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삶을 잘 가꾸면서 추스를 적에 글을 잘 가꾸면서 추스릅니다. 글만 멋지게 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겉보기로 번드레하게 보일는지 모르나, 겉을 꾸미는 사람은 이내 시듭니다. 겉을 내세우려는 사람은 속이 곪습니다.


  사람은 쭉정이가 아닌 알맹이를 먹습니다. 사람은 밥알을 먹지, 쌀겨를 먹지 않습니다. 쌀겨를 가루로 빻아서 먹을 수 있겠지요. 쌀알과 쌀겨를 통째로 먹을 만하겠지요. 그러면, 달걀 껍데기와 달걀이 있을 적에, 껍데기만 먹으면 될까요, 달걀을 먹으면 될까요.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란 없습니다. 껍데기는 무엇인가 하면, 알맹이를 감싸는 옷입니다. 알맹이를 감싸는 옷은 옷대로 잘 가꾸면서 돌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알맹이를 감싸는 옷만 헤아리다가 정작 알맹이는 돌보지 못하거나 가꾸지 못하면 어떻게 될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문장 쓰기》는 바로 ‘알맹이’를 밝히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껍데기를 꾸미거나 치레하는 이야기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들려줍니다.



.. ‘사색’은 아주 깊은 생각이고 ‘생각’은 얕은 것이라 여긴다면 잘못이다. 사람들이 모두 어려운 말을 쓰고 싶어하는 버릇이 들어서 자꾸 그렇게 쓰다 보니 그만 쉬운 말은 뜻이 얕고 어려운 말은 고상하게 여기게 되는데, 이런 잘못된 버릇은 글을 쓰는 사람부터 깨뜨려 나가야 하겠다 … 꼭둑각시로 자라난 사람은 그 자식을 또 꼭둑각시로 만들고 싶어 한다. 이 나쁜 되풀이를 그만두도록 일깨우는 것이 글쓰기가 아닌가 … 어른들이 그릇된 교육으로 아이들의 삶을 파괴하고 그 심성을 병들게 하지만 않는다면, 모든 아이들은 마치 산과 들에서 자라나는 풀과 나무같이 바르고 싱싱하게 자라날 것이다 … 교회에서나 절에서 아이들에게 교리를 외우게 하고 예수님, 부처님을 넣어서 글짓기를 시키는 어른들의 신앙이란 것이 참으로 어리석고 거짓된 습관에서 하는 짓이라고 본다 … 땅에 떨어진 씨앗이 싹을 트고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고 잎을 피우고 하여 반드시 일정한 날과 달을 보낸 다음 꽃을 피울 만한 속 기운이 찬 때라야 비로소 피어난다 ..  (488, 541, 549, 558, 568쪽)



  어떤 글을 쓰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겉을 치레하는 글을 쓰는 사람은 겉을 치레하는 삶으로 나아갈밖에 없습니다. 겉만 매만지는 글을 쓰는 삶은 겉만 매만지는 삶으로 흐를밖에 없습니다.


  눈을 감고 바라보아요. 내 이웃과 동무를 마음으로 바라보아요. 눈으로도 바라보되, 마음으로도 함께 바라보아요. 내 이웃과 동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겉모습만 살피지 말고, 내 이웃과 동무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열고, 어떤 마음으로 삶을 누리며, 어떤 마음으로 이 땅에 서는지 차근차근 바라보아요.


  마음으로 바라보는 눈썰미를 기를 적에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바라보는 눈길이 될 적에 글을 빛낼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바라보는 눈매를 갈고닦을 적에 글이 아름다운 씨앗 한 톨로 이 땅에 드리울 수 있습니다.


  씨앗 한 톨을 심으려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으려고 글을 씁니다. 꿈이라는 씨앗을 심으려고 글을 씁니다. 삶이라는 씨앗을 심으려고 글을 씁니다. 글을 수수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글을 착하고 참답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사랑스럽습니다. 글을 따스하고 너그럽게 쓸 수 있는 사람이 빙그레 웃으면서 노래합니다. 4348.1.1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이오덕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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