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의 호랑지빠귀
카사이 스이 글.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451



나무가 있어야 새가 찾아온다

― 달밤의 호랑지빠귀

 카사이 수이 글·그림

 대원씨아이 펴냄, 2012.11.15.



  우리 집 네 사람이 지내는 시골집에는 온갖 새가 아주 많이 드나듭니다. 우리 집 네 사람은 하루 내내 온갖 새노래를 듣습니다. 새가 노래하니 새노래입니다. 마당에도, 마당에 있는 나무에도, 뒤꼍에도, 뒤꼍에 있는 나무에도 온갖 새가 마음껏 드나듭니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아니 예전에는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는데, 새는 으레 나뭇가지에 앉는 모습을 늘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러려니 하고 여겼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나뭇가지가 있어야, 나무가 있어야, 나무가 곳곳에 있어야, 새가 나무를 믿고 기대면서 깃들 수 있는데, 이러한 얼거리를 예전에는 미처 못 느낀 채 멀거니 새를 바라보았습니다.


  우리 집 네 사람이 깃든 시골집에 새가 날마다 수없이 찾아올 수 있는 까닭은, 우리 집을 둘러싸고 마당과 뒤꼍에 제법 잘 자란 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없다면 새는 우리 집에 찾아올 수 없습니다.





- “마녀가 원래 저런가?” “상냥한 척해서 애들을 납치하는 거야.” “납치하는 건 고양이 아냐?” (9쪽)

- “굉장해. 비가 그쳤어. 있지, 지금 이거 마법? 마법이야?” (24쪽)



  볼일을 보러 시골집을 떠나 시외버스를 타고 도시로 가다 보면, 여러 가지 모습을 구경합니다. 고속도로 둘레에 높다랗게 ‘소리막이 울타리’를 쌓은 모습도 구경합니다. 시골에서는 그냥 쇳덩이를 세우지만, 도시에서는 ‘경관’이나 ‘미관’ 때문에 ‘유리 울타리’를 세웁니다.


  유리 울타리가 어떤 구실을 하는지 예전에는 잘 몰랐으나, 시골에서 살며 새를 늘 마주하면서 차근차근 깨닫습니다. 고속도로 둘레에 소리막이 울타리를 세우려면 그냥 ‘쇠붙이 울타리’를 세워야지, 유리 울타리를 세우면 안 되는 줄 요즘에야 알아차립니다. 왜냐하면, 새는 유리를 못 알아보기 때문입니다. 꽤 많은 새가 유리 울타리에 머리를 처박고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는다고 합니다. 신나게 날다가 유리 울타리인 줄 모르고 머리를 박는다고 합니다.




- “바다! 바다가 있어. 바다!” “그리고 덥지. 항상 여름인 나라야. 무이네라는 리조트도 있단다. 최근에는 꽤나 개발이 됐다는구나.” “근대화?” “라기보다는 관광지화겠지. 베트남은 쭉 프랑스의 식민지였어. 그래서 지금도 프랑스 빵을 먹는단다. 한 개를 통째로 샌드위치로 만들기도 하고.” (78∼79쪽)

- “있는 일, 없는 일을 떠벌리고 다른 사람을 폄하하며 안심한들, 거짓이든 엉터리든 몇 번씩 반복해 봤자 한낱 거짓이야. ‘진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가장 강하단다.” (142쪽)



  카사이 수이 님이 빚은 만화책 《달밤의 호랑지빠귀》(대원씨아이,2012)를 읽습니다. 짤막한 만화를 여럿 묶은 책입니다. 달밤에 노래를 부르는 호랑지빠귀 이야기가 흐르고, 한낮에 물고기를 잡는 물총새 이야기가 흐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새 둘레에서 저마다 사이좋게 어우러지는 사람들 이야기가 흐릅니다.


  새가 노래하고, 사람이 노래합니다. 어른이 노래하고, 아이가 노래합니다. 아기가 노래하고 할매와 할배가 노래합니다. 다 함께 노래를 해요. 서로서로 웃고 춤추면서 노래를 합니다.





- “선생님이신가요? 훌륭한 직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사람에 따라 다르죠. 전 매일 거짓말만 늘어놓고 있을 뿐이거든요.” (149쪽)

- “천애고아에 노숙자인 녀석은 세상에 널렸어요, 성인 하인츠 님. 그럼 어떡할 셈인데요? 데려와서 평생 돌봐 줄 건가요? 딱 봐도 영감님 쪽이 먼저 죽을 게 뻔하다구요.” “그런 건 알고 있어.” (196쪽)



  사람이 사는 마을에 새가 찾아와야, 사람들이 노래를 새롭게 깨닫습니다. 사람이 사는 마을에 새가 찾아오지 못하면, 사람들은 그만 노래를 잊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사는 마을에 나무가 없으면 새가 찾아오지 못하는데다가, 나무가 없고 새가 안 오는 줄 사람들이 못 깨닫기까지 합니다.


  나무가 우거진 마을에 새가 기쁘게 찾아와서 노래를 하고, 새가 노래를 하는 마을에서 사람들은 환하게 웃으면서 함께 노래를 합니다. 노래를 하는 마을은 아름답습니다. 노래가 흐르는 마을은 사랑스럽습니다. 노래가 넘치는 마을에는 법이나 제도나 규칙 따위가 없어도 평화롭습니다.


  그러니까, 노래가 없으면서 법과 제도와 규칙만 있는 마을은 으스스합니다. 노래가 없으면서 대통령과 시장과 군수와 판사와 의사만 있는 마을은 메마르고 거칩니다.





- “결국 언젠가는 모두 죽잖아? 나도 언젠가는 죽어, 형처럼. 아저씨 같은 사람은 순식간에 죽어 버리는 주제에, 어째서, 왜 이런 말을.” “그래, 누구나 언젠가는 세상을 떠난다. 평생 함께 같은 건 없어.” (204∼205쪽)



  나무와 함께 살아야 사람이 사람답습니다. 나무를 심고 아껴야 사람이 사랑스럽습니다. 나무를 바라보고 돌보면서 날마다 쓰다듬을 수 있어야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누구나 나무를 아낄 수 있기를 빌어요. 어른이라면 아이와 함께 나무를 심을 수 있기를 빌어요. 나무 심을 마땅한 땅이 없다면, 나무 심을 마땅한 땅을 마련해요. 어떻게든 나무가 우리 삶터에서 씩씩하게 줄기를 뻗을 수 있도록, 나무가 자랄 땅을 마련해요.


  나무와 함께 노래해요. 나무에 앉아서 기쁘게 노래하는 새와 동무가 되어요. 4348.1.1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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