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여우 3
오치아이 사요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44



이녁은 무엇을 섬기는가요

― 은여우 3

 오치아이 사요리 글·그림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4.8.30.



  바람 부는 저녁에 달빛을 받으며 뒤꼍에 서는데, 어디에선가 날아와 나뭇가지에 걸린 비닐이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냅니다. 풀잎이 바람 따라 춤추는 소리가 아니라, 새가 겨울밤에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비닐이 나뭇가지에 걸려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쓸쓸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시골에서는 비닐노래가 골골샅샅을 울립니다. 밭자락마다 비닐을 깔면서 남새를 거두려 하기 때문입니다. 배추를 얻으려고, 양파를 얻으려고, 파를 얻으려고, 고추를 얻으려고, 토마토를 얻으려고, 이것을 얻고 저것을 얻으려고 온통 비닐입니다.


  시골지기 가운데 비닐을 걱정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퍽 드뭅니다. 땅에 파묻어도 좀처럼 안 썩는 비닐이 나뭇가지에 걸려 그악스러운 모습이 되어도 걱정하지 않고, 비닐쓰레기를 태우면 흙도 죽는데 이를 걱정하지 않으며, 해마다 비닐값으로 제법 많다 싶은 돈을 써야 하지만 이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자가용을 몰면서 기름을 걱정하지 않는 도시사람처럼, 온갖 곳에 비닐을 씌우면서 비닐을 걱정하지 않는 시골사람입니다.





- “이제 알겠지? 지금까지 벌어진 소동은 저 녀석들 소행이야. 어쩔 수 없지 이곳에는 보이는 인간이 없으니까.” (42쪽)

- “장난이 원인이 되어 다툼이 벌어지고, 자신을 귀신으로 오인해 무서워하고, 어쨌거나 신의 사자인데. 하루도 본인이 그런 입장이 되면 싫겠자?” (58쪽)



  땅을 섬기는 사람은 땅을 망가뜨리지 않습니다. 땅을 섬기기에 땅을 가꿉니다. 냇물을 섬기는 사람은 냇물을 망가뜨리지 않습니다. 냇물을 섬기기에 냇물을 가꿉니다. 숲을 섬기는 사람은 숲을 망가뜨리지 않습니다. 숲을 섬기기에 숲을 가꿉니다.


  오늘날에는 땅이 사라집니다. 사람은 누구나 흙으로 된 땅을 밟고 서야 사람답지만, 흙땅에 시멘트와 아스팔트와 대리석을 덮고 말아, 그만 땅이 사라지고 땅을 잊거나 잃습니다. 땅이 사라지니, 냇물도 사라져서, 대통령 한 사람과 공무원 여러 사람에다가 개발업자 이렁저렁 뭉쳐서 온 나라 물줄기를 망가뜨렸다고 할 텐데, 이들 말고도 이 나라 아주 많은 사람들이 땅을 안 밟고 산 탓에 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터라, 끔찍한 일이 벌어집니다.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수돗물이 아닌 냇물이나 우물물을 마시면서 산다면, 나라에서 냇물에 시멘트를 들이붓는 짓을 일삼을 적에 어떻게 할까요? 모두 들고 일어나서 막아야지요. 그렇지만, 막상 4대강사업을 막으려고 들고 일어난 사람은 얼마 안 됩니다. 먹고사느라 바빠 회사나 공장에 나가야 합니다. 냇물을 마시지 않기에, 냇물을 망가뜨린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얼마나 망가뜨리는 줄 깨닫지 못합니다.


  손수 땅을 일구어 밥을 얻지 않기 때문에, 밀양이든 청도이든 이 나라 골골샅샅 어디이든 송전탑을 때려박거나 핵발전소를 짓는 일이 잇달아도, 이러한 막짓을 막으려고 함께 일어서서 어깨동무를 하지 못해요. 땅이 무엇인지 모르니, 그저 남 일이 될 뿐입니다.





- “후우, 후쿠. 원숭이가 오지 않아도 그건 안타까워할 일이 아니란다. 사람으로 바뀌었을 뿐이야. 신을 대신해 이 땅에서 사는 자를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 사람이 늘어나면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기겠지만, 너희는 그저 웃고 있으면 돼. 즐거워야 승리의 신이 내려오는 법. 우리는 이기는 신원이니까. 너희가 웃지 않으면 아무도 이기게 해 줄 수가 없단다. 그러니까, 너희는 늘 즐겁게 지내거라! 게다가 절과 묘지도 함께 있고, 너희는 오래오래 살 테니까. 인간의 몫, 원숭이의 몫, 그리고 이 할아비의 몫까지, 이곳에서 쭉 앞으로의 세상을 지켜봐 다오.” (64∼65쪽)



  오치아이 사요리 님이 빚은 만화책 《은여우》(대원씨아이,2014) 셋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듯이 일본에서도 ‘다른 님’이나 ‘다른 숨결’을 섬기거나 아끼거나 생각하는 사람이 아주 크게 줄었습니다. 땅을 섬기거나 냇물을 섬기거나 숲을 섬기는 사람이 일본이든 한국이든 매우 적습니다. 아이들은 학교교육에 매달리면서 입시지옥으로 휩쓸리고, 어른들은 날마다 돈을 버느라 허덕입니다. 삶을 가꾸는 길에서 자꾸 멀어지고, 삶을 사랑하는 길하고는 자꾸 등돌립니다. 하늘에 하늘님이 있고 땅에 땅님이 있으며 숲에 숲님이 있는 줄 헤아리지 않아요. 내 마음속에 하느님이 있는 줄 알아차리지 않고, 내 이웃과 동무도 나와 똑같이 아름다운 숨결인 줄 알아보지 못합니다.




- “저는,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 검도를 이용했어요. 그러니까, 이제 충분해요.” “딱히 상관없잖아! 검도가 두 번째라면, 첫 번째를 소중히 하고, 두 번째도 소중히 하면, 좋아하는 일은 전부 하면 되잖아! 까짓 거 욕심 한번 부려 봐!” (99∼100쪽)

- “너도 참 대단하다. 해마다 똑같으니까 그냥 컴퓨터로 출력하면 될 텐데.” “네? 그래도 돼요?” “으음. 확실히. 그러면 편하긴 하겠지만, 신주의 축사는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신께 소원을 말씀드리는 일이니까, 역시 정성껏 손으로 써야 신께 제대로 전달이 되겠지.” (142∼143쪽)



  꽃을 섬기는 사람은 꽃내음을 맡으면서 꽃넋이 됩니다. 풀을 섬기는 사람은 풀내음을 맡으면서 풀넋이 됩니다. 나무를 섬기는 사람은 나무내음을 맡으면서 나무넋이 됩니다.


  돈을 섬길 적에는 돈내음을 맡고, 책을 섬길 적에는 책내음을 맡습니다. 땅을 섬기기에 땅내음을 맡으며, 전쟁무기를 섬기기에 총내음이나 포탄내음을 맡습니다.


  어떤 내음을 맡으면서 어떤 넋이 될는지, 저마다 스스로 고릅니다. 어떤 내음을 맡으면서 어떤 길을 걸을는지, 저마다 스스로 찾습니다. 나를 아끼면서 이웃을 함께 아낄 수 있고, 나를 내팽개치면서 이웃도 괴롭힐 수 있습니다.




- “신이 있든 없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단지 너희가 사는 세계에서는 그렇게 믿을 뿐이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게 중요해. 믿는다면 있는 거고, 그럼 그걸로 충분하잖아. 다만 우리가 보이는 만큼, 너희는 다른 사람들보다 믿기가 더 수월할지도 모르지.” “그렇구나! 하지만 정말 신기해. 옛날에 하던 마츠리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그건 결국 모두가 이어왔기 때문이잖아.” (181쪽)



  예부터 바람이 불면 꽃잎이 날렸습니다. 예부터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가 춤을 추었습니다. 예부터 바람이 불면 새는 바람을 타고 높이 날았습니다. 예부터 바람이 불면 배는 돛을 펼쳐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예부터 바람이 불면 아이들은 연을 들고 들로 나와서 연을 날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람이 부는 날에 무엇을 할까요. 오늘 우리는 바람을 맞으면서 무엇을 생각할까요. 오늘 우리는 이 바람을 아이와 함께 어떻게 맞이하는가요. 대한 추위를 이레 즈음 앞두고 바람결이 달라집니다. 아직 봄은 더 있어야 찾아올 테지만, 한겨울 바람이 살포시 달라졌습니다. 4348.1.1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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