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나눠 준 선물 하이타니 겐지로의 시골 이야기 3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김종도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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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80



계급사회를 부채질하는 학교교육

― 하늘이 나눠 준 선물

 하이타니 겐지로 글

 김종도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양철북 펴냄, 2005.5.9.



  배우고 가르치는 곳을 가리켜 ‘학교’라고 합니다. 그러니, 학교에서는 서로 배우고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학교는 배우고 가르치는 구실을 거의 안 합니다. 아이들 앞에 교과서를 놓은 뒤, 이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을 시험문제로 바꾸어서 점수따기를 시킵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삶을 배우거나 사랑을 배우거나 꿈을 배우지 않습니다. 오직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을 시험문제로 바꾸어서 외웁니다.


  학교 바깥을 보면 학원이 아주 많습니다. 학교에서 교과서로 가르치는 지식을 시험문제로 더 잘 맞힐 수 있도록 이끄는 데가 학원입니다. 이러다 보니, 학교를 다니는 아이는 너나 할 것 없이 고달픕니다. 시험점수가 안 나오는 아이도 고달프고, 시험점수가 잘 나오는 아이도 고단합니다. 한쪽에서는 점수가 더 올라가지 못해서 고달프고, 한쪽에서는 점수가 더 떨어지지 않도록 하려고 고단합니다.


  이 같은 학교 얼거리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이러한 얼거리를 잘 아는 사람도 참 많은데, 막상 이 얼거리는 달라지거나 바뀌거나 바로잡히지 않습니다. 그저 이 얼거리가 그대로 흐릅니다. 시험점수에 따라 학교를 등급으로 매기고, 이 등급에 따라 사람한테 계급을 매깁니다.



.. “다카유키, 벼포기를 그렇게 쥐면 안 돼. 잘못하면 낫에 손가락을 벨 수도 있어.” 다케조 아줌마가 다급하게 말하며 낫질하는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벼포기를 쥘 때 나는 엄지손가락이 밑을 보게 쥐었는데, 아줌마는 엄지손가락이 위를 보게 쥐라고 했다 … 나는 벼를 베면서 생각했다. 사람들은 밥을 먹을 때 농사를 짓느라 고생한 농부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아. 나는 지금껏 돈은 참 편리한 것라고 생각했어. 뭐든지 살 수 있으니까 ..  (14, 20쪽)



  학교교육은 계급사회를 부채질합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삶과 사랑과 꿈을 안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삶과 사랑과 꿈을 가르친다면, 계급사회를 부채질할 수 없습니다. 삶과 사랑과 꿈은 계급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삶이요 사랑이요 꿈입니다. 삶을 가르치는데, 누가 높고 낮겠습니까. 사랑을 가르치니, 서로 어깨동무를 할 테지요. 꿈을 가르치면, 다 함께 즐겁게 놀고 일하는 마을로 나아갑니다.


  오직 교과서를 앞에 놓고 시험점수로 아이들을 등급으로 매기는 학교인 탓에, 이러한 학교를 다니는 아이는 어릴 적부터 신분과 계급과 등급 따위에 길듭니다. 낮은 등급이면 낮은 등급대로 아프고, 높은 등급이어도 높은 등급대로 아파요. 서로 돕거나 아끼는 길보다는, 내 한몸 버티는 일로도 벅찹니다.



.. 아빠는 도시에는 유혹이 많다고 했다. 후타한테 돈을 주면서 사흘만 이곳에 있으라고 하면, 후타는 너무 많이 먹어서 씨름 선수처럼 뚱뚱해져 버릴 거다 … 마을 사람들은 곧잘 우리더러 이런 쓸쓸한 곳에는 왜 왔냐고 하지만, 정작 쓸쓸해하는 마을 사람은 한 명도 못 봤다 … “늘 하는 말이지만, 먹거리는 모두 생명이야. 그런데 도시 사람들은 인간의 노동과 지혜까지도 죄다 돈으로 사 버린단다. 그러고는 값비싼 음식을 아무렇지 않게 남기지.” ..  (35, 52, 94쪽)



  하이타니 겐지로 님이 쓴 《하늘이 나눠 준 선물》(양철북,2005)을 읽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어린이문학입니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입니다. 등급을 매기는 삶이 아니라, 사랑을 나누는 삶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얼크러지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래, 도시를 떠나자!’ 하고 씩씩하게 외칠 어른이나 아이는 몇이나 될까 궁금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구나, 도시에서 살아도 삶을 제대로 배워서 알아야겠구나!’ 하고 기쁘게 무릎을 칠 어른이나 아이는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러게 말이야, 날마다 먹는 밥이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나한테 오는지 여태 생각한 적이 없네!’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제부터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겠노라 다짐하는 어른이나 아이는 어디에 있을까 궁금합니다.



.. “요즘은 어디나 농약을 쓰기 때문에 우렁이나 미꾸라지를 볼 수 있는 곳은 이런 산 속의 연못밖에 없단다. 아빠 어릴 때는 논바닥이 우렁이나 미꾸라지 천지였는데, 이제는 너무 귀해.” … 나는 선뜻 대답했다. 물고기를 죽이는 건 싫고, 밭에서 채소를 뽑아 오는 건 아무렇지 않은 이유는 뭘까? 아빠 말처럼 모두 다 생명인데 ..  (87, 91쪽)



  아이한테 문제집이나 참고서를 사서 안기는 어버이는 아주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문제집이나 참고서는 ‘참된 지식’을 하나도 안 다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길에 즐겁게 익혀서 아름답게 헤아릴 ‘올바른 슬기’는 문제집이나 참고서에 한 줄로도 안 나오기 때문입니다.


  문제집이나 참고서는 시험점수를 더 잘 받으라고 만든 종이꾸러미입니다. 이런 종이꾸러미는 책조차 아닙니다. 학교교육이 더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계급사회로 나아가도록 부채질하는 종이꾸러미가 문제집이나 참고서입니다.


  어버이라 한다면, 문제집이나 참고서를 사 주지 말고, 텃밭을 지어야 합니다. 아이한테 텃밭 한쪽에 나무를 심을 수 있도록 땅뙈기를 마련해야 합니다. 마당이 있는 집을 장만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리 넓지 않아도, 두 발로 흙을 밟고 두 손으로 흙을 만지면서 풀과 꽃과 나무를 아끼는 마음을 아이가 손수 기르도록 이끌 때에 비로소 ‘어버이’가 됩니다.



.. “도시 사람들은 새빨갛게 익은 맛있는 딸기를 돈을 주고 살 뿐이야. 딸기를 모종 때부터 키우면서 딸기와 친하게 지낸 즐거운 기억은 돈으로 살 수 없어.” … “요즘 세상에는 먹을 게 어찌나 많은지, 마당에 감이 열려도 비파가 익어도 요즘 시골 아이들은 거들떠보지 않아요.” ..  (149∼150, 154쪽)



  아이는 아이답게 뛰놀 때에 아이입니다. 어른은 어른답게 일할 때에 어른입니다. 교과서를 앞에 놓고 시험점수를 잘 따는 아이는 아이가 아닙니다. 돈만 잘 벌어서 아이한테 이것저것 사다 줄 수 있는 어른은 어른이 아닙니다. 함께 삶을 짓는 아이와 어른이 되어야 하고, 함께 사랑과 꿈을 가꿀 수 있는 아이와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제대로 철이 들어 슬기롭게 삶을 노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 배우고 왜 가르칠까요? 오롯이 우뚝 서서 이웃과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도록 이끌려고 배우면서 가르칩니다. 사람이 되는 길로 나아가도록 하는 학교여야 합니다. 졸업장을 낳는 학교가 아니라, 신분과 계급을 만드는 학교가 아니라,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꿈을 노래하면서 이야기하는 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이 나눠 준 선물》은 참 예쁜 책입니다. 어른은 하늘이 나눠 준 선물이 무엇인지 알아채야 하고, 아이는 하늘이 나눠 준 선물을 받아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4348.1.1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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