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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속에 사는 악어 ㅣ 사계절 저학년문고 12
위기철 지음, 안미영 그림 / 사계절 / 199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시를 사랑하는 시 48
잔소리와 사랑 사이에서
― 신발 속에 사는 악어
위기철 글
안미영 그림
사계절 펴냄, 1999.4.3.
잔소리는 이렇게 꾸민들 저렇게 덧씌운들 언제나 잔소리입니다. 빙그레 웃음을 지으면서 잔소리를 해도 잔소리는 늘 잔소리입니다. 그래서, 잔소리를 요렇게 꾸미거나 조렇게 꾸미더라도, 이 말을 듣는 사람은 잔소리를 들을 뿐입니다.
사랑은 이렇게 안 꾸미거나 저렇게 안 덧씌워도 늘 사랑입니다. 딱히 웃음을 짓지 않더라도 사랑은 언제나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굳이 꾸미지 않습니다. 사랑은 애써 덧씌우지 않습니다. 사랑을 듣는 사람은 한결같이 사랑을 듣습니다.
.. 할머니도 늙고 / 호랑이도 늙고 /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는 / 길고 긴 가래떡 .. (가래떡)
위기철 님이 쓴 동시 《신발 속에 사는 악어》(사계절,1999)를 읽습니다. 위기철 님은 ‘잔소리’를 여러모로 꾸미고 덧입히면서 아이한테 들려주려고 했답니다. 아이한테 늘 잔소리만 늘어놓는 이녁 모습을 돌아보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느꼈다는군요.
아이한테 들려주는 말을 떠올리자면 아무 말이나 들려줄 수 없습니다. 어버이가 거칠게 말하면 아이도 거칠게 말해요. 어버이가 잔소리쟁이라면 아이도 잔소리쟁이가 될 테지요. 그러니, 위기철 님은 이녁 잔소리에 이야기옷을 입힙니다. 투덜투덜거리는 잔소리가 아니라, 상냥하고 재미나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되기를 빕니다.
..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야. / 세모들만 살고 있는 세모 나라에 / 세모 아가씨와 세모 총각이 결혼해서 / 네모 부부가 되었대 .. (세모 나라가 사라진 까닭)
이야기라는 옷을 입은 잔소리는 새롭습니다. 아이는 여느 때 듣던 잔소리가 아니니 귀가 안 따갑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깨닫지요. 이 이야기도 알고 보면 ‘잔소리’인 줄 깨달아요. 다시 말하자면, 처음부터 이야기로 짓지 않고, 잔소리에 옷을 입힐 뿐인 말은 ‘새로운 잔소리’입니다.
학교에서는 ‘글짓기’라는 말을 안 쓰고 ‘글쓰기’라는 말을 쓰지만, 정작 아이들이 스스로 삶을 가꾸면서 글을 쓰도록 이끌거나 북돋우지 못합니다. 이름은 ‘글쓰기’로 바꾸더라도 낡은 교육 얼거리는 그대로 있습니다.
나라에서는 해마다 입시제도를 고친다느니 무엇을 한다느니 법석을 떨지만, 막상 입시지옥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껍데기를 바꾼다고 하면 껍데기가 바뀔 뿐, 알맹이가 바뀌지 않습니다. 알맹이를 바꾸어야 비로소 알맹이가 바뀝니다. 입시지옥을 없애야 아이들이 지옥에서 풀려납니다. 입시지옥은 그대로 두면서, 시험제도만 바꾼다 한들 아이들이 지옥에서 헤어날 길이 없습니다.
.. 너는 참 좋겠다. // 엄마가 비싼 옷을 안 입히니 / 모래 장난도 실컷 할 수 있거, // 집에 피아노가 없으니 / 피아노 연습도 안 하겠구나 .. (누가 더 행복할까?)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지어서 아이한테 들려주어야, 아이도 어른도 즐거울까요? 우리는 아이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야, 서로 즐거우면서 기쁘게 웃을까요?
아주 쉽습니다. 사랑을 이야기로 지어서 들려주면 됩니다. 꿈을 이야기로 지어서 들려주면 됩니다. 사랑을 이야기로 지으면 언제나 사랑입니다. 꿈을 이야기로 지으면 언제나 꿈입니다. 그러니까, 잔소리를 이야기로 지으니 이러한 이야기는 언제나 잔소리일 뿐이에요. 겉보기로는 맛깔스럽거나 구성지거나 재미나 보이지만, 가만히 읽고 보면, 남는 것은 오로지 잔소리입니다.
동시와 동화를 쓰는 어른은 우리 스스로 무엇을 쓰는지 제대로 생각하거나 살펴야 합니다. 아이한테 어떤 마음밥을 먹이고 싶은지 올바로 헤아리거나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잔소리밥을 먹으면 기뻐할까요? 아이들이 사랑밥을 먹거나 꿈밥을 먹을 적에 기뻐하지 않을까요?
.. 네가 잠이 들면 / 세상도 모두 잠이 든단다. / 텔레비전은 하품을 하고 / 시계는 코를 골고 / 길 가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 말하던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 쿨쿨 잠을 잔단다 .. (잠자기 싫을 때 읽어 봐)
말재주를 부리는 글은 말재주입니다. 말재주는 동시가 아닙니다. 말장난을 치는 글은 말장난입니다. 말장난은 동시가 아닙니다. 재미나게 이야기를 엮을 줄 아는 위기철 님인 만큼, 잔소리에 옷을 입히려는 몸짓이 아닌, 아이와 함께 사랑으로 짓는 삶을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엮는다면 아주 아름다울 만하리라 봅니다. 왜 구태여 잔소리를 동시로 써야 할까요? 아이한테 더 가까이 다가서려는 뜻이 없기에 잔소리를 가볍게 이야기로 꾸미고 말지는 않나 궁금합니다. 아이하고 더 신나게 뛰놀면서 까르르 웃고 노래하려는 삶이 못 되기에 그만 잔소리에 살그마니 손쉽게 덧옷을 입히고 말지는 않나 궁금합니다.
.. 옛날 옛날 어느 마을에 / 눈물 대신 꿀물이 나오는 / 그런 아가씨가 살고 있었대. // 아가씨가 울 때마다 / 들판에 나비랑 꿀벌들이 날아와 / 꿀을 빨아먹기 때문에 / 아가씨는 슬퍼도 울 수가 없었지 .. (울고 있을 때 읽어 봐)
아이와 함께 밥을 지어요. 아이한테 이것저것 차근차근 맡기면서 함께 밥을 지어요. 그러면 아이는 눈을 똘망똘망 밝히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배고픈 줄조차 잊으면서 밥짓기에 온마음을 쏟습니다. 아이와 함께 손으로 척척 비벼서 걸레를 빨고는, 노래하면서 온 집안을 닦아 보셔요. 아이는 눈빛을 환하게 밝히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팔 아픈 줄조차 잊으면서 걸레질에 온힘을 기울입니다.
삶을 사랑하면서 노래하는 시 한 줄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삶을 꿈꾸면서 짓는 웃음 한 자락은 늘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우리 어버이가 우리한테 물려준 사랑과 꿈을, 오늘 어른으로 이 땅에 선 우리들이 우리 아이들한테 즐겁고 기쁘게 다시 물려줄 수 있기를 빕니다. 4348.1.1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5/0111/pimg_7051751241134149.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