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는 어떻게 키워요?
나카가와 치히로 지음, 홍성민 옮김 / 동쪽나라(=한민사)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59

 
이야기를 먹고 사랑스레 자란다
― 천사는 어떻게 키워요?
 나카가와 치히로 글·그림
 홍성민 옮김
 동쪽나라 펴냄, 2005.7.20.


  ‘이야기밥’이라는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이 낱말을 씁니다. 서로 나누는 이야기는 서로 나누는 밥과 같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밥 한 그릇이 몸을 살리듯이 이야기 한 타래가 마음을 살린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어른이나 아이 모두 이야기는 밥입니다. 아이는 어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먹고 마음을 살찌웁니다. 어른은 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먹고 사랑을 키웁니다. 아이는 먼먼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를 먹고 생각을 북돋웁니다. 어른은 동무와 이웃이 살가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먹고 꿈씨를 심습니다.


.. 사람들에게 물어 봐도 천사 키우는 법은 알 수 없었습니다 … 사치는 우선, 혼자서 이것저것 해 보기로 했습니다 ..  (14∼15쪽)


  이야기를 듣는 아이는 눈망울이 또랑또랑합니다. 눈빛을 밝혀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은 눈길이 따스합니다. 눈빛을 살려 이야기를 합니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도 이야기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이야기밥을 먹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머리로 지을 수 있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마음으로 엮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라 하더라도 즐겁습니다. 어떤 이야기라 하더라도 따사롭습니다.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여야 하지 않습니다. 책이나 신문에 나오는 이야기여야 하지 않습니다. 풀을 뜯는 이야기도 되고, 꽃을 본 이야기도 되며, 나무를 쓰다듬은 이야기도 됩니다. 햇살을 바라본 이야기도 되고, 별을 노래하는 이야기도 되며, 냇물에 손을 담근 이야기도 됩니다. 개미집을 들여다본 이야기도 되고, 돌멩이를 손에 쥐고 흙바닥에 그림을 그린 이야기도 됩니다. 제비가 날아가며 노래하는 모습을 본 이야기도 되고, 구름이 흐르면서 달라지는 모습을 밝히는 이야기도 됩니다.

  이야기는 언제나 내 마음에서 태어납니다. 내가 스스로 내 둘레를 따사롭게 바라볼 적에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내가 스스로 내 보금자리를 곱게 돌볼 적에 이야기가 자라납니다. 내가 스스로 내 곁님을 살가이 보듬을 적에 이야기가 피어납니다.


.. 그런데, 천사는 무엇을 먹을까요? 장미색 구름? 밤하늘의 별? 꽃에 있는 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어서, 사치는 천사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야기.” ..  (20∼21쪽)


  나카가와 치히로 님이 빚은 이야기책 《천사는 어떻게 키워요?》(동쪽나라,2005)를 읽습니다. 책이름처럼 ‘천사를 키우는 아이’가 나오는 이야기책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아이는 집에서 돌보는 ‘귀염둥이 짐승’이 없습니다. 다른 동무는 저마다 이런 짐승을 키우고 저런 짐승이 있다면서 자랑하는데, 오직 한 아이만 아무런 ‘귀염둥이 짐승’이 없습니다. 이러던 어느 날, 이 아이한테 천사가 찾아와요.

  아이는 천사를 키우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다만, 아이가 키운다고 해서 ‘키워질’ 천사는 아니지만, 아이는 천사가 먹고 입고 자는 여러 가지를 걱정하고 생각합니다. 천사는 아이더러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이야기’만 들려주면 된다고 말합니다.


.. “아하, 알았다. 책이나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를 좋아해. 특히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을 때의 이야기를 좋아해.” ..  (27쪽)


  이야기를 밥으로 삼아서 먹는 천사는 ‘밥을 먹는’ 만큼 똥도 눕니다. 사람도 밥을 먹으면 똥을 누지요. 사람은 흙에서 나온 것을 밥으로 먹어서, 똥을 흙한테 돌려줍니다. 그러면 천사는? 천사는 이야기밥을 먹고는 별똥을 누어요. 천사가 먹은 밥은 별로 나와서 온누리를 밝히는 새로운 빛이 됩니다. 아이는 천사한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이야기를 밥으로 주면서), 온누리를 밝히는 빛이 자라는 숨결을 키웁니다.


.. 천사는, 사치의 마음속으로 쑥, 하고 들어가서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퍼냈습니다. 사치가 갖고 있던 마음의 작은 조각입니다.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아주 두근거렸을 뿐입니다 ..  (87쪽)


  우리는 누구나 이야기를 먹으면서 사랑스레 자랍니다. 아이만 자라지 않습니다. 어른도 날마다 자랍니다. 날마다 자라지 않는 사람은 죽음길을 걷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날마다 자라기 때문에 살 수 있습니다.

  날마다 자라는 사람은 아프지 않습니다. ‘아픔’이란 무엇인가 하면, 생채기나 앙금이나 응어리입니다. 날마다 자라지 못하기에 자꾸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파요. 자꾸 아프다 보니 몸과 마음에서 기운이 빠집니다. 몸과 마음에서 기운이 빠질 때마다 삶이 지겹거나 따분하거나 고됩니다. 이리하여 죽음길로 가지요.

  날마다 자라는 사람은 더러 앓습니다. ‘앓이’란 무엇인가 하면, 낡은 몸이나 마음을 내려놓고 새로운 몸이나 마음이 되려고 몸부림치면서 거듭나려는 몸짓입니다. 생채기나 앙금이나 응어리를 남기지 않고 새롭게 태어나고 싶은 몸짓이에요.

  앓는 사람은 훌훌 털어내요. 아픈 사람은 늘 안고 살아요. 이야기밥은 우리를 살찌우고 살려요.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에 삶이 더욱 삶답게 빛나도록 북돋우는 셈이요, 나 스스로 내 삶을 따사로이 바라볼 적에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셈입니다.

  내 마음조각을 읽고, 네 마음조각을 읽습니다. 내 마음조각에 새기는 이야기를 찾고, 네 마음조각에 새길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자라면서 이 지구별에 따사로운 사랑이 흐르기를 바랍니다. 4348.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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