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15. 사진에 파묻힌다



  사진을 하루에 오백 장쯤 찍든, 사진을 하루에 다섯 장쯤 찍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하루에 오백 장을 찍기에 많이 찍는다 여길 수 없고, 하루에 다섯 장을 찍기에 적게 찍는다 여길 수 없습니다. 사진을 찍는 까닭은 ‘나 스스로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오백 장씩 찍는 사람이 있다면, 날마다 오백 장에 이르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는 뜻입니다.


  하루에 사진을 다섯 장씩 찍는다면,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는 뜻일까요? 아닙니다. 사진을 한 달에 다섯 장 찍거나 한 주에 다섯 장 찍는 사람도 있어요. 누군가는 사진을 한 해에 다섯 장 찍을 수 있고, 사진을 다섯 해에 한 장 찍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숫자만 놓고 ‘많이 찍는다’고 여길 수 없고, 숫자만 살피면서 ‘남길 이야기가 많다’고 여길 수 없습니다.


  하루에 오백 장이 아닌 오천 장을 찍을 수 있습니다. 내가 찍는 사진을 내가 모두 찬찬히 돌아보면서 건사한다면, 하루에 오백 장이 아닌 오천 장을 찍어도 ‘많이 찍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나 스스로 알뜰살뜰 건사하는 사진이라면 ‘즐겁게 찍는 사진’입니다. 나 스스로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사진이라면 ‘파묻히는 사진’이나 ‘휘둘리는 사진’입니다.


  하루에 오백 장, 또는 삼백 장, 또는 백 장, 또는 쉰 장, 또는 서른 장, 이렁저렁 찍기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늘어나’지 않습니다. 한 주에 한 장만 찍더라도,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얼마든지 아로새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눈으로 보는 모습이나 몸짓’을 사진으로 찍을 때에 이야기가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로 나눌 이야기는 ‘사진으로 아로새기는 그림’이 아니라 ‘마음으로 갈무리하는 사랑과 꿈’입니다.


  사진을 왜 찍느냐 하면, ‘마음으로 갈무리하는 사랑과 꿈’을 ‘그림과 같이 아로새긴 모습’으로도 살며시 옮겨 빙그레 웃고 넌지시 노래하며 싱그러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면 이야기할 틈이 없습니다. 사진을 찍느라 열 일을 젖힌다면 웃거나 노래할 겨를이 없습니다. 삶을 누리는 길에서 사진을 찍을 뿐, 사진을 누리는 길에서 삶을 곁들이지 않습니다. 4348.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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