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가구야 공주 이야기)
만화영화로 나온 〈빨간머리 앤〉을 보면, 그야말로 온통 꽃누리이다. 마을도, 앤도, 마을을 둘러싼 숲도, 앤을 둘러싼 동무도, 온통 꽃밭이요 꽃빛이며 꽃내음이다. 소설 《빨간머리 앤》도 꽃누리라고 할 만할까. 아니면,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만 남달리 꽃누리인 셈일까.
〈빨간머리 앤〉을 그린 분이 새롭게 선보인 만화영화 〈가구야 공주 이야기〉를 본다. 〈가구야 공주 이야기〉를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꽃누리이다. 대나무밭도, 대나무밭을 둘러싼 마을도, 대나무밭을 둘러싼 마을에서 살아가는 어른과 아이도, 오롯이 꽃사람이요 꽃넋이며 꽃삶이다.
두 작품을 만화영화로 그린 분이 ‘나무’를 좋아한다면 아마 두 작품에는 나무가 자주 나오고 늘 나올 테지. 두 작품을 만화영화로 그린 분이 ‘비행기’를 좋아한다면, 이를테면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사람처럼 비행기를 좋아한다면, 만화영화에 내내 비행기가 나오리라.
만화영화 〈가구야 공주 이야기〉는 일본에서도 아주 오래된 이야기요, 먼먼 옛날 옛적 이야기라고 한다. 이 만화영화는 그야말로 오래된 일본 시골자락과 멧골마을 삶터를 사랑스럽고 살갑게 잘 그렸다. 그런데, 깊디깊은 멧골에서 지내는 할머니가 허리에 두른 ‘수건’조차 분홍빛에 꽃무늬이다. 집에도 집 바깥에도 온통 꽃일 뿐 아니라, 아이들이 입는 옷까지 알뜰살뜰 꽃무늬이다.
이런 그림은 아무나 그릴 수 없다. 이런 그림을 그리자면 그야말로 마음 가득 꽃숨이 흘러야 하고, 언제 어디에서나 꽃사랑을 나눌 수 있어야 할 테지. 어쩌면 나도 꽃을 좋아하고 좋아해서 〈빨간머리 앤〉이나 〈가구야 공주 이야기〉를 보는 내내 그예 꽃한테 눈길이 자꾸 가는지 모른다. 두 만화영화는 ‘꽃한테 바치는 작품’이 아닐까. 지구별을 맑고 밝게 가꾸는 사랑스러운 숨결인 ‘꽃’한테 드리는 선물이 아닐까. 4348.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