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의 시간 - 강만길 자서전, 2010년 제25회 만해문학상 수상작
강만길 지음 / 창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96


 

살아온 나날과 살아갈 꿈

― 역사가의 시간

 강만길 글

 창비 펴냄, 2010.5.20.



  역사는 무엇일까 하고 돌아보면, 두 가지가 떠오릅니다. 하나는 내가 살아온 발자국이랑 내 어버이가 살아온 발자국이랑 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살아온 발자국이랑 내 이웃과 동무가 살아온 발자국입니다. 다른 하나는 학교에서 교과서로 가르친 시험지식입니다.


  중학교에 들어설 무렵 비로소 ‘역사’라는 이름을 지식으로 맞이합니다. 국민학교를 다닐 적에도 ‘역사’나 ‘국사’나 ‘사회’라는 이름으로 여러 지식을 맞이했지만, 중학교에 들어서니, 하나라도 이름과 숫자를 잘못 외면 죽죽 그으면서 틀렸다는 말을 듣습니다. 학교에서 알려주는 역사는 오직 ‘시험을 치르면서 머릿속에 외워야 하는 통계와 숫자’입니다.


  흔히 말하기를, 학교에서 역사를 제대로 안 가르치니 젊은이가 역사를 모른다고 하지만, 학교에서 교과서로 역사를 다루려 하기 때문에 젊은이가 역사를 도무지 모르는 머리나 마음이 된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가르친다는 교과서는 ‘정치집권자 이름과 발자국’을 그러모은 시험문제일 뿐입니다. 대학입시에 따라 엮은 어설픈 ‘시사상식’입니다.


  대통령 이름이 역사일까요? 이것도 역사라면 역사일 테지만, 삶하고는 아주 동떨어진 역사입니다. 임진왜란이 터진 햇수가 역사일까요? 일제강점기가 언제인가 하는 숫자가 역사일까요? 매국노와 독립운동 같은 이름이 역사일까요? 새마을운동이 역사일까요? 자유무역협정이 역사일까요?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역사일까요?



.. 조선청년들이 처음에는 지원병으로, 다음에는 징병으로 일본군대에 입대하게 되면, 그 집에는 며칠 전부터 높은 깃발이 세워지고 축하잔치가 벌어졌다. 학교에서는 조선사람도 일본천황의 군인이 될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고 가르쳤다 … 초등학교 6학년생은 일본어 상용에 열중하면서 침략전쟁을 위한 노력동원에 끌려 다녔는가 하면 미군의 ‘대규모 폭격설’에 시달리기만 했다 …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35년간 일본 제국주의의 혹독한 강제지배를 받고 해방된 이 땅에서 침략자 편에 섰던 군인 출신이 대통령이 되는 역사를 겪어야 했으니, 그러고도 유구한 역사를 가진 문화민족사회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  (42, 50, 58쪽)



  사람들이 역사를 모르는 까닭은 사람들 스스로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가를 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까닭은 사람들 스스로 지구별 뿌리와 숨결을 도무지 안 쳐다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역사를 거스르는 짓을 저지르는 까닭은 사람들 스스로 삶과 사랑과 꿈을 모두 잊거나 잃었기 때문입니다.


  아기로 태어나서 어린이로 자라 푸름이를 지나 젊은이가 되는 동안, 오늘날 한국에서 사람들은 어떤 나날을 누릴까요? 이동안 사람답게 살까요, 아니면 대학입시에 시달리는 시험노예가 될까요? 어릴 적에 제대로 신나게 마음껏 노는 어린이는 몇이나 되는가요? 아름다운 이야기가 깃든 책을 읽는 어린이보다 수학 문제집이나 영어 교재를 숙제처럼 풀어야 하는 어린이가 훨씬 많은 한국에서 삶이 있기는 있을까요? 대학생이 되면 삶이나 사랑이나 꿈이 있을까요? 연봉 1억쯤 받는 일자리를 얻으면 비로소 삶이나 사랑이나 꿈을 찾을 수 있을까요?


  어릴 적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삶다운 삶이 없는 채 지냈는데, 이렇게 쳇바퀴로 구른 줄조차 느끼지 못하는 오늘날 한국사람입니다. 그러니, 시험지식으로 역사 과목 점수를 잘 받았어도 역사를 알 턱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지구별이 어떻게 태어났고, 해와 별과 달이 무엇인지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시험지식이 아닌 삶과 넋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 6·25전쟁을 침략전쟁으로 보면 전후 상당기간 그랬던 것처럼 남침이냐 북침이냐가 문제의 초점이 되고, 그 뒤에는 침략한 쪽에 대한 원한과 적개심과 복수심이 항상 따르게 마련이다 … 6·25전쟁을 계속 침략전쟁이라 강조하면서 침략자를 가려내어 그에 대한 원한과 적개심을 불태우는 것이 평화통일을 이루고 동아시아 및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길이 되겠는가 … 속없는 사람들이 흔히 “남자는 군대에 가 봐야 된다” 같은 말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방의무는 신성하다고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은 인간사회가 미개해서 전쟁이 문제해결의 최고수단이던 시대나 약육강식의 제국주의가 활개치던 시대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  (114, 115, 133쪽)



  강만길 님이 쓴 《역사가의 시간》(창비,2010)을 읽습니다. 강만길 님은 이녁이 살아온 나날을 더듬으면서 《역사가의 시간》을 씁니다. 교과서에 나온 이야기나 시험문제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녁이 몸으로 부대끼면서 누린 이야기를 씁니다.


  역사란 이야기입니다. 살아서 숨쉬는 역사란 이야기입니다. 지식으로 알려주거나 논문으로 쓸 때에 역사가 아니라, 서로 도란도란 주고받을 이야기일 때에 역사입니다.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이냐 하고 묻는 일은 부질없습니다. 바다나 하늘은 어느 정치집단이 거머쥐는 물건이 아닙니다. 독도를 일본땅이라 할 수 없을 테지만, 그렇다고 한국땅이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살뜰히 아끼거나 돌보면서 가꾸려는 손길이 없다면, ‘내 땅’이라고 외치는 뜻이 없습니다.


  4대강사업 따위를 하면서 냇물을 모두 망가뜨리는데, ‘내 땅’이란 무엇일까요. 4대강사업이 아니었어도 새만금이나 시화호를 밀어붙였는데, ‘내 땅’이란 있을까요. 골프장에서 농약을 엄청나게 뿌리고 땅속에서 샘물을 어마어마하게 뽑아내어 이 나라를 망가뜨리는 줄 뻔히 안다면서, 막상 골프장을 줄이거나 없애려는 몸짓은 없는데, 참말 ‘내 땅’이란 무엇인지 아리송합니다. 평화를 바란다면서 새로운 전쟁무기를 자꾸 만들면서 새로운 군부대를 더 늘리려 하는 짓을 보면, 한국사람은 ‘한국땅’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고 할밖에 없습니다. 역사도 모르고 삶도 모르니 모두 바보짓을 하면서 쳇바퀴를 돕니다.



.. 식민지화의 주된 원인이야 물론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있지만, 조선왕조 지배층의 아둔함과 무능·부패에도 책임이 있었다 … 당시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패한 곳의 하나가 바로 군대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부패의 온상이던 군부의 쿠테타로 세워진 정부가 부정부패를 일소하겠다 운운하는 데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는데 … 민주주의가, 역사가 하룻밤 사이 총칼에 의해 감금당하는데도 역사학계는 아무 말도 못했다 … 유신으로 박정희 정권의 영구집권계획이 진행되어 가는데도, 박 정권이 스페인의 프랑꼬 정권처럼 되어 가는데도, 경제성장이란 미몽에 빠져 국민 일반은 물론 지식인들까지도 대부분은 그것에 순종해 가고 있었다 ..  (151, 161, 189. 191쪽)



  교과서에 적어서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 역사가 아닙니다. 오늘날 학교교육은 대학입시로 몰아넣는 끔찍한 지옥이기 때문에, 교과서를 잘 엮는다고 해서 달라질 일이란 없습니다. 더군다나, 교과서에 담을 수 있는 역사 지식은 아주 조그맣습니다. 우리가 걸어온 발자국은 교과서에 몇 줄로 담지 못합니다. 우리가 걸어갈 발걸음은 교과서에 몇 쪽으로 싣지 못합니다.


  내 어머니와 할아버지가 살아온 나날만 해도 책 몇 권은커녕 수십 권으로 써도 모자랍니다. 내 이웃과 동무가 살아온 나날만 해도 책 수백 권에 이르도록 쓸 만합니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 한 권은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고작 역사 교과서 한 권으로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못 바꾸는 역사책입니다. 아무것도 못 짚는 역사책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알고 싶은 사람은 책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책을 덮고 눈을 떠서 둘레를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숲이 흘러온 역사를 책이나 도감으로 알려줄 수 없습니다. 책이나 도감은 나무 한 그루가 어떻게 씨앗에서 깨어나 수천 해를 살아내는지 적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사람들은 수천 해를 살아내지 않거나 못하니까, 나무 한 그루 이야기조차 ‘기껏 쉰 해 남짓’ 살피면서 ‘다른 책을 넘기’면서 몇 줄 끄적일 뿐입니다.


  고구려나 백제나 신라나 가야나 부여 적 이야기를 ‘몇 권 남은 역사책’을 훑으면서 살핀다 한들 얼마나 제대로 밝히거나 알 수 있을까요? 임금님이 먹던 밥이나 임금님이 흝은 말 몇 마디는 알는지 몰라도, 지난날 이 땅을 일구거나 가꾸면서 삶을 지은 사람들 이야기는 한 줄조차 없는 그런 역사책이 무슨 역사를 밝히거나 알릴까요?


  하다못해, 궁궐을 어떻게 짓는가 하는 역사조차 책으로 없고 책으로 밝힐 수 없습니다. 궁궐에 어떤 나무를 썼고, 어떤 나무를 어떻게 베고 손질하고 다루어서 기둥을 세우고 도리를 엮는지 어떤 책으로도 못 밝혔고 안 밝힙니다. 궁궐 기둥으로 삼을 만한 나무는 몇 백 해를 자란 나무인지 누가 알까요. 궁궐 기둥을 받치는 돌은 어디에서 어떻게 얻은 돌인지 누가 알까요.



.. 베트남파병이나 이라크파병이 국익을 위해서라 하면, 지난날 제국주의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파병이나 침략도 그들 국민들에게는 국익을 위해서라 말한 것과 다르지 않게 된다 … 행방을 모른다는데도 매일 불러내어 고문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야말로 사람 패는 일을 즐기는 자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서슬이 퍼렇던, 그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문을 가하고 목숨까지 빼앗던 치안국 ‘대공분실’이 ‘인권보호센터’로 되고, 학살의 현장이 희생자의 기념관이 되고 마는 그 ‘이치’를 모르면 결코 역사를 안다 할 수 없을 것이다 ..  (218, 254, 279쪽)



  조각조각 따지는 시사상식이나 정보는 역사가 아닙니다. 신문이나 방송을 타고 흐르는 사건이나 사고 소식은 역사가 아닙니다. 신문이나 방송도 쌓이고 쌓이면 역사가 된다고 하지만, 이러한 ‘역사’는 사람이 살아온 발자국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온 발자국을 엿본 눈길’ 가운데 몇 가지일 뿐입니다.


  《역사가의 시간》이라는 책에도 나오는데, 강만길 님은 ‘아주 가볍게 고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강만길 님이 받은 고문은 아주 가볍습니다. 그나마 강만길 님은 이렇게 이녁 책에 몇 줄 적기라도 했지만, 군사독재정권이 춤추던 때에 끔찍하게 고문을 받다가 죽은 숱한 사람들 이야기는 아무 책에도 안 적혔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죽은 윤동주 시인 같은 사람이 어떤 고문을 받았는지 어떤 책에 적혔을까요? 일제강점기에 부역을 했던 사람들이 남몰래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얼마나 역사로 적혔을까요?


  역사를 모르면 잘못된 일이 되풀이된다고들 말합니다. 틀리지 않는 말입니다. 다만, ‘역사를 모르’면 잘못이 되풀이된다기보다 ‘삶을 모르’면 잘못을 되풀이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삶을 지어 아름답게 사랑하는 꿈을 가꾸지 않을 적에 잘못을 자꾸 되풀이합니다. 정치권력을 거머쥔 이들이 시키는 짓을 고스란히 따르니, 잘못을 자꾸 되풀이합니다. 인문 지식을 머릿속에 넣는다고 해서 잘못된 역사를 멈추지 않습니다. 인문 지식은 하나도 없어도 스스로 삶을 지을 줄 알 때에 잘못된 역사를 끊습니다. 책 한 권 안 읽었어도 스스로 삶을 가꾸면서 꿈을 보듬을 적에 잘못된 역사를 멈추게 합니다.


  머릿속에 인문 지식을 담으면 무엇을 할까요? 이녁이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으면 입시지옥 쳇바퀴를 밟도록 몰아넣기만 하는걸요. 머릿속에 진보나 개혁이나 평등이나 평화 같은 지식을 잔뜩 넣으면 무엇을 할까요? 막상 이녁이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은 뒤에 입시학원에 넣고 ‘서울에 있는 일류대학 졸업장’을 따도록 부추길 뿐인걸요.



.. 역사의 진행은 모든 부분이 고루 나아갈 때 비로소 그 옳은 길에 들어서는 것이다. 결코 산업화의 주력이 따로 있고 민주화의 주역이 따로 있고 평화통일의 주역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 대학총장 한 임기를 겪으면서 절실히 느낀 점은 모든 대학은 총장의 업무추진비를 비롯해서 재정 일체를 세목까지 철저히 공개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 뒤돌아보면 일제강점기 민족사회 전체가 제국주의 일본의 강제지배 아래 있을 때도 우리 역사학은 그같은 민족사적 현실에 관심을 갖고 그런 상태에 빠지게 된 원인이나 대응책 같은 것을 연구대상으로 삼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 김영삼 정부 때는 말할 것 없고 김대중 정부 때까지도 행정부에는 민주세력이 많이 진출했다 해도 국회는 군사독재정권과 유착되었던 반민주세력이 그대로 점령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과거청산특별법 같은 것이 제안될 수도 통과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  (364, 444, 503, 512쪽)



  섣부른 지식으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습니다. 섣부른 지식은 오히려 엉터리 정치권력한테 힘을 보태어 줍니다. 인문 지식만 쌓는 일은 되레 바보스러운 정치권력이 더 힘을 내도록 부추깁니다.


  정치권력이 꾀하는 바보짓에 휘둘리지 않도록 쳇바퀴질을 멈출 때에 역사를 알아챕니다. 역사를 알아채는 사람은 이녁 아이를 의무교육 수렁에 집어던지지 않습니다. 역사를 깨달은 사람은 아이와 함께 삶을 새롭게 배워서 스스로 짓는 길을 걷습니다.


  많이 배운 사람들이 왜 자꾸 멍청한 짓을 하는지 꿰뚫어보아야 합니다.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머리통만 무거울 뿐, 몸으로는 아무것도 안 하기 때문입니다. 역사 지식을 많이 머릿속에 집어넣는다고 하더라도, 인문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더라도, 집회에 자주 나가서 주먹을 불끈 쥔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짓는 삶이 없으면 모든 일은 정치권력자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꼴입니다.


  옛날부터 ‘나라를 버틴 힘’은 군대나 임금님이나 학자가 아닙니다. 책이나 글을 하나도 모르는 채 시골에서 조용히 흙을 짓고 아이를 돌보면서 이야기와 말과 사랑을 물려준 수수한 어버이입니다. 수수한 어버이가 수수한 삶을 가꾸면서 수수한 사랑으로 모든 이야기를 짓고, 이 땅을 알뜰살뜰 일구었습니다.


  숲이 없으면 지구별은 무너집니다. 도시를 키우고 공장을 세워 경제발전 따위를 아무리 들먹거려도 숲이 없으면 지구별은 죽음입니다. 석유를 아무리 많이 뽑아낸들 석유를 먹지 못합니다. 석유로 돈을 버는 나라마다 사막에 숲을 가꾸려고 엄청나게 돈을 써대는 까닭을 읽지 못하면서, 이 조그마한 한국땅에 고속도로와 온갖 공장과 발전소와 아파트 따위만 자꾸 짓는 모습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한국 역사는 늘 뒷걸음을 칠밖에 없습니다.


  아파트를 장만할 돈이 있으면 시골에 땅을 장만해서 숲집을 가꾸어야지요. 스스로 삶을 지어야지요. 정치권력자와 경제권력자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멍청한 역사는 또 되풀이합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베푸는 정책을 기다리지 말고, 어떤 정부지원 없이 즐겁게 삶을 지어서 일구는 길로 걸어야 바보스러운 역사를 끊습니다. 군사독재정권이 시골을 무너뜨리고 도시를 키우는 까닭을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군사독재정권이 끝난 뒤에도 다른 정치권력이 똑같이 도시를 키우고 시골을 짓누르는 까닭을 올바로 읽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도시에만 몰려들어 돈만 벌면서 ‘삶짓기’를 안 하면, 정치권력자와 경제권력자가 시키는 대로 쳇바퀴를 돌 수밖에 없는 줄 똑똑히 읽어야 합니다. 4347.12.2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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