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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맨션 3 ㅣ 토성 맨션 3
이와오카 히사에 지음, 박지선 옮김 / 세미콜론 / 2012년 10월
평점 :
만화책 즐겨읽기 441
해를 먹는 사람과 나무
― 토성 맨션 3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
박지선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12.10.8.
해는 언제나 내리쬡니다. 다만, 지구별은 해를 따라 천천히 돌기 때문에 하루 내내 해가 비추지는 않습니다. 지구별 어느 곳이든 낮과 밤이 있어서, 낮 동안에는 해가 비추고 밤 사이에는 해가 저뭅니다. 낮에는 햇볕을 쬐고 햇빛을 받으면서 움직이고, 밤에는 달빛과 별빛을 고루 헤아리면서 느긋하게 몸을 쉽니다.
사람이든 풀이든 벌레이든 새이든 모두 낮에 일어나서 움직입니다. 해질 무렵 살며시 봉오리를 벌리는 꽃이 더러 있으나, 저녁이 되어 봉오리를 벌리더라도 낮에 잎사귀로 햇볕을 받아들여야 기운을 얻습니다. 사람은 지하상가를 만들고 높다란 건물을 지어서, 한낮에 일한다 하더라도 햇볕 한 조각조차 없이 지내기도 하는데, 아무리 햇볕이 없이 일한다 하더라도 햇볕이 머금은 밥을 먹으면서 새롭게 기운을 얻어요.
그런데 요즈음은 살갗으로도 햇볕을 안 쬘 뿐 아니라, 밥으로도 햇볕을 못 쬔 먹을거리를 먹기 일쑤입니다. 이를테면, 닭공장에서 자란 닭은 햇볕이 아닌 등불을 쬐며 자랍니다. 쌀은 맨땅에서 햇볕을 먹으면서 자라지만, 쌀이 아닌 웬만한 푸성귀는 비닐집에서 농약과 비료와 수돗물을 먹으면서 자라요.
- “여기서 같이 살지 않을래?” “예?” “돈이라면 얼마든 줄 수 있는데.” (7쪽)
- “나랑 같이 살자. 정 안 되면 잠들 때 손이라도 잡아 줘. 손. 이상하지? 돈이라면 넘치도록 있고, 목적도 이룬 셈인데 기쁘지가 않으니. 이상해.” (13쪽)
사람은 해를 먹기에 해처럼 환하게 웃습니다. 나무는 해를 먹기에 해처럼 포근한 품으로 숲을 이룹니다. 사람은 해를 먹기에 해처럼 맑게 노래합니다. 나무는 해를 먹기에 해처럼 너그럽게 푸른 숨결을 베풉니다.
그러면, 해를 먹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지낼까요? 해를 등지면서 차디찬 교실에서 등불만 바라보던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를 거쳐 회사원이나 공장 일꾼이 되는데 이곳에서도 해하고는 동떨어진 채 돈만 벌어야 하는 어른들은, 저마다 어떤 몸과 마음이 되어 지낼까요? 해를 모르면서 지내는데 해님처럼 웃거나 노래할 수 있을까요? 해를 먹지 않는데 해처럼 따뜻하거나 포근한 넋이나 얼이 될 수 있을까요? 해를 알지 못하는데 이웃한테 해처럼 사랑스러운 손길을 건넬 수 있을까요? 해를 사귀지 않았는데 짝꿍한테 슬기로운 눈빛으로 아름다운 꿈을 들려줄 수 있을까요?
- “진수성찬? 그런 건 특별한 날에 특별한 일이 있을 때나 먹는 거잖아? 오늘같이 아무 소득도 성과도 없는 쓰잘데기 없는 날에 그런 걸 먹으면 안 될 텐데 왜 하필 그런.” “말이 많다! 가끔은 좋잖아, 이런 날도!” (34쪽)
- “누군 곱빼기 식단을 짜고 싶어 안달 날 지경인데 먹어 주지도 않고. 복수로다가 식사 명단에서 빼 버릴까 보다.” (54쪽)
이와오카 히사에 님이 빚은 만화책 《토성 맨션》(세미콜론,2012) 셋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햇빛도 햇볕도 제대로 쬐지 못하는 자리에서 살며 말없이 ‘주어진 일’을 하는 신분이나 계급인 사람한테는 무엇이 보람이 될까 궁금합니다. 초·중·고등학교를 다닐 적에만 ‘중간 계층’ 자리에 구경하듯이 올라가서 살그마니 햇볕과 햇빛을 처음 만나고는, 학교를 마치면 다시 아래 계층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이들은, 또 위쪽 계층에 있다가 중간 계층에 살짝 머문 뒤 다시 위쪽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이들은, 저마다 어떤 마음이 될까요.
아니, 우리 삶에서 위와 아래를 따질 수 있는지 아리송합니다. 사람들은 억지스레 위와 아래를 가르고, 신분과 계급을 나누는데, 어디가 어디한테 위가 될까요? 어디가 어디한테 아래가 될까요? 지구별에서 위쪽과 아래쪽이 있을까요? 남반구와 북반구로 가르기는 하는데, 참말 남반구는 아래이고 북반구는 위일까요? 우주에서 지구별을 바라볼 적에 어디가 위가 되거나 아래가 될까요? 별에 위와 아래가 있을 수 있을까요? 별에 왼쪽이나 오른쪽이 따로 있을까요?
- “검문에 대한 요청은 들어 드릴 수 없습니다. 규정 상 다른 목적의 돈은 받을 수도 없고, 전 창문닦이로 온 거니까요. 그렇게 걱정이시면 직접 확인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 상층 주민은 하층 출입 제한도 없지 않습니까.” (110쪽)
- “하층의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일입니다. 전 역시 창문 닦는 일이 좋아요.” (121쪽)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를 살랑입니다. 바람을 받은 나뭇가지는 바람결에 따라 살랑살랑 흔들리는데, 바람 따라 흔들리면서 바람노래를 부릅니다. 햇볕을 머금는 나무는 따사로운 햇볕을 맞아들이면서 햇볕노래를 부릅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비노래를 부르는 나무요, 구름이 가득한 날에는 구름노래를 부르는 나무입니다.
우리들 사람도 철 따라 노래를 부르며 살았습니다. 우리들 사람도 날 따라 다른 노래를 부르던 숨결입니다. 민들레를 먹을 적에는 민들레와 같은 노래를 부르고, 도라지를 먹을 적에는 도라지와 같은 노래를 불러요. 보리밥을 먹을 적에는 보리와 같은 노래를 부르고, 옥수수를 먹을 적에는 옥수수와 같은 노래를 부르지요.
능금알처럼 웃는 아이들이 사랑스럽습니다. 배꽃처럼 하얀 아이들이 믿음직합니다. 포도씨처럼 야무진 아이들이 수더분합니다. 감꽃처럼 싱그러운 아이들이 듬직합니다. 우리는 가슴에 꽃씨를 품고 자라는 예쁜 목숨입니다. 4347.12.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