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쓸년
김성희 지음 / 수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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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39



귀에 딱지가 앉는 만화

― 몹쓸 년

 김성희 글·그림

 수다 펴냄, 2010.4.27.



  김성희 님이 빚은 만화책 《몹쓸 년》(수다,2010)을 읽다 보니 내 예전 일이 문득 떠오릅니다. 나도 서른 언저리에 ‘언제 장가 가느냐?’ 하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습니다. 둘레 어른은 ‘언제 공부 하느냐?’부터 해서 ‘언제 대학교 가느냐?’를 거치고 ‘언제 회사 가느냐?’를 지나서 ‘언제 애인 사귀느냐?’와 ‘언제 시집·장가 가느냐?’를 입에 달고 사는데, 이 다음에는 ‘언제 아기 낳느냐?’와 ‘언제 집 장만하느냐?’를 내내 캐묻습니다. 그냥 건네는 인사말이 아니라 캐묻는 말입니다.


  나는 이제 이런 말을 더 듣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둘레 어른들이 이런 말을 우리 아이한테 하려고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큰아이가 여덟 살을 코앞에 두니 ‘언제 학교 가느냐?’ 하는 말을 끝없이 들려줍니다. 아이를 꼭 학교에 보내야 할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만, 여덟 살이 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에 가야 하는 줄 여기는구나 싶습니다.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치는지 모르는 채, 아이가 학교에서 무엇을 배워 어떤 삶이 될는지 모르는 채, 그저 쳇바퀴처럼 빙빙 돌리려 합니다.



- 두 번의 여행 사이에 나는 서른이 되었고, 서른을 넘었다. (8쪽)

- 보는 사람마다 하는 소리에 귀에 딱지가 생길 지경이다. (13쪽)

- 친구의 남편이자 동창은 우리를 가리켜 ‘진짜 재미난 친구들’이라 거듭 말하고, 꿔다 논 보릿자루가 되지 않으려는 사무실 노총각은 오버스럽게 연신 고개를 끄덕거린다. (28쪽)





  곰곰이 돌아보면, 한국 사회에서 바보스러운 쳇바퀴짓을 한 지 그리 오랜 나날이 흐르지는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쉰 해 즈음 될 테지요. 남녘과 북녘이 갈라진 뒤 어수선한 틈바구니에서 군사쿠테타가 일어나고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이라는 허울좋은 독재정권이 불길처럼 일어날 무렵부터 이런 바보스러운 캐묻기와 쳇바퀴가 불거졌습니다.


  한국사람은 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 달삯을 받아야 할까요? 한국사람은 왜 도시에 가서 ‘성공’해야 할까요? 한국사람은 왜 몽땅 대학생이 되어야 할까요?


  ‘언제 시집·장가 가느냐?’ 하는 말만 뚝 잘라서 안 할 수 없습니다. 다른 모든 바보스러운 캐묻기가 모조리 사라져야 합니다. 아니, 온갖 바보스러운 말과 생각과 지식을 죄다 걷어내야 합니다. 삶을 짓는 길을 찾아야 하고, 삶을 가꾸는 사랑을 북돋아야 하며, 삶을 누리는 꿈을 지어야 합니다.



- 이해받고 싶다. 아니, 이해하게 하는 게 힘인 거 같다. (35쪽)

- 저 노인은 밭에서도, 산에서도 놓여났을 것이다. 저 노인의 실업에는 아무런 불안이 없다. 내 어울리지 않는 여유보다 자연스럽다. (83쪽)

- 우리가 바라는 건 다르지 않아. 존중받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데 이렇게도 서로 쉽지가 않아. (118쪽)





  삶이 있을 때에 사랑이 싹틉니다. 삶이 없기에 쳇바퀴짓을 하면서 오직 돈만 모아서 밥벌이를 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삶이 있을 때에 노래를 부르고 웃습니다. 삶이 없기에 쳇바퀴짓에 얽매여 노래도 없고 웃음도 없습니다.


  만화책 《몹쓸 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웃는 사람’도 ‘노래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살림이 고단해서 못 웃거나 못 노래할까요? 아닙니다. 돈이 없더라도 웃고 노래하는 사람은 많아요. 노닥거리느라 웃거나 노래하지 않아요. 스스로 즐거움과 기쁨을 불러들여서 삶을 환하게 빛내거나 밝힐 적에 웃거나 노래합니다.


  아이들이 왜 웃거나 노래할까요? 즐겁고 기쁘기 때문에 웃거나 노래합니다. 혼자서 놀더라도 새롭게 놀기에 즐겁고, 동무와 뛰놀면서 새롭고 신이 나니까 기쁩니다.


  다시 말하자면, 만화책 《몹쓸 년》은 한국 사회가 엇나갈 뿐 아니라 뒤틀리거나 비꼬인 슬픈 얼굴을 비춘다고 할 만합니다. 한국 사회가 언제까지 이토록 엇나가거나 뒤틀리거나 비꼬여야 할까 하고 묻는다고 할 만합니다.



- “저기 술집들, 문학적이지 않아? 이름들이?” (155쪽)

- 스스로 유일한 취미가 텃밭을 가꾸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가족을 가꾸는 일이 유일한 취미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192쪽)

- 그와 나에게 있는 건 이 시간이다. 그와 나에게 있는 이 거리는 서로를 위한 것이다. 이 거리를 자유라고 말해도 될까. 생이 다하지 않는 한, 그의 진심이 소중할 뿐이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216∼217쪽)





  엇나가는 사회 얼거리를 바로잡는 길은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내가 나를 사랑할 때에 비로소 사회 얼거리를 바로잡습니다. 내가 내 삶을 바로잡고 씩씩하게 일으켜세울 적에 비로소 사회 얼거리가 바로섭니다.


  다만, 사회를 바로세우려고 나를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내 삶을 지어서 스스로 웃고 노래하려는 기쁨을 누리려고 나를 사랑합니다. 웃음꽃을 피우려는 사랑이요, 노래잔치를 이루려는 사랑입니다.


  《몹쓸 년》을 그린 김성희 님은 이녁 삶과 살붙이를 돌아보면서, 끝끝내 ‘사랑’ 한 마디를 길어올려서 붙잡으려 합니다. 이녁이 다시 기운을 내어 만화를 그리는 힘과 바탕은 바로 ‘사랑’에 있다고 털어놓습니다.


  그러면 사랑이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서로 헤아리는 사랑이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사랑은 말로 그릴 수 없을까요. 사랑은 그림으로 보여줄 수 없을까요.


  겉으로 깔깔 호호 하하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웃음이 아닙니다. 포근한 기운이 흐르면서 마음을 따사롭게 어루만질 때에 비로소 웃음이고, 이러한 웃음에서 사랑이 자랍니다. 악을 쓰든 고래고래 거친 말을 내뱉든, 사랑은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 맞서야 할까요. 왜 자꾸 부딪히거나 다투어야 할까요.


  씨앗에서 싹이 트려면 햇볕과 빗물과 바람과 흙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네 가지 가운데 하나라도 없으면 싹이 트지 않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어야 하니, 네 가지를 아우르는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씨앗 한 톨은 모두 다섯 가지 기운을 받아서 깨어납니다.


  사람이 먹는 밥이나 능금이든, 새로운 목숨으로 태어나는 사람이든, 우리 마음속에서 자라는 사랑이라는 씨앗이든, 모두 다섯 가지 기운을 받아서 깨어납니다. 만화책 《몹쓸 년》에는 다섯 가지 기운 가운데 어떤 기운이 흐를는지 궁금합니다. ‘사랑이라는 씨앗’도 사랑을 받으면서 깨어납니다. 4347.12.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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