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한 밥그릇 글쓰기
한국말사전에서 ‘수수하다’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1) 물건의 품질이나 겉모양, 또는 사람의 옷차림 따위가 그리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고 제격에 어울리는 품이 어지간하다 (2) 사람의 성질이 꾸밈이나 거짓이 없고 까다롭지 않아 수월하고 무던하다”로 풀이한다. 제법 길게 풀이말을 달았지만 오히려 알쏭달쏭할 뿐 아니라, 말느낌을 못 살리는구나 싶다. 북녘에서 펴낸 한국말사전을 살피니, ‘수수하다’를 풀이하면서 ‘(1) 평범 (2) 소박’ 이렇게 두 가지 한자말을 쓴다. 한자말을 넣어 풀이를 하더라도 차라리 이 말풀이가 낫구나 싶다. 왜냐하면, ‘수수하다’라는 낱말은 꾸미지 않는 모습과 거짓이 아닌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꾸미지 않기에 좋거나 나쁘다고 따질 수 없다. 거짓이 아니기에 틀림없이 ‘참’이지만, 스스로 참이면서 참을 내세우지 않는 만큼 어느 자리에서 도드라지지 않는 모습이 바로 ‘수수하다’이다. 다른 한자말을 빌자면 ‘은근’하고 어울린다고 할 만하다. 그래서, 예부터 널리 쓰던 막사발이라든지 민무늬 밥그릇을 두고 “수수한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한겨레가 입던 하얀 빛깔 옷도 “수수한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널리 읽고 사랑하며 아끼는 시나 노래를 헤아려 본다. 이래저래 꾸민 시나 노래를 사람들이 널리 읽거나 사랑하거나 아낄까? 아니다. 오래오래 두고두고 읽고 부르는 시와 노래는 한결같이 ‘수수하’다.
무엇보다 들꽃과 들풀이 수수하다. 숲이 수수하다. 바다가 수수하다. 하늘이 수수하다. 우리가 늘 마시는 바람이 수수하다. 아침마다 찾아오고 저녁마다 지는 해가 수수하다. 나락 한 줌이 수수하다. 풀벌레 노랫소리와 멧새 노래잔치가 수수하다. 숲에 둘러싸여 포근하게 안긴 조용한 시골자락 조그마한 보금자리가 수수하다.
수수한 빛이란 삶빛이다. 수수한 삶이란 넌지시 오가는 사랑이 샘솟는 하루이다. 도드라질 까닭도 뒤떨어질 까닭도 없으면서, 언제나 있는 그대로 즐거운 사랑이 바로 수수한 사랑이라고 할 만하다. 수수한 밥그릇처럼 찬찬히 쓰는 글일 적에 마음을 건드리면서 밝힐 만하리라 느낀다. 4347.12.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