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와 책읽기



  모든 먹을거리가 모든 사람한테 똑같이 맞을 수 없다. 눈으로 보기에 내키지 않아서 안 먹는다기보다, 몸에서 안 받아들이기에 안 먹는 것이 있다. 밀가루가 안 받는 사람이 있고, 달걀이 안 받는 사람이 있으며, 쌀이 안 받는 사람이 있고, 소젖이 안 받는 사람이 있으며, 절이거나 삭인 것이 안 받는 사람이 있다. 일본 한자말인 ‘국민’을 빌어 ‘국민 음식’이라고 내세울 먹을거리는 처음부터 없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다 다른데, 어느 먹을거리가 몸에 안 받는 사람이 있으면, 이녁은 ‘한국사람이 아니다’ 하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사람 가운데에도 쌀밥이 몸에 안 받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한국사람 가운데 김치가 몸에 안 받는 사람이 꽤 있다. 오늘날처럼 ‘빨간 김치’ 모양으로 사람들이 김치를 먹은 햇수는 기껏 백 해쯤 된다. 더 찬찬히 살피면 백 해조차 안 된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한쪽으로 쏠리거나 미치면서 ‘빨간 김치’가 마치 ‘한겨레 옛 먹을거리’라도 되는 양 떠들지만, 터무니없는 소리이다.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이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살기에 이런 바보스러운 말을 함부로 하는데, 시골에서 사람들이 북적북적 모여서 지낼 적에는 ‘고추밭’을 넓게 두기 어려웠다. 한국에서 고추밭이 넓어진 지도 얼마 안 되었다. 한겨레가 두루 고추를 쓴 햇수부터 참으로 짧다.


  지난날 시골에는 아이도 많고 소나 돼지나 염소도 치기 마련인데, 사람이 먹을 곡식과 풀과 열매뿐 아니라 짐승이 먹을 곡식과 풀과 열매도 드물다. 이런 지난날 시골에서 ‘고추’를 얼마나 심었을까? ‘사람 많’고 ‘지을 땅은 좁’은데 고추를 얼마나 심어서 ‘빨간 김치’를 먹으려 했을까?


  배추가 중국에서 들어온 햇수도 참으로 짧다. 배추에 앞서 유채가 먼저 들어왔고. 유채에 앞서 갓이 차츰 퍼지듯이 들어왔다. 어쩌면 갓은 저절로 자랐을 수 있고, 중국을 떠난 배를 거쳐서 남녘(전라남도·경상남도)에 있는 섬으로 퍼져서 자랐을 수 있다.


  김치를 담갔다 하더라도 모든 옛사람이 김치를 먹었을까?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지난날에도 김치를 못 먹는 사람은 틀림없이 있다.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먹되, 못 먹는 사람은 못 먹는다. 어떤 사람은 풀밥만 먹고 살았을 테고, 어떤 사람은 무밥만 먹고 살았을 테지. 나중에 감자와 고구마를 받아들이기도 했으니, 어떤 사람은 감자밥이나 고구마밥만 먹고 살았을 수 있다. 콩밥은 참으로 오랫동안 먹었을 테고.


  아이한테 김치를 먹이고 싶다면, 이는 오직 ‘어버이 생각’이다. 아이가 김치를 받아들일 수 있고, 못 받아들일 수 있다. 아이가 받아들인다면 먹여도 되고, 아이가 못 받아들인다면 억지로 먹이지 말아야 한다. 어른으로서 이녁 몸을 생각해 보라. 어른인 이녁이 ‘못 먹는 밥’이 있을 적에 누군가 옆에서 억지로 숟가락으로 떠먹인다면 어떠한가? 어른은 이녁은 ‘못 먹는 밥’이 하나도 없더라도, 이녁이 낳은 아이는 이녁과 다르다.


  몸에서 안 받아들이는 김치를 어버이가 억지로 먹이면 어떻게 될까? 아이는 배앓이를 하면서 억지로 삼킨다. 먹지 않고 ‘삼킨’다. 나는 내가 떠올리지 못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중·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김치를 억지로 ‘삼키’면서 살았다. 국민학생 적에는 뛰놀면서 괴로움을 잊었지만, 중·고등학생 적에는 입시지옥에 시달리면서 그야말로 죽는 줄 알았다. 아이가 받는 짜증과 괴로움을 어떻게 하려고, 어버이는 아이한테 ‘김치 먹이기 억지’를 부리려 할까?


  아이한테 김치를 억지로 먹이려 하면서 ‘한국 전통 음식’이라는 따위를 들먹거리는 짓은 더 나쁘다. 전통 음식이면 다 먹어야 하나? 아니다. 먹을 수 있는 밥을 먹어야지 ‘전통 음식’이거나 ‘한국 음식’이기 때문에 먹어야 하지 않다. 추천도서나 명작도서이기에 다 읽히나? 아니다. 읽을 만하거나 읽힐 만한 책을 읽거나 읽힐 뿐이다.


  한국은 ‘김치’를 외칠 까닭도 없고, ‘김치’를 자랑할 구석도 없다. 발자국이 짧기에 자랑할 구석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밥은, 삶을 즐겁게 누리려고 먹을 뿐이지, 무엇을 대표하거나 바깥으로 뽐내거나 문화나 전통이나 역사를 만들려고 먹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 전통 음식’이라는 이름은 얼마나 우악스러운가. ‘한국 전통 음식’이 몸에 안 받는 사람을 조금이라도 생각한 적이 있는가? 서울 한복판부터 전남 고흥 시골마을까지 다 다른 사람이 사는데, 다 다른 사람이 ‘모두 똑같은 밥’을 먹어야 할 까닭이 없다. 4347.12.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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