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자는 두 사람, 함께 사는 두 사람 3
히구라시 키노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33



서로 아끼면서 사는 길

― 먹고 자는 두 사람 함께 사는 두 사람 3

 히구라시 키노코 글·그림

 최미정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2014.11.30.



  서로 아낄 적에 언제나 느긋하고 너그럽습니다. 서로 아끼는 동무나 이웃하고 잠자리에 들면 아주 포근하게 꿈나라로 갑니다. 이와 달리, 서로 툭탁거리거나 해코지를 하거나 괴롭히거나 들볶는 사람과 잠자리에 들면 몹시 거북할 뿐 아니라, 잠자리에서마저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리라 봅니다.


  평화롭게 삶을 가꾸면 늘 평화롭습니다. 평화로울 적에는 잠자리에 총이나 칼이나 몽둥이를 놓아야 하지 않습니다. 보안장치를 할 까닭도 없고, 불침번을 세울 일도 없습니다. 이와 달리, 안 평화로운 삶이 되면, 잠자리에 총이나 칼이나 몽둥이를 놓아도 두렵습니다. 잠을 제대로 들지 못합니다. 보안장치를 해도 걱정이요, 불침번을 세워도 잠을 못 이룹니다.




- ‘집에서 빈둥빈둥 술 마시는 슈이치는, 일요일의 아버지 같은 느낌이다 … 그런데, 옛날의 나는 어땠지? 옛날에 우리는?’ (11, 14쪽)

- “뭐 어때. 가끔은 택시도 타는 거지.” (21쪽)

- ‘아무 날도 아닌데 술 마시러 가거나, 가까운 거리를 택시로 가거나, 이런 건 분명히 쓸데없는 일이 아니야.’ (22쪽)



  지구별 어느 나라에서도 똑같은데, 군대는 평화를 지키지 않습니다. 군대는 언제나 평화를 무너뜨립니다. 군대는 언제나 평화를 짓밟거나 깔아뭉갭니다. 군대가 있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두 발 뻗고 잠들지 못합니다. 군대가 있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잔뜩 뿔난 모습이기 마련이요, 작은 일에도 툭탁거리면서 ‘이웃사랑’이 아닌 ‘다툼(경쟁)’만 불꽃이 튑니다.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평화가 무엇이고 전쟁은 어떠한지를 놓고 찬찬히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평화를 찾는 길과 전쟁을 몰아낼 길을 곰곰이 생각해서 이를 우리 삶으로 녹일 수 있어야 합니다.


  평화는 입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평화는 전쟁무기로 부르지 않습니다. 평화는 이론이나 지식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평화는 오직 평화로 부릅니다. 나 스스로 평화로운 마음이 되어 평화로운 넋으로 평화로운 생각을 빛낼 때에, 비로소 평화로운 삶입니다.


  전쟁이 왜 자꾸 터질까요? 전쟁무기를 만드니까 전쟁이 터집니다. 교통사고가 왜 생길까요? 자동차를 늘리기만 하고, 찻길을 넓히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줄이고 찻길도 줄이면서, 사람들이 어디에서나 느긋하게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를 즐길 수 있도록 하면 교통사고는 저절로 사라집니다.






- ‘‘지금부터’ 새롭게 시작될 우리 두 사람의 시간을 즐기자.’ (43쪽)

- ‘패셔니스타에 쇼핑을 좋아하는 리츠코도 사랑하니까, 오히려 내가 등 떠밀 때도 있잖아. 그런 면이 어쩌면 내가 ‘반했던 부분’일지 모르는데.’ (77쪽)

- ‘돈 쓰는 방법은 서로 다를지 몰라도, 가치관은 비슷하다. 그래서 분명히 10년을 사귈 수 있었나 보다.’( 72∼73쪽)



  히구라시 키노코 님이 빚은 만화책 《먹고 자는 두 사람 함께 사는 두 사람》(대원씨아이,2014) 셋째 권을 재미있게 읽습니다. 첫째 권이나 둘째 권과는 사뭇 다르게 재미있고, 첫째 권과 둘째 권에 이어 생각을 찬찬히 곰삭이는구나 싶어 새삼스레 재미있습니다.


  만화책에 붙은 이름을 보면, 처음에 ‘먹고 자는’ 두 사람이라 하지만, 뒤에는 ‘함께 사는’이라 합니다. 겉보기로는 ‘먹고 자는’ 두 사람이되, 속으로 살피면 ‘함께 사는’ 두 사람이에요.


  잘 헤아려 보셔요. 오늘날 학교를 보면, 급식실에서 단체급식을 합니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똑같은 밥을 먹’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똑같은 밥’에 ‘똑같은 교과서’에 ‘똑같은 수업’을 받을 뿐 아니라 ‘똑같은 성적’을 받도록 들볶여요. 다 다른 아이들이 함께 배우거나 함께 사랑하거나 함께 꿈을 키우는 이야기나 숨결은 하나도 없습니다.





-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너무 달라붙지도 떨어지지도 않으며 만나 온 니나를, 겨우 2∼3개월 만난 남자가 전부 빼앗아 가는 것 같아. 그리고 니나도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모른다.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섭섭하거나 추월당해 분한 기분은 아니다. 그저 나만이 느끼는 미묘한 감정.’ (104쪽)

- “어린애 같은 소리 그만하고, 미나 기분도 생각해 봐요.” “뭐?” “그 아이, 갈아입을 드레스 한참 고르더니, 결국 마지막엔, ‘아빠가 이 드레스 좋아하니까 이걸로 할게요!’ 그 아이는 당신이 기뻐하길 바라고 있어요.” (159쪽)



  만화책에 나오는 두 사람은 ‘집안 꾸미기’나 ‘밥 차려서 먹기’나 ‘옷 갖춰 입기’ 같은 데에는 그리 마음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어우르면서 누릴 삶’을 어떻게 사랑스럽게 다스리는가 하는 대목에 마음을 기울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노래할 뜻입니다. ‘함께 사’는 즐거움을 웃음꽃으로 피울 뜻입니다.




- ‘그렇구나. 합리적이든 짜여진 식순대로든, 피로연은 결혼하는 당사자만이 아니라, 그들과 연결된 모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구나.’ (165쪽)



  어버이는 아이한테 사랑을 보여주거나 가르치면 됩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지켜보고 배우면 됩니다. 가시내와 사내는 서로서로 사랑을 보여주면서 나누면 됩니다. 힘이 닿는 사람이 집일을 맡고, 힘이 모자라는 사람은 쉬면 됩니다. 서로 아끼고 보살피면서, 지친 곁님을 어루만질 수 있으면 됩니다. ‘가시내 = 집일’이 아니고, ‘사내 = 바깥일’이 아닙니다. 예부터 한겨레가 ‘가시버시’라는 낱말을 쓴 까닭을 읽어야 합니다. ‘바깥양반’이나 ‘안사람’ 같은 ‘일본말을 어설피 옮겨서 쓰는 낱말’은 하루 빨리 몰아내면서, 삶이 제자리를 찾도록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집과 마을을 함께 보살피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서로 살림꾼이요 삶지기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둥이요 노래꾼입니다. 우리는 서로 이웃이면서 동무입니다.


  함께 사는 사람은 서로 아낄 줄 아는 넋입니다. 함께 사는 사람은 서로 믿고 기대면서 따숩게 손길을 내미는 사람입니다. 만화책 《먹고 자는 두 사람 함께 사는 두 사람》 넷째 권이 언제 한국말로 나올까 손가락을 꼽으면서 기다립니다. 4347.12.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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