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째 앓으며 아이와 나눈 얘기
“벼리야, 아버지가 아파서 밥도 못 먹어. 이렇게 누워서 쉬어야 해. 그러니 너희가 아버지가 드러누운 방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시끄럽게 뛰지 말고, 전등을 들고 마당으로 가서 마당에서 뛰면서 불놀이를 해.” “아버지 어떻게 아파?” “응, 온몸이 다 아파.” “그래? 아버지가 안 아팠으면 좋겠다.” “응, 아버지도 곧 나을 테니까 괜찮아. 아버지가 쉴 수 있게 너희가 옆방에서 놀거나 하면 좋겠어.” “알았어.”
아픈 몸을 이끌고 밥을 차리려고 냄비에 불을 올릴 무렵, 곁님이 다가와서 묻는다. 아플 적에 냄새 맡기 힘들지 않느냐고 하면서, 서기도 힘들 텐데 억지로 참느냐고 묻는다. 한 마디 대꾸를 하고 싶으나, 대꾸할 힘이 없어서 미처 말을 못 한다. 다만, 냄새를 맡기 힘든지 헤아려 본다. 아니다. 그야말로 끔찍하게 아프니 냄새는커녕 맛이고 뭐고 하나도 안 들어온다. 무엇보다 너무 아픈 탓에 물 한 방울조차 몸에서 안 받는다. 등허리가 몹시 결려 쓰러질 판이지만 참말 억지로 버티면서 밥을 끓였고, 냄새도 맛도 느끼지 않았다. 간은 아예 볼 수 없으니 느낌으로 얼추 맞출 뿐이다. 찬물이 손에 닿을 적마다 온몸이 쩌릿쩌릿 울리면서 뼛속까지 모질게 시렸지만, 곁님도 아픈 사람이니 곁님더러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서 주라고 할 수 없다. 나는 앞으로 며칠 더 이 몸을 버티거나 견디면서 밥을 잘 차리면 된다.
밥을 다 먹은 아이들이 잠자리에 눕는다. 비로소 두 아이를 눕히고 자장노래를 부른다. 〈감자씨〉 노래를 부르니 큰아이가 묻는다. “아버지, 보라는 왜 〈감자씨〉 노래를 부를 적에 ‘감자씨는’이라 안 하고 ‘아저씨는’이라 하고 ‘묵은 감자’라 안 하고 ‘뿌부 감자’라 해?” “응, 이제는 그렇게 안 하는데, 보라는 아직 아기라서 혀가 짧으니까 예전에 그렇게 했어.” “아, 그렇구나.” “보라는 아직 아기라서 못 하는 것도 많으니까 벼리가 많이 도와줘야 해. 그냥 보라한테 다 줘야 하는 것도 있어.” “응. 그런데 벼리는 아기 아냐?” “응. 보라는 볼도 감처럼 탱글탱글해서 감볼이잖아. 그런데 벼리는 아기에서 벗어나서 배가 ‘슈박(수박) 배’가 아니고, 볼도 감볼이 아니야.” “아, 그렇구나.”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나누던 두 아이가 새근새근 잠들까 했더니 잠들지 않는다. 한 시간 남짓 더 깨어 책을 본다느니 뛰논다느니 한다. 허허 웃으며 그대로 둔다. 아이들이 그야말로 더 놀아서 지쳐 곯아떨어지기를 기다린다. 이제 더 두면 안 되겠구나 하고 느낄 무렵 “자, 이제 불을 끈다. 다 눕자. 쉬 할 사람은 더 쉬 하고.” 큰아이가 먼저 쉬를 하고 나서 물을 마신다. 동생이 누나를 따라 쉬를 하고 나서 물을 마신다. 자리에 눕는 모습을 보고 불을 끈다. 이불깃을 여민다. 1분 뒤 작은아이가 곯아떨어진다. 큰아이도 이내 곯아떨어진 듯하다. 십 분쯤 지나서 슬쩍 들여다보며 말을 건다. “우리 예쁜 아이들 이제 잠들었나?” 하고 물으니, 큰아이가 길게 하품을 하면서 돌아눕는다. 이 말, ‘예쁜 아이’라는 말을 한 번 더 듣고 싶어서 눈을 감고 기다렸는가 보다. 자, 자, 이제는 더 기다리지 말고 가슴에 손을 얹고 파란 거미줄을 그리면서 아름다운 꿈누리로 날아가렴. 4347.12.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