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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동시집 차령이 뽀뽀 - 국영문판 ㅣ 바우솔 동시집 1
고은 지음, 이억배 그림, 안선재(안토니 수사) 옮김 / 바우솔 / 2011년 12월
평점 :
시를 사랑하는 시 46
아이와 어른이 한몸에
― 차령이 뽀뽀
고은 글
이억배 그림
바우솔 펴냄, 2011.12.1.
아이는 날마다 자랍니다. 어른도 날마다 자랍니다.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는 어느새 기저귀를 떼면서 걷고, 어느새 밤오줌을 가릴 뿐 아니라, 어느새 콩콩콩 맑은 소리를 내면서 달립니다.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는 옹알옹알거리다가 어버이한테서 말을 물려받아 조잘조잘 노래를 합니다. 노래를 흥얼거리는 아이는 목청껏 외칠 줄 알고, 하루 내내 웃고 떠들어도 지치지 않습니다.
아이는 언제까지 자랄까요. 아이는 언제까지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거나 배울까요.
나이가 마흔이어도 늙은 어버이한테는 아이입니다. 나이가 예순이어도 늙은 어버이한테는 아이입니다. 나이가 예순이어도 늙은 어버이한테는 아이입니다. 함께 늙는 아이라 할 수 있지만, 함께 사는 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온누리를 함께 바라보고, 이웃과 동무를 함께 마주하며, 꿈과 사랑을 함께 키웁니다.
.. 제비집에 제비 새끼 다섯 마리 / 엄마가 먹이 찾아 / 나가 있을 때 / 찌찌배 찌찌배배 / 실컷 놀아요 / 나하고 찌찌배배 실컷 놀아요 / 그러다가 어느 날 후드둑 날아 / 저만치 빨랫줄에 앉자마자 / 기우뚱 기우뚱 / 나를 불러요 .. (제비 새끼)
아이는 곧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된 아이는 새롭게 아이를 낳습니다. 새롭게 태어난 아이는 곧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된 새로운 아이는 이윽고 새삼스럽게 아이를 낳습니다. 어제까지 아이였어도 오늘은 어른입니다. 오늘은 아이라 하지만 모레에는 어른입니다.
우리는 모두 아이와 어른을 한몸에 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아이 모습과 어른 모습을 한몸에 담습니다. 어느 때에는 아이스럽고 어느 날에는 어른스럽습니다. 어느 자리에서는 아이답고 어느 곳에서는 어른답습니다.
아이스러운 모습이라면 맑거나 밝은 마음결이라 할 만할까요. 어른스러운 모습이라면 믿음직하거나 씩씩한 몸가짐이라 할 만할까요. 아이다운 모습이라면 쉬지 않고 웃고 노래하면서 놀 수 있는 기운이라고 할 만할까요. 어른다운 모습이라면 튼튼하고 야무지게 일하고 살림을 가꾸는 몸차림이라고 할 만할까요.
.. 까치들도 / 여름밤 풍뎅이도 / 우리집 식구 / 겨울밤 추운 달도 / 우리집 식구 .. (우리집 식구)
고은 님이 시를 쓰고 이억배 님이 그림을 넣은 《차령이 뽀뽀》(바우솔,2011)를 읽습니다. 고은 님은 포근하게 시를 쓰고, 이억배 님은 푸근하게 그림을 그립니다. 무척 멋스러우면서 사랑스러운 동시집입니다. 오늘날 흔히 나오는 동시집을 보면 좀 우스꽝스럽다고 할 만한 그림을 담기 일쑤입니다. 또는 도시에 있는 학교나 집에서 부대끼는 모습만 그림으로 담기 마련입니다. 동시집 《차령이 뽀뽀》는 아이와 어른이 이 땅에서 함께 사는 벗님이자 이웃이요 동무라는 숨결을 잘 보여주는 그림을 담아서 고은 님 시와 곱게 어우러지는구나 싶습니다.
.. 아가 사랑이란 / 이렇게 함께 걸어가는 거란다 / 멀리 떠나가면 / 보고 싶은 것 / 그것이 사랑이란다 .. (사랑)
동시집 《차령이 뽀뽀》는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함께 사는 어버이 눈썰미로 바라보는 ‘새로운 삶과 사랑’을 들려줍니다. 어른문학만 하던 고은 님은 이녁 아이 차령이를 마주하면서 어린이문학을 새삼스레 헤아립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어느 누구도 하루아침에 어른이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하루아침에 어른문학부터 즐기지 않아요.
어릴 적부터 동시와 동화를 읽으면서 마음을 살찌우는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되면, 어른문학도 기쁘게 누립니다. 어릴 적부터 어버이한테서 사랑스럽고 꿈이 가득한 이야기밥을 받아먹고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어, 어른문학과 어른 인문책을 넓고 깊게 살핍니다.
.. 차령이는 혼자서 가수인가 봐 / 학교 숙제하면서 노래를 해요 / 노래하면서 숙제를 해요 / 그러다가 부를 노래 없으면 / 노래 지어서 / 내 마음 숲 속에 나비 한 마리 / 그렇게 노래 지어서 / 숙제 끝내고 노래를 해요 .. (차령이는 가수)
고은 님은 꼭 고은 님 자리에서 이녁 아이 차령이를 바라봅니다. 고은 님은 어머니 눈썰미로 이녁 아이를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아이와 함께 지내는 하루에 맞추어 동시를 씁니다. 아이를 바라보는 사랑과 웃음을 동시로 고이 담습니다.
고은 님네 차령이는 몇 살쯤 되었을까 궁금합니다. 고은 님네 차령이가 자라는 흐름에 맞추어 고은 님은 동시뿐 아니라 청소년시도 쓸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그리고, 지구별 모든 어린이와 푸름이를 헤아리면서 시 한 줄로 노래와 이야기밥과 웃음꽃을 일구는 길을 걸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 눈 위에 / 새 발자국 / 너 혼자구나 / 한 줄 더 기다랗게 / 만들어 줄게 .. (새 발자국)
우리 아이를 바라보면서 이웃 아이를 바라봅니다. 우리 아이 기저귀를 갈면서 이웃 아이가 자라는 결을 헤아립니다. 우리 아이가 밤오줌을 가리도록 보살피면서 이웃 아이가 씩씩하게 뛰노는 삶터를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가 날마다 뛰놀면서 노래하는 하루를 같이 누리면서, 이웃 모든 아이가 언제나 맑게 웃으면서 어깨동무할 수 있는 길을 슬기롭게 찾습니다.
차령이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눈에 찍힌 새 발자국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요. 차령이와 함께 다른 아이들도 제비집을 올려다보고, 언제나 스스로 노래를 지어서 기쁘게 흥얼거릴 수 있기를 빌어요. 차령이도 다른 아이들도 어버이한테 뽀뽀를 하고 숲짐승과 나무와 꽃을 두루 사랑하는 마음을 가꿀 수 있기를 빕니다. 4347.1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동시 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