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그리는 글쓰기



  해와 얽힌 낱말로 무엇이 있을까 하나둘 헤아립니다. 맨 먼저 ‘해’가 있고, ‘해님’이 있습니다. ‘햇볕’과 ‘햇빛’이 있으며, ‘햇살’과 ‘햇발’과 ‘햇귀’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해’를 가만히 그리는 동안 어느새 내 마음에도 해와 같은 기운이 서립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깁니다. 내가 ‘사랑’이라는 낱말을 그리면서 마음을 온통 ‘사랑’이라는 이야기로 채운다면 내 몸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내가 ‘미움’이나 ‘싸움’이나 ‘짜증’이라는 낱말을 자꾸 떠올리거나 그리면서 마음을 ‘미움·싸움·짜증’이라는 이야기로 채운다면 내 몸은 어떻게 바뀔까요. 텔레비전 연속극을 자주 본다든지, 사건과 사고가 가득한 신문을 날마다 읽는다든지, 이웃을 죽이거나 전쟁이 끝없이 되풀이되는 줄거리로 채운 문학을 거듭 읽으면, 내 마음과 넋과 생각과 몸은 어떻게 될까요.


  그저 조용히 해를 그립니다. 해를 그리듯이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마음속에 해를 담으면서 아이 얼굴을 부비고, 내 얼굴을 부빕니다. 예부터 한겨레가 시골에서 살면서 흙을 가꾸는 동안 쓴 낱말에는 미움이나 싸움이나 짜증 같은 느낌을 담아내는 낱말은 아주 드물거나 거의 없거나 아예 없기까지 햇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미움이나 싸움이나 짜증 같은 느낌을 가리키는 낱말이 부쩍 늘 뿐 아니라, 외국말로도 아주 많이 받아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문학을 즐기고, 어떤 책을 읽으며, 어떤 영화를 이야기하고, 어떤 연속극이나 텔레비전이나 스포츠로 마음과 몸과 넋과 생각을 가득 채울까요? 오늘날 글을 쓰는 사람들은 어떤 낱말로 글을 지어서 이웃한테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 주려는 마음일까요? 4347.1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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