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민 구보 씨의 하루 - 일상용품의 비밀스러운 삶
존 라이언.앨런 테인 더닝 지음, 고문영 옮김 / 그물코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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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68



신문·방송 끊어야 나라를 바꾼다

― 녹색 시민 구보 씨의 하루

 존 라이언·앨런 테인 더닝 글

 고문영 옮김

 그물코 펴냄, 2002.3.5



  이야기책 《녹색 시민 구보 씨의 하루》(그물코,2002)는 지구별 사람들이 하루 동안 무슨 일을 하면서 지내는가를 돌아보면서 ‘쓰레기’를 건드립니다. 지구별 사람들이 지구별을 아끼거나 사랑하는지, 아니면 지구별 사람들 스스로 지구별을 망가뜨리거나 어지럽히는지 살핍니다.


  《녹색 시민 구보 씨의 하루》는 커피·신문·티셔츠·신발·자전거와 자동차·컴퓨터·햄버거·감자 튀김·콜라 이렇게 아홉 가지와 얽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늘날 어느 나라에서나 흔히 마주할 만하다 싶은 아홉 가지가 지구별을 어떻게 흔드는지 차근차근 짚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라고 도시에서 일하거나 노는 여느 사람들이 하루에 쓴다고 하는 ‘지구 자원 54킬로그램’과 얽힌 실타래를 천천히 풀어서 보여줍니다. 한 사람이 지구 자원을 날마다 54킬로그램씩 쓴다면, 지구별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54킬로그램에 이르는 지구 자원은 날마다 새로운 쓰레기로 거듭날까요, 아니면 이러한 숫자를 깨거나 바꿀 수 있을까요.



.. 송아지가 먹은 500그램의 사료는 100그램 정도의 살코기 조직으로 변한다 … 미국의 가축들은 미국 내 옥수수 생산량의 60퍼센트를 소비하며, 그것은 전세계 옥수수 생산량의 25퍼센트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다 … 1999년에 한국에서는 부족해서 수입된 물량을 포함해서 옥수수는 75퍼센트를, 콩은 70퍼센트를, 밀은 50퍼센트를 사료용으로 소비했다 … 햄버거용 고기 100 그램을 생산하려면 2천 리터 이상의 물이 필요하다 … 또한 100그램 정도의 고기가 든 햄버거를 먹었기 때문에 구보 씨 역시 그 무게의 다섯 배에 달하는 표토의 상실에 기여하게 되었다 ..  (95∼99쪽)



  예부터 어느 나라나 겨레에서든 ‘쓰레기’란 없습니다. 쓰레기란 예부터 있을 수 없습니다. 쓰고 남는다든지, 쓰다가 더 못 쓸 만한 마병이 된다면, 이러한 것은 모두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를테면 불쏘시개나 거름이 됩니다.


  도시가 생기면서 쓰레기가 함께 생깁니다. 도시가 커지면서 쓰레기가 함께 늘어납니다. 도시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면서 쓰레기도 함께 북적거립니다. 더욱이,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넘치고 넘치다 보니 집을 짓거나 길을 내거나 건물을 올릴 터가 모자라, 넘치는 쓰레기를 둘 길이 없습니다. 도시에서 생기는 쓰레기를 도시에서 건사하지 못합니다. 도시는 시골에서 밥과 옷과 집을 얻어야 하는데, 시골에서 얻은 밥과 옷과 집을 쓰레기로 바꾸어 시골로 보냅니다.


  도시에서는 스스로 전기를 만들지 못합니다. 시골에 세운 커다란 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어, 다른 시골에 송전탑을 엄청나게 때려박아서 도시로 전기를 끌어들입니다. 도시에서는 물건을 손수 만들지 못합니다. 시골에 지은 수많은 공장에서 온갖 물건을 만들어, 다른 시골에 깐 고속도로를 거쳐 도시로 온갖 물건을 실어 나릅니다.


  도시가 있으니 쓰레기가 있습니다. 도시 때문에 쓰레기가 끊이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도시사람이 늘고 시골사람이 줄면서, 시골에서는 농약과 비닐과 비료 따위를 마구마구 퍼붓습니다. 쓰레기나라 도시는 쓰레기나라 시골을 만들기까지 합니다.



.. 이웃들과 신문을 같이 구독하라 … 직장 또는 모임에서 동료들과 공동으로 신문을 구독해서 돌려읽어라 … 신문을 도서관에서 읽어라 … 신문을 매일 읽지 않는다면 정기 구독하지 말아라 … 소비자로서 신문사들이 재생 용지를 사용하도록 압력을 넣어라 … 신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광고와 의미 없는 이야기들을 읽는 대신 주변 사람들과 세상에 더 관심을 기울여라 ..  (35쪽)



  도시에서는 ‘음식물쓰레기’입니다. 살림집이나 밥집에서 밥을 지으면서 나오는 찌꺼기를 둘 흙땅이 없기 때문에, 도시에서는 모두 ‘음식물쓰레기’입니다. 도시에서는 흙땅도 없지만, 소나 돼지나 개를 흙마당이나 흙땅에서 키우지 못하니, 밥찌꺼기라든지 남은 밥을 집짐승한테 주지 못합니다. 도시에서 개를 키우는 이들 가운데 개한테 ‘남은 밥’을 주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게다가, 도시에서 키우는 개가 누는 똥오줌은 어떻게 하는가요. 사람이 누는 똥오줌조차 거름으로 삼지 못하는 얼거리이니, 도시는 온통 쓰레기밭입니다.


  그러고 보면, 도시에서는 신문과 방송도 쓰레기입니다. 날마다 새로 찍는다는 종이신문은 어떤 이야기를 담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날마다 수십만이나 수백만 부씩 찍는다는 신문은 ‘사람을 살리거나 사랑하거나 아끼는 이야기’를 다루는가요? 아니면 지저분한 정치다툼 이야기를 다루는가요? 더욱이, 신문은 ‘기사’보다 ‘광고’가 훨씬 많습니다. 광고가 훨씬 많은 신문에 나오는 광고는 ‘물건을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써서 더 많이 쓰레기를 만들라’는 길만 밝힙니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으로 흐르는 방송은 신문과 엇비슷합니다. 방송도 광고투성이입니다. 방송에 나오는 광고는 신문 못지않게 ‘소비 사회’를 부추깁니다. 더 쓰고 더 사고 더 버리고 다시 쓰고 다시 버리라는 말을 끝없이 외치는 방송 광고입니다. 도시에 살며 신문과 방송을 가까이하면 가까이할수록, 쓰레기를 더 만들고 쓰레기를 더 버리면서 아름다운 삶과는 등지고 맙니다.


  가만히 보면, 시골사람은 신문을 거의 안 읽습니다. 아니, 시골에서 신문을 받아서 읽는 여느 살림집은 아예 없다고 할 만합니다. 아니, 시골에 있는 작은 마을까지 신문을 날라다 주지도 않아요. 그도 그럴 까닭이, 신문을 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도시 이야기’뿐입니다. 도시에 있는 정치·경제·사회·교육·문화·예술·스포츠 따위를 다루는 신문입니다. 시골에 있는 숲이나 들이나 바다나 멧골이나 나무나 풀이나 꽃이나 흙이나 햇볕이나 빗물을 다루는 신문은 없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시골 이야기는 굳이 신문으로 안 다룰 만합니다. 시골에서는 눈을 들어 둘레를 바라보면 모두 ‘아름다운 숨결’이니까요.


  요새는 시골 할매와 할배도 텔레비전 연속극이나 새소식을 보지만, 이 두 가지 빼고 시골사람이 볼 만한 방송도 없는데다가, 한창 바쁜 일철에는 아무것도 안 봅니다. 신문도 방송도 오직 도시사람 입맛에 맞추어 도시 물질문명을 키워서 쓰레기를 신나게 만드는 데에 얽매입니다.



.. 건물이 아니라 당신의 몸을 따뜻하게(또는 차게) 만드는 데 애써라 … 좋은 동료는 친한 사람들이 대형 자동차를 몰도록 권하지 않는다 … 구보 씨는 세계를 자신의 힘만으로 바꿀 수 없지만, 오늘 그가 자전거를 타고 사무실에 출근한 것처럼 구보 씨가 하는 자그마한 일들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  (46, 77, 124쪽)



  신문과 방송을 끊어야 나라가 삽니다. 쓰레기 광고를 잔뜩 싣거나 다루는 신문과 방송을 없애야 나라가 삽니다.


  신문을 덮어야 이웃과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방송을 꺼야 동무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손수 짓고 길어올린 이야기를 나눌 노릇입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남들이 떠드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삶터에서 손수 가꾸고 지은 꿈과 사랑을 주고받을 노릇입니다.



.. 문제는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물건을 소비할 때 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이다. 먼저 물건들의 이면에 깔려 있는 삶의 과정들을 상상해 보라. 이것만으로도 여러분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적게 소비하게 될 것이다 ..  (129쪽)



  자동차를 타는 일이 나쁘지 않습니다. 자동차를 몰아야 할 적에 즐겁게 몰면 됩니다. 쳇바퀴를 도는 톱니바퀴가 되듯이 자동차를 몰면, 자동차로서도 안 좋고 나한테도 안 좋습니다.


  콜라나 감자튀김이 좋거나 나쁠 구석은 없습니다. 먹고 싶을 적에 즐겁게 먹으면 됩니다. 이러면서, 마실거리나 먹을거리를 손수 이 땅에서 씨앗을 심어 기른 뒤 부엌에서 손수 지지고 볶고 무치고 삶아서 오순도순 한솥밥을 누리면 됩니다.


  도시사람도 텃밭을 일구어야 합니다. 도시사람도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도시사람도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아파트로 가는 삶이 아니라, 도시에서도 ‘마당과 텃밭 있는 집’을 짓거나 얻어서 살겠다는 생각을 키워야 합니다. 내 집을 내가 손수 짓겠다는 꿈을 키워야 합니다. 내 삶을 내가 가꾸겠다는 사랑을 북돋아야 합니다.


  밭 한 뙈기를 일구지 않으면서 유기농이나 무농약이나 생채식을 누리겠다고 말하면, 그예 쓰레기만 늘어납니다. 나무 한 그루를 심지 않으면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면, 그저 쓰레기만 만듭니다.


  광고를 안 싣는 신문이나 방송이라면 볼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정치나 경제나 사회나 교육이나 문화나 예술이나 스포츠 따위를 하나도 안 다루는 신문이나 방송이라면 즐길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것을 안 다루면 무엇을 다루어야 할까요? 아주 쉽지요. 삶을 다루고, 사랑을 다루며, 꿈을 다루어야 합니다. 텃밭을 다루고, 나무를 다루며, 마당을 다루어야 합니다. 이웃과 동무를 다루고, 마을을 다루며, 숲과 골짜기와 바다를 다루어야 합니다. 목숨을 다루고, 풀벌레와 새를 다루며, 하늘과 구름과 땅과 해를 다루어야 합니다. 넋과 얼과 마음과 생각을 다루어야 합니다. 다루어야 할 이야기는 다루지 않는 오늘날 지구별 신문과 방송이니, 이런 신문과 방송을 하루 빨리 끊고 없애며 걷어치워야, 보금자리도 마을도 나라도 지구별도 제대로 살아날 수 있습니다. 4337.3.10.4347.11.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환경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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