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892) 그녀 42 : 그녀 → 할머니


세월의 풍파가 그녀의 이마에 깊은 골이 패인 주름을 가져다주었어도 그녀의 눈에서 총기를 빼앗진 못했다

《조선희-조선희의 힐링 포토》(황금가지,2005) 104쪽


 그녀의 이마에

→ 할머니 이마에

 그녀의 눈에서

→ 할머니 눈에서


  할머니는 할머니입니다. 할머니를 ‘할머니’ 아닌 ‘그녀’로 적는다면 글멋이나 글맛이 달라진달 수 있을 테지만, 할머니는 언제나 할머니입니다. 보기글에서는 할머니를 이야기하는데, 글쓴이는 자꾸 할머니를 가리켜 ‘그녀’라고 말합니다.


  서양사람이라면 할머니이든 언니이든 누이이든 ‘she’로 적을 테지만, 한국사람이라면 할머니한테는 ‘할머니’라 하고 언니한테는 ‘언니’라 하며 누이한테는 ‘누이’라 해요. 살갑게 부르든 그냥 그렇게 부르든, 서로를 꾸밈없이 바라보며 마주하는 이름이 있어요. 4346.6.1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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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나날이 할머니 이마에 깊은 골이 패인 주름을 가져다주었어도 할머니 눈에서 맑은 빛을 빼앗진 못했다


“세월(歲月)의 풍파(風波)가”에서 ‘풍파’는 “세상살이의 어려움이나 고통”을 뜻해요. ‘세월’은 “지나온 나날”을 뜻하기도 하지만 “살아가는 세상”을 뜻하기도 합니다. 곧, 이 글월은 겹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세월이”나 “풍파가”라고만 적어야 올바르다 할 테고, “기나긴 세월이”나 “거친 풍파가”처럼 적을 수 있으며, “기나긴 삶이”나 “거친 삶이”나 “힘든 나날이”로 손볼 수 있어요. ‘총기(聰氣)’는 “총명(聰明)한 기운”을 뜻한다 합니다. ‘총명’은 “(1) 보거나 들은 것을 오래 기억하는 힘이 있음 (2) 썩 영리하고 재주가 있음”을 뜻한다 해요. ‘영리(怜悧)’는 “눈치가 빠르고 똑똑하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이 글월에서는 ‘똑똑함’이나 ‘해맑음’이나 ‘맑은 빛’으로 손질해 줍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887) 그녀 41


‘요네하라 마리 컬렉션’에 한 권을 더 추가하게 됐다. ‘프라하 생활’이나 ‘통역사 생활’에 더하여 이번에는 이 재치 넘치고 다정다감한 문필가가 자신의 ‘식생활’을 다루었다 … 하지만 그녀가 튼튼한 위를 지닌 ‘냠냠공주’이기도 했다는 건 이번에 알았다

《요네하라 마리/이현진 옮김-미식견문록》(마음산책,2009) 책 뒷겉장, 추천글


 그녀가 튼튼한 위를 지닌 냠냠공주이기도

→ 요네하라 마리가 위가 튼튼한 냠냠공주이기도

→ 이이가 위가 튼튼한 냠냠공주이기도

→ 이녁이 위가 튼튼한 냠냠공주이기도

→ 그대가 위가 튼튼한 냠냠공주이기도

 …



  ‘요네하라 마리’라고 하는 ‘문필가’는 온갖 밥을 알뜰히 즐긴다고 합니다. 이 보기글을 쓰신 분은 ‘요네하라 마리’라는 사람을 놓고 ‘문필가’라고 일컫다가 ‘그녀’라고 다시 일컫습니다. 아무래도 같은 말을 되풀이하지 않고자 여러 가지로 썼구나 싶은데, 처음부터 끝까지 ‘요네하라 마리’로 적는다고 해서 잘못될 일이란 없습니다. 따로 ‘문필가(文筆家)’라고 밝히지 않더라도 이 보기글에서 ‘요네하라 마리라는 사람은 글을 써서 책을 내는 사람’인 줄 알 수 있습니다. 아니, 이 보기글이 적힌 책을 읽는 사람은 ‘요네하라 마리 = 글 쓰는 사람 = 책을 쓴 사람’인 줄 알아요.


  그런데 ‘문필가’란 무엇일까요. 아니, ‘문필가’라고 하는 이름이란 무엇일까요.


  한자말 ‘필자(筆者)’는 한국사람이 쓸 만한 낱말이 아니기에 ‘글쓴이’나 ‘지은이’로 고쳐써야 한다고들 이야기합니다. ‘문필가’라는 한자말에도 이와 똑같습니다. 한국사람이 쓸 낱말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글(文)을 쓰는(筆) 사람(家)”인걸요.


  때와 곳과 흐름을 살펴서 ‘글쟁이’라 가리켜도 되고, ‘글꾼’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잘 어울립니다. 사진을 찍으면 사진쟁이요, 그림을 그려 그림쟁이가 되고, 일을 하기에 일꾼이며, 살림을 하기에 살림꾼입니다. 한국사람은 한국말로 ‘-쟁이’와 ‘-꾼’을 붙여서 저마다 어떤 일을 하는지 나타냅니다. ‘-쟁이’와 ‘-꾼’은 사람을 낮잡거나 깎아내리는 말투가 아닙니다. 서로 꾸밈없이 마주하거나 바라보면서 쓰는 한국말인 ‘-쟁이’이며 ‘-꾼’입니다.


  이웃을 아끼고 동무를 사랑하는 말을 즐겁고 아름답게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겉치레 말이 아닌 속차림 말이 되도록 마음을 쏟기를 바랍니다. 겉치레 삶이 아닌 속차림 삶이 되도록 마음을 기울이기를 바랍니다. 4343.6.15.불/4347.11.2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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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 책’에 한 권을 더 넣는다. ‘프라하 이야기’나 ‘통역사 이야기’에 더하여 이번에는 이 솜씨 좋고 따스한 글쓴이가 ‘밥 이야기’를 다루었다 … 그러나 요네하라 마리가 위가 튼튼한 ‘냠냠공주’이기도 한 줄 이번에 알았다


이 자리에 쓰인 ‘컬렉션(collection)’은 ‘목록(目錄)’으로 고쳐써야 올바릅니다. 그런데, “요네하라 마리 목록”이란 바로 “요네하라 마리 책”이거나 “요네하라 마리 책들”이에요. 말 그대로 ‘책’이나 ‘책들’로 적으면 됩니다. ‘추가(追加)하게’는 ‘넣게’나 ‘얹게’나 ‘들이게’나 ‘들여놓게’나 ‘꽂게’나 ‘보태게’로 손보고, “재치(才致) 넘치고”는 “솜씨 좋고”나 “재주 넘치고”로 손봅니다. ‘생활(生活)’은 ‘삶’으로 손볼 낱말인데, 이 자리에서는 ‘이야기’로 손보아도 어울립니다. ‘다정다감(多情多感)한’은 ‘따스한’이나 ‘살가운’이나 ‘따스하고 푸진’이나 ‘따스하며 촉촉한’으로 손질하고, ‘문필가(文筆家)’는 ‘글쓴이’나 ‘글쟁이’로 손질하며, “자신(自身)의 식생활(食生活)을”은 “무엇을 먹으며 살아가는지를”이나 “어떤 먹을거리를 즐기며 사는지를”이나 “어떤 밥거리를 좋아하는지를”로 손질합니다. 글흐름을 살피면 ‘식생활’은 ‘밥 이야기’로 손질해도 잘 어울립니다. ‘하지만’은 ‘그렇지만’이나 ‘그러나’로 고치고, “튼튼한 위를 지닌”은 “위가 튼튼한”이나 “밥통이 튼튼한”으로 고쳐 봅니다. “-이기도 했다는 건”은 “-이기도 했음은”으로 다듬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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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953) 그녀 47 : 그녀 → 동생


언니이자 엄마 같은 내 동생. 좋은 일을 해도 남들 앞에 내세우지 않고,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 늘 주위 사람과 세상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그녀. 그녀를 들여다보는 일만으르도

《신현림-서른, 나는 나에게로 돌아간다》(예담,2013) 131쪽


 세상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그녀

→ 온누리 아픔을 어루만지는 동생

→ 온누리 아픔을 어루만지는 아이

 그녀를 들여다보는

→ 동생을 들여다보는

→ 내 동생을 들여다보는

→ 우리 동생을 들여다보는

→ 이 아이를 들여다보는

 …



  이 글에서 ‘그녀’로 가리키는 사람은 “내 동생”입니다. 글쓴이는 첫머리에 “내 동생”이라 적은 뒤, 잇달아 ‘그녀’를 씁니다. 굳이 이렇게 해야 했을까 싶습니다. “내 동생”이라고 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내 동생”이니까요.


  뒤쪽에서는 첫머리와 달리 적고 싶다면 “동생”이라고만 하거나 “우리 동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나 “이 아이”나 “그 아이”라 할 수 있어요. 또는 “사람”이나 “숨결”이나 “넋” 같은 낱말을 쓸 만합니다. 4347.11.2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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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이자 엄마 같은 내 동생. 좋은 일을 해도 남들 앞에 내세우지 않고,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 늘 이웃과 온누리 아픔을 어루만지는 내 동생. 내 동생을 들여다보는 일만으로도


“주위(周圍) 사람”은 “둘레 사람”이나 “이웃”으로 손보고, “세상(世上)의 아픔”은 “온누리 아픔”으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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