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문화재단'에서 두 달에 한 차례 펴내는 이야기책에 싣는 글입니다.

말과 넋과 삶을 모두 아우르면서 사랑하는 길을

우리 모두 슬기롭게 헤아리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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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 37. 어른이 쓰는 말 한 마디

― 아이들은 모든 말을 물려받는다



  어느 그림책을 읽다가 “오렌지 나무 가지 위에는 큰부리새가 앉아 있었지요”, “사과나무 아래로 소풍 가서 점심을 먹었어요”, “난로 위에 냄비를 올려놓고”, “야채를 썰어 냄비 속에 넣고”, “선실 안으로 서둘러 들어갔고” 같은 글월을 보았습니다. 그림책에 적힌 글월이기 때문에, 여느 어른이라면 이 글월을 그대로 아이한테 읽어 줄 테고, 글을 제법 읽는 아이라면 이 글월을 고스란히 읽으면서 이러한 말투를 모두 받아들이리라 느낍니다.


  요새는 이런 글월이 올바른지 안 올바른지 짚거나 알려주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림책을 펴낸 출판사에서도 이런 대목을 손질하거나 다듬지 않기 일쑤입니다. 출판사에서는 띄어쓰기와 맞춤법은 살피지만, ‘올바르게 쓰는 한국말’인지 아닌지까지 다루지 못하곤 합니다.


  어른들이 읽는 신문이나 잡지도 이와 비슷합니다. 신문사나 잡지사에는 교열부가 있는데, 교열부에서는 띄어쓰기와 맞춤법을 살필 뿐, ‘올바르거나 알맞게 쓰는 한국말’까지 건드리지는 못하곤 해요.


  어른들이 쓰는 모든 말을 아이들이 물려받습니다. 어른들이 거칠게 말하면 아이들도 거친 말씨를 물려받습니다. 어른들이 부드럽게 말하면 아이들도 부드러운 말씨를 물려받아요. 어른들이 마구잡이로 말하면 아이들도 마구잡이 말버릇을 물려받고, 어른들이 상냥하게 말하면 아이들도 상냥한 말버릇을 물려받아요.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얄궂은 말씨를 어른들이 털어내지 않으면, 아이들도 이런 말씨를 똑같이 씁니다. 어렵거나 딱딱한 말씨로 어른들이 늘 이야기하면, 아이들도 그만 어렵거나 딱딱한 말씨에 길듭니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교과서로 배우면서 교과서 말투에 젖어들기도 합니다. 퍽 많은 어른들은 교과서에 어떤 줄거리를 담느냐 하는 대목을 따지곤 하는데, 교과서 말투와 낱말이 ‘아이가 배울 만한 말투와 낱말’인지 아닌지 하는 대목은 안 따지거나 못 따집니다.


  앞서 든 보기글에서는 ‘위’와 ‘아래’와 ‘속’과 ‘안’을 잘못 썼습니다. 이 글월을 바로잡겠습니다. “오렌지나무에는 큰부리새가 앉았지요/오렌지나무 가지에는 큰부리새가 앉았지요”, “사과나무 그늘로 나들이 가서 도시락을 먹었어요”, “난로에 냄비를 올려놓고”, “푸성귀를 썰어 냄비에 넣고”, “선실로 서둘러 들어갔고”


  새는 “나뭇가지 위”에 앉지 않습니다. 냄비는 “난로 위”에 올려놓지 않습니다. 한국말에서 ‘위’를 쓰면, 나뭇가지 위나 난로 위는 ‘하늘’입니다. 잘 생각해 보셔요. “새가 나무 꼭대기에 앉았어요”나 “새가 우듬지에 앉았어요”나 “새가 지붕에 앉았어요”처럼 쓸 뿐입니다. “지붕 위”라든지 “우듬지 위”는 모두 하늘입니다. 물건을 올려놓을 적에는 “책상에 올려놓”습니다. “책상 위”에 놓지 않아요. 아니, 놓을 수 없습니다. “사과나무 아래”라고 한다면, 나무뿌리가 있는 땅속을 가리키는 셈입니다. 나들이를 가서 도시락을 먹으려 한다면, 나무가 드리우는 그늘에 앉겠지요. 그러니 “사과나무 그늘”로 고쳐서 써야 옳아요. 다만, “사과나무 밑”처럼 쓸 수는 있습니다. ‘아래’와 ‘밑’은 쓰임새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말하지요? “등잔 아래가 어둡다”고는 말하지 못합니다. ‘아래’는 ‘위’와 맞물리면서 높이를 가리키는 자리에만 씁니다. ‘밑’은 바닥과 가까운 어느 자리를 가리키면서 쓰기에 “사과나무 그늘”이나 “사과나무 밑”이라고만 쓸 수 있습니다.


  냄비에 무엇을 넣는다는 대목과 비슷하게, “가방에 책을 넣는다”라든지 “주머니에 손을 넣다”라든지 “지갑에 돈을 넣다”라든지 “저금통에 돈을 넣는다”처럼 씁니다. 이런 글월에는 ‘안’이나 ‘속’을 쓰지 않아요. 한자말로는 ‘수중(手中)’을 쓰는데, 한국말로는 “손 안”처럼 쓰지 않습니다. “수중에 돈이 얼마 있니?”처럼 묻겠지만 “손 안에 돈이 얼마 있니?”가 아니라 “손(주머니)에 돈이 얼마 있니?”처럼 물어야 올바르게 쓰는 한국말입니다.


  “선실로 들어갔다”와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는 어떠할까요? “자, 이제 집으로 들어가자”라든지 “방에 가서 자야지”라든지 “학교에 가요”라든지 “교실로 들어가자”처럼 씁니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나 “방 안에서 자야지”나 “학교 안에 가요”나 “교실 속으로 들어가자”처럼 쓸 수 없습니다. 영어에서는 ‘in’이 있고 한자말에서는 ‘中’이 있는데, 한국말에서는 ‘속/안’을 아무 데나 함부로 안 씁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말사전을 보면, “지갑 안”이나 “극장 안”이나 “공원 안” 같은 보기글을 함부로 실어요. 이런 말은 한국말이 아닌데 말이지요.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다”이지, “극장 안에 가서 영화를 보다”가 아닙니다. “공원에서 담배 피지 마셔요”이지 “공원 안에서 담배 피지 마셔요”가 아닙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시인 서정홍 님은 《닳지 않는 손》(우리교육,2008)이라는 동시집에 〈우리 말 1〉이라는 글을 실었습니다. “사고 다발 지역이 무슨 뜻인지 / 아버지한테 물어보고 알았지만 / 사고 많이 나는 곳은 /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 물어보지 않고도 / 알 수 있는 쉬운 우리 말, / 나는 우리 말이 좋다.”


  우리가 쓰는 말 한 마디에는 우리 삶이 깃듭니다. 아이들이 물려받는 말 한 마디에는 어른들이 지은 삶이 고스란히 깃듭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지난날에는 한국말사전이나 여러 가지 책이 없었어도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말을 슬기롭게 물려주었습니다. 오늘날에는 한국말사전도 여럿 있고, 아이들은 학교를 오랫동안 다니는데, 정작 한국말을 제대로 알거나 살피거나 다루거나 쓰는 어른이 매우 드뭅니다. 지난날에는 ‘위·아래·속·안’을 잘못 쓰는 어른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나는 이러한 말을 책이 아닌 내 둘레 어른한테서 배웠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어떤 말을 물려줄 만할까요? 우리 어른들은 날마다 어떤 말로 우리 삶을 나타내거나 나눌 때에 아름다울까요? 4347.9.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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