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1021) 많다 → 잦다


그 뒤로 늘 링거액을 맞으면서 휠체어에 앉아서 피곤에 지친 모습으로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일이 많았다 … 다섯 명의 연주는 맞추어졌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금세 음과 박자를 놓쳐 둔탁한 소리를 내는 일이 많았다

《후쿠다 다카히로/이경옥 옮김-이 멋진 세상에 태어나》(다림,2008) 83, 95쪽


 눈을 감고 있는 일이 많았다

→ 눈을 감는 일이 잦았다

→ 눈을 으레 감았다

 소리를 내는 일이 많았다

→ 소리를 내는 일이 잦았다

→ 소리를 자주 냈다

→ 소리를 자꾸 냈다

→ 소리를 자꾸 내고는 했다

 …



  교통사고가 자주 나는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리에 으레 “사고 많은 곳”이라는 푯말이 섭니다. 왜 이렇게 잘못 쓸까요? 게다가 아직도 이런 잘못된 말투를 뿌리뽑지 못합니다. 요즈음은 ‘많은’이 아니라 ‘잦은’으로 올바로 쓰는 사람이 부쩍 늘었으나, 아직까지 ‘많은’으로 잘못 쓰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사고다발지역

 다발(多發) : 많이 발생함

   - 사고 다발 지역


  한국말사전에서 한자말 ‘다발’을 찾아보면, “많이 발생함”으로 풀이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사전부터 낱말풀이를 엉터리로 했기 때문에 공공기관에서 푯말을 세울 적에 엉터리로 세우고 만 셈입니다.


  지난날에는 일본 한자말로 ‘사고다발지역’이라고 적은 푯말을 세웠습니다. 한자로 ‘事故多發地域’으로 적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푯말을 한자로 적어서 세우면 얼마나 잘 알아볼 만할까요? 못 알아보는 사람이 더 많을 테지요. 그래서, ‘事故多發地域’을 한글로 ‘사고다발지역’으로 바꾸었는데, 이렇게 바꾸었어도 못 알아보는 사람이 아주 많았습니다. 이리하여 공공기관에서는 이 푯말을 다시 ‘사고 많은 지역’이나 ‘사고 많은 곳’으로 고쳤어요. 왜냐하면, 한국말사전에서 ‘다발’이라는 한자말을 “많이 발생함”으로 풀이했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부터 스며들어 퍼진 일본 한자말을 털어내려고 애쓴 자국은 반갑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 한자말을 한국말사전에서 슬기롭게 고치거나 바로잡거나 가다듬지 못했습니다. 사고가 난 횟수를 세면서 ‘많다·적다’를 쓸 수 있습니다만, 푯말은 ‘사고가 난 횟수가 많은 곳’에 세우지 않아요. 사고가 난 횟수가 많고 적고를 떠나서 ‘사고가 잇달아 자주 있는 곳’에 푯말을 세웁니다. 이리하여, 공공기관에서 세울 푯말은 ‘사고 잦은 곳’으로 적어야 올바릅니다. “사고가 자주 있는 곳”이나 “사고가 자꾸 터지는 곳”을 가리키려는 푯말이기 때문입니다.


 사고 잦은 곳

 사고 자주 나는 곳

 사고 자꾸 나는 곳

 사고 잇달아 나는 곳


  보기글은 “눈을 감는 일이 많다”와 “소리를 내는 일이 많다”로 적습니다. ‘잦다’로 적거나 ‘자주’나 ‘자꾸’를 넣어야 할 자리에 ‘많다’를 씁니다. 보기글이 실린 책은 일본 청소년문학입니다. 일본말을 한국말로 옮기면서 이처럼 잘못 적습니다. 일본말사전 말풀이에서도 잘못 적기 때문에 이렇게 잘못 옮길 수 있고, 일본사람이 쓰는 일본 한자말을 한국말로 어설피 옮긴 탓에 이처럼 잘못 적을 수 있습니다. 4347.11.13.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 뒤로 늘 링거액을 맞으면서 휠체어에 앉아서 고단한 모습으로 눈을 지그시 감으시고는 했다 … 다섯 사람 연주는 맞추었지만 조금만 마음을 놓으면 금세 흐름과 가락을 놓쳐 거친 소리를 자꾸 냈다


한자말 ‘피곤(疲困)’은 “몸이나 마음이 지치어 고달픔”을 뜻한다고 합니다. 보기글에 나오는 “피곤에 지친”은 겹말입니다. “고단한 모습으로”나 “지친 모습으로”로 손질합니다. “감고 있는”은 “감는”으로 손보고, “다섯 명(名)의 연주”는 “다섯 사람 연주”로 손보며, ‘맞추어졌지만’은 ‘맞추었지만’으로 손봅니다. ‘방심(放心)하면’은 ‘마음을 놓으면’으로 다듬고, “음(音)과 박자(拍子)”는 “소리와 가락”이나 “흐름과 가락”으로 다듬으며, ‘둔탁(鈍濁)한’은 ‘거친’이나 ‘투박한’으로 다듬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