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825) 험하다險 1


내 딸이 이렇게 험하게 말했으면 아빠로서 당장 가만 두고 보지 않았을 거야

《이어달리기》(길찾기,2006) 18쪽


 이렇게 험하게 말했으면

→ 이렇게 막되게 말했으면

→ 이렇게 함부로 말했으면

→ 이렇게 마구 말했으면

→ 이렇게 거칠게 말했으면

 …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險하다’는 모두 일곱 가지 뜻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모로 두루 쓰는 낱말이라 여길 수 있지만, 여러모로 쓰는 한국말을 짓누르거나 밀어내면서 마구 쓰는 낱말이라 여길 수 있습니다.


 험한 골짜기 → 가파른 골짜기 . 거친 골짜기

 험한 지역 → 가파른 곳 . 거친 곳

 험한 얼굴 → 못난 얼굴 . 궂은 얼굴 . 거친 얼굴

 손이 험하다 → 손이 거칠다 . 손이 투박하다


  길이 거칠기에 ‘거칠다’고 말합니다. 길이 가파르기에 ‘가파르다’고 말합니다. 길이 비탈이 지면 ‘비탈지다’라 말합니다. 있는 그대로 말합니다. 얼굴도 손도 우리가 바라보거나 느끼는 대로 말합니다.


 날씨가 험하다 → 날씨가 궂다 . 날씨가 나쁘다

 분위기가 험하여 → 분위기가 안 좋아 . 분위기가 차가워

 말투가 험하다 → 말투가 거칠다 . 말투가 막되다

 차를 험하게 몰다 → 차를 마구 몰다 . 차를 거칠게 몰다


  날씨를 말하건, 흐름을 말하건, 말투를 말하건 모두 같습니다. 느낌을 고스란히 살려서 말하면 됩니다. 어떠한 모습인지 찬찬히 살펴서 말하면 됩니다.


  분위기는 안 좋을 수 있고, 나쁠 수 있으며, 차갑거나 썰렁할 수 있습니다. 말투는 거칠 수 있고, 막될 수 있습니다.


  자동차를 거칠게 몰거나, 함부로 몰거나, 마구 모는 사람이 있어요. 아무렇게나 몬다든지 이리저리 몬다고 할 만합니다. 엉터리로 몬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험한 음식 → 너절한 음식 . 후줄그레한 음식

 험한 차림새 → 후줄그레한 차림새 . 너절한 차림새

 험한 농사일 → 고된 농사일 . 벅찬 농사일 . 힘든 농사일

 험한 일 → 거친 일 . 힘겨운 일

 험한 꼴 → 끔찍한 꼴 . 모진 꼴


  외마디 한자말 ‘험하다’를 굳이 쓰고 싶다면 쓸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한자말을 자꾸 쓰기 때문에, 때와 곳에 맞게 골고루 쓰던 한국말이 차츰 밀려나거나 잊힙니다.


  ‘험하다’ 같은 낱말을 쓴다고 해서, 더 많은 말을 더 널리 쓴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바깥말을 들여오기 때문에 더 많은 말이 잊히거나 사라집니다. 이런 바깥말 때문에 한국말은 설 자리를 빼앗길 뿐 아니라, 골고루 쓰던 온갖 말이 제자리를 잃고 흔들립니다. 4340.2.13.불/4347.11.1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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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이 이렇게 막되게 말했으면 아버지로서 그 자리에서 가만 두고 보지 않아


‘당장(當場)’은 ‘그 자리에서’나 ‘바로’로 다듬고, “두고 보지 않았을 거야”는 “두고 보지 않아”나 “두고 보지 않았어”로 다듬습니다.



험하다(險-)

1. 땅의 형세가 발을 디디기 어려울 만큼 사납고 가파르다

   - 험한 골짜기 / 험한 지역 / 길이 멀고 험하다

2. 생김새나 나타난 모양이 보기 싫게 험상스럽다

   - 험한 얼굴 / 험한 인상 / 그녀는 일을 많이 하여 손이 험하다

3. 어떠한 상태나 움직이는 형세가 위태롭다

   - 날씨가 험하다 / 분위기가 험하여 슬그머니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4. 말이나 행동 따위가 막되다

   - 말투가 험하다 / 차를 험하게 몰다 / 동생은 입을 험하게 놀린다

5. 먹거나 입는 것 따위가 거칠고 너절하다

   - 험한 음식 / 험한 차림새 / 농구화는 닳을 대로 닳아 걸레쪽처럼 험했다

6. 일 따위가 거칠고 힘에 겹다

   - 험한 농사일 / 그녀는 험한 일을 많이 겪어 나이보다 늙어 보인다

7. 매우 비참하다

   - 험한 꼴을 당하다 / 이렇게 험하게 뜯기고 살아서야 어디 그것을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976) 험하다險 2


남한 사람들이 우리 함경도 땅을 산세가 험한 곳으로 연상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겠다

《김병걸-실패한 인생 실패한 문학》(창작과비평사,1994) 11쪽


 산세가 험한 곳

→ 멧줄기가 거친 곳

→ 멧자락이 가파른 곳

→ 멧골이 깎아지른 곳

 …



  높다른 멧줄기가 이어지면, 이곳에는 골짜기가 지고, 골짜기는 거칠거나 가파르거나 깎아지를 수 있습니다. 비탈이 지면서 거친 길이 있고, 가파르거나 깎아지른 모습을 둘레에서 쉬 찾아볼 수 있습니다. 4340.10.7.해/4347.11.1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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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사람들이 우리 함경도 땅을 멧자락이 거친 곳으로 떠올리는 까닭도 마땅하다 하겠다


‘함경도 지역(地域)’이 아닌 ‘함경도 땅’으로 적으니 반갑습니다. ‘산세(山勢)’는 ‘멧줄기’나 ‘멧자락’으로 손보고, ‘연상(聯想)하는’은 ‘떠올리는’으로 손보며, ‘당연(當然)하다’는 ‘마땅하다’로 손봅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45) 험하다險 3


우리 또래라면 아직 앞날이 창창한데, 그토록 험한 일을 당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니 말이야

《이시카와 이쓰코/손지연 옮김-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삼천리,2014) 18쪽


 그토록 험한 일을 당하고

→ 그토록 몹쓸 일을 겪고

→ 그토록 끔찍한 일을 겪고

→ 그토록 아픈 일을 겪고

→ 그토록 슬픈 일을 겪고

→ 그토록 모진 일을 겪고

 …



  일본군 위안부가 된 이들은 어떤 일을 겪었다고 할 만한지 돌아봅니다. 끔찍한 일이겠지요. 몹쓸 일입니다. 모진 일입니다. 아픈 일입니다. 슬픈 일입니다. 그야말로 궂은 일입니다.


  끔찍한 일이기에 ‘끔찍하다’고 말합니다. 몹쓸 일이기에 ‘몹쓸’ 일이라고 말합니다. 슬픈 일이기에 ‘슬픈’ 일이라고 말합니다. 4347.11.1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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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또래라면 아직 앞날이 훤한데, 그토록 아픈 일을 겪고 슬프게 죽었다니 말이야


‘창창(蒼蒼)한데’는 ‘밝은데’나 ‘환한데’나 ‘훤한데’나 ‘푸른데’로 다듬습니다. “일을 당(當)하고”는 “일을 겪고”로 손보고, “비참(悲慘)한 최후(最後)를 맞았다니”는 “슬프고 끔찍하게 죽었다니”나 “슬프게 죽었다니”나 “슬프고 끔찍하게 목숨을 잃었다니”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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