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스기 가의 도시락 2
야나하라 노조미 지음, 채다인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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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09


우리 집 겨울이웃
― 다카스기 家의 도시락 2
 야나하라 노조미 글·그림
 채다인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1.7.25.


  가을이 무르익을 즈음 올해에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손님을 기다립니다. 이제 올 때쯤 되었는데 왜 안 오는가 하고 날마다 빼꼼빼꼼 살펴봅니다. 늦가을에 우리 집에 찾아오는 손님은 누구인가 하면, 딱새입니다.

  지난해 이맘때쯤, 딱새 두 마리가 우리 집 처마 밑에 있는 제비집에 들어와서 지냈습니다. 딱새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이 사는 집 가까이에서 살아요. 이 아이들은 처마 밑 제비집으로 거침없이 들어와서 지난해에 겨울나기를 했습니다. 딱새가 겨울나기를 마치고 제비집을 떠난 사월 첫무렵에 제비가 돌아왔는데, 제비는 저희가 지난해에 지낸 둥지가 여러모로 망가진 모습을 보고는 한참 망설이더니 여러 날 걸쳐서 집을 손질하더군요.


- “뭐 가지고 싶은 거 없어? 뭐든지 사 줄게.” “음, 요리용 젓가락.” “그거야 있어야 되는 거니까, 지금 사 줄게.” “저기, 뭐, 가지고 싶어?” (32쪽)
- “마루는 아직 아사코 씨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네. 아빠랑 결혼한 지 벌써 5년이잖아.” “호칭이 무슨 상관이야. 그렇지? 쿠루링?” “신경쓴다고. 하루치도 신경쓰고 있더라고.쿠우는 하루치 이름을 아직 한 번도 안 불러 줬다며?” (35쪽)





  그제까지만 해도 딱새가 밤에 우리 집 처마 밑에서 잔다고 못 느꼈는데, 어제 아침에 비로소 딱새 두 마리를 아침에 만납니다. 동이 틀 무렵 마루문을 열고 마당으로 내려서니, 이때에 딱새 두 마리가 휑 하면서 제비 둥지에서 나옵니다. 옳거니, 이제 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제비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겨우내 둥지가 비니, 이동안 딱새가 빌려서 써도 되리라 생각해요. 게다가, 우리 집 제비들이 지은 둥지는 모두 석 채입니다. 우리 집 제비들은 저희가 지내지 않으면서도 다른 둥지까지 모두 손질합니다. 세 채 가운데 한 채에서만 지내면서 다른 두 채도 손질해요.

  나중에 보니, 새끼 제비가 무럭무럭 커서, 둥지에 새끼랑 어미가 함께 깃들기 좁다 싶을 때에 비로소 다른 둥지로 어미 둘이 옮겨서 지내더군요.


- ‘달콤한 식사. 달콤한 디저트. 무엇보다 쿠루리도 기뻐하는 것 같고. 겉모습이라든가, 이름이라든가, 그런 게 그렇게나 중요할까. 이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46쪽)
- “나는 그냥 주먹밥이 좋은데. 다카스기는?” “저기, 이왕 아사코 씨가 싸준 건데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67쪽)
- “보라고. 구운 주먹밥도 맛있어. 맛있지? 이거. 역시 제대로 만들면 시간이 지나도 맛있다고.” (73쪽)





  지난해 이맘때를 돌이킵니다. 딱새 두 마리가 우리 집 처마에 깃들고 나서 한 달 즈음 뒤 참새 두 마리도 우리 집 처마에 깃들었습니다. 제비집이 석 채이니, 다른 새도 이곳에 깃들 수 있어요.

  내가 지은 새집이 아니지만, 우리 집 처마에 깃든 새집이니 괜히 내가 반가우면서 고맙습니다. 이 작은 새들은 우리 집 처마에 깃들면서 아침저녁으로 노래를 베푸니 여러모로 즐겁습니다. 처마에서 노래하고, 빨랫줄과 전깃줄에서 노래하며, 마당에 선 후박나무와 초피나무에 앉아서 노래해요.

  우리 집은 시골마을 다른 집과 참 다르게, 풀을 그대로 둡니다. 그래서 늦가을과 한겨울에도 우리 집 풀잎을 갉아먹는 애벌레가 있습니다. 우리 집 마당과 뒤꼍은 작은 새한테 겨울 먹이 얻는 곳이 되기도 합니다. 바지런히 살피고 찬찬히 돌아보면 포근한 보금자리에다가 먹이를 함께 누릴 만하다고 할까요.


- ‘같이 산 지 벌써 1년. 작은, 내가 지켜 줘야 하는 어린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나보다 어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쿠루리가 와서 헤매는 일도 많았지만, 하려고 하지도 않았던 걸 하게 되고,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걸 생각하게 됐다. 인간으로서 굉장히 풍요로워졌다는 느낌이 든다.’ (84쪽)
- “먹을 때 맛있게 먹기 위해서 미리 버터를 바른다. 그 버터를 균등하게 바르기 위해 미리 실온에 놔둔다. 요리에 중요한 게 뭔지 알겠니?” “미리 알고 준비하는 거?” “그렇지. 앞날을 내다보고 상상력을 움직이는 힘, 요리를 하는 사람은 그게 기본이지.” (91쪽)





  야나하라 노조미 님이 빚은 만화책 《다카스기 家의 도시락》(AK커뮤니케이션즈,2011) 둘째 권을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만화책 이름에 ‘도시락’이 나오지만, 막상 이 만화책에서 도시락 이야기는 얼마 안 나옵니다. 어쩌면 ‘도시락’이라는 먹을거리를 사이에 놓고 ‘집에서 짓는 밥’과 ‘집에서 짓는 이야기’와 ‘집에서 짓는 사랑’을 들려주는 만화라고 할 만합니다.

  도시락이란 그렇거든요. 도시락은 집에서 짓는 밥일 뿐 아니라, 집에서 짓는 이야기가 흐르는 밥이요, 집에서 짓는 사랑이 깃드는 밥입니다.

  집집마다 다 다른 도시락이기에, 집집마다 다 다른 손맛을 느끼는 도시락입니다. 집집마다 다 다른 아이와 어른이 일구는 사랑과 숨결이 도시락에 서립니다. 학교급식으로서는 이러한 이야기도 사랑도 숨결도 생각도 주고받을 수 없어요.


- ‘농촌을 조사하다 보면 죽순이나 산나물 같은 꼐절의 산물을 도시에 간 아이들이나 친구들에게 보내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계절의 산물은 기쁘지만 짧다. 그들은 계절을 놓치지 앟는다. 그렇게 떨어져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 나간다.’ (111쪽)
- “나츠키는 어떠려나?” “나츠키는 지금쯤 할머니가 만든 걸 먹겠지.” “이걸 먹어 보면 뭐가 더 맛있다고 할까?” (116쪽)



  나는 단체급식을 아주 안 좋아합니다. 아니, 아주 안 좋아한다기보다 ‘단체급식은 사람이 먹을 것’이 못 된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단체급식은 ‘급식’일 뿐, ‘밥’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고픈 배를 채우는 ‘급식’이기는 하지만 ‘밥’이 아닌데다가 ‘단체’로 먹이는 것이에요. 다 다른 아이들한테 다 다른 목숨으로 스며드는 먹을거리가 아닙니다.

  단체급식을 하는 곳은 단체교육을 합니다. 이른바 ‘집단’이요 ‘집체’입니다. ‘질서’와 ‘계급’이 흐릅니다. 단체급식은 아이들한테 ‘다 다른 여러 생각’을 풀어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다 같은 생각’으로 붙들어 놓는 얼거리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삶을 일구면서 아름답게 사랑할 숨결이니, 우리가 배고프다 할 적에도 ‘밥’을 먹을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 ‘어제 평소처럼 저녁밥을 같이 먹었다면, 오늘 아침 평소처럼 제대로 얼굴을 봐 줬다면, 당연한 것들은 사실 당연한 게 아니라고, 몇 번을 실패해야 알게 되는 걸까.’ (164∼165쪽)


  제비와 딱새와 참새는 다릅니다. 모두 조그마한 새요, 애벌레도 먹고 곡식도 먹을 수 있지만, 제비는 제비대로 좋아하는 먹이가 있고 딱새는 딱새대로 좋아하는 먹이가 있으며 참새는 참새대로 좋아하는 먹이가 있어요. 이 아이들은 저마다 제 삶을 스스로 짓습니다.

  우리 집 겨울이웃을 올해에도 반가이 맞이하면서 생각합니다. 겨우내 우리한테 ‘겨울노래’를 들려주니 고맙습니다. 봄과 여름에는 한창 제비 노래로 하루를 짓고, 겨울에는 한창 딱새 노래로 하루를 짓습니다. 수많은 곳 가운데 우리 집을 겨울집으로 삼은 이웃이 반갑고, 새 이웃이 나와 아이들과 곁님한테 베풀 이야기가 기쁩니다. 4347.11.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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